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장마철이 되고 태풍이 거세게 불어올 때 나무가 뽑히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는 땅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를 쓰던 당시의 세상은, 그야말로 영적인 태풍이 불어오는 거친 광야와 같았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잔인한 박해가 불어왔고,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이 이미 재림하셨다”라는 거짓 가르침이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휩쓸려 버릴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목자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복음의 가르침을 지키라”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반석 위에 굳건하게 서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복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거센 박해와 미혹속에서도 변함없이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의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처음 사랑’(계 2:4~5)을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었기에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버린 자들을 보호하실 수가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예수님의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어떤 환경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처음 사랑을 늘 간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이라며 감사의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자격이 있어서 얻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들을 성도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는 데에는 매우 큰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선행을 많이 해서, 자격이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면 우리의 구원은 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선행이 아니라 악행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연약한 사람들을 돕기보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구원의 조건이 파기되는 것이므로, 우리의 구원도 취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아무것도 포함 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면, 교만에 빠질 수가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우리가 무언가 잘해서가 아니라, 죄인 되었을 때에,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아무 조건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고 무슨 교만에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받을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을 항상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 감사의 이유 두 번째에 대해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야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죄로 죽었던 우리의 어두운 심령을 깨우쳐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믿어지도록 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도록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고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실 때, 주저 말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하며,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일어나게 됨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이유 세 번째는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 에베소서 1:4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14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리에 초대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궁극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궁극적인 이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리에 초대하기 위함이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떤 영광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영광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이미 주어진 영광이며, 장차 있을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될 영광입니다(요 17:22, 롬 8: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시에 예수님과 동일한 상속자가 되기에 받게 되는 장래의 영광입니다. 또한, 이 영광은 구원의 완성으로서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과 모든 죄악과 사망과 슬픔과 수고가 끝이 나는 영광입니다(고전 15:43~44, 계 21:4, 계 14:13).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왕의 권세를 받아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영광입니다(계 2:26-27, 계 3:21).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18에서 이 장래의 영광에 대하여 성도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한 이유는 그 고난을 통과한 후 이러한 영광이 주어질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의 자리에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영광을 생각하며 바울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주어진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예수님을 위한 고난임을 믿고 당당하게 이겨내야 합니다(골 1:24). 그리고 아직도 이 영광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복음의 삶으로 초총해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성도의 삶과 구원의 영광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놀라운 것이니, 너희는 세상의 박해와 미혹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먼저, “굳건하게 서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서다 στήκω’라는 말은 군대 용어입니다. 전쟁터에서 맹렬한 적군의 공격 앞에서도 밀려나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방어 진지에 굳건하게 서서 목숨 걸고 지켜내고 있는 군사의 모습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박해와 거짓 미혹이 아무리 강해도,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고 바른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전통’은 유대인들이 지킨 장로의 전통과 같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전통이 아니라, 사도들이 예수님께 직접 받아서 전해준 ‘복음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2천 년 역사는 ‘복음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교회가 로마제국의 박해 앞에서도, 중세시대의 영적 어둠 속에서도, 그리고 근대의 제국주의적인 사상적 공격 앞에서도 교회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새로운 사상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의 가르침,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라”라고 속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고지식하게 따르지 말고, 세상의 가치관과 사상을 고려하여 지혜롭게 적용하라”라며 달콤하게 미혹합니다. 그러하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복음의 가르침 위입니까?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은 언제나 변하고 사라집니다. 우리는 오직 사도들이 피 흘려 전해주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어떠한 유혹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가르침을 끝까지 지켜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가 굳건하게 서서 복음의 가르침을 지킬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위로는 일시적입니다. 돈이 주는 안도감이나 사람이 주는 격려는 환경이 바뀌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영원한 위로’입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늘의 평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은 이 땅에 살 때 일시적으로 갖는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좋은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있을 때에만, 굳건하게 복음의 가르침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7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시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여 치료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받고 지친 성도, 두려움에 떠는 성도들과 늘 함께 계시며 다시 일어설 힘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그 위로받은 마음으로 삶의 자리에서 행하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의 권능으로 굳건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음 따로, 삶 따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위로를 받은 성도는, 그의 말이 달라지고 삶의 행위가 달라집니다. 거짓과 비난이 가득 찬 세상에서 따뜻하고 은혜로운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됩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 속에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선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마음을 붙들어 주시기에 고난 앞에서도 선한 말과 행실이 꺾이지 않고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교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성도가 끝까지 신앙을 지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성도의 의지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신실하신 손길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지치고 낙심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친히 위로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입술과 행실을 단단히 붙들고 계십니다. 이를 믿고, 오늘부터 그 위로의 하나님을 힘입어, 여러분의 입술로 더욱 선한 말을 하시고, 여러분의 손과 발로 더욱 큰 사랑과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수많은 미혹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저희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세상의 헛된 유혹과 거짓 가르침 앞에 흔들리지 않고 사도들이 전해준 십자가 복음 위에 굳건하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신앙의 유산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전하는 믿음의 파수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장마철이 되고 태풍이 거세게 불어올 때 나무가 뽑히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는 땅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를 쓰던 당시의 세상은, 그야말로 영적인 태풍이 불어오는 거친 광야와 같았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잔인한 박해가 불어왔고,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이 이미 재림하셨다”라는 거짓 가르침이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휩쓸려 버릴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목자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복음의 가르침을 지키라”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반석 위에 굳건하게 서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복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거센 박해와 미혹속에서도 변함없이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의 사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처음 사랑’(계 2:4~5)을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었기에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버린 자들을 보호하실 수가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예수님의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어떤 환경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처음 사랑을 늘 간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이라며 감사의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자격이 있어서 얻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들을 성도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는 데에는 매우 큰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선행을 많이 해서, 자격이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면 우리의 구원은 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선행이 아니라 악행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연약한 사람들을 돕기보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구원의 조건이 파기되는 것이므로, 우리의 구원도 취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아무것도 포함 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면, 교만에 빠질 수가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우리가 무언가 잘해서가 아니라, 죄인 되었을 때에,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아무 조건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고 무슨 교만에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받을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을 항상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 감사의 이유 두 번째에 대해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야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죄로 죽었던 우리의 어두운 심령을 깨우쳐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믿어지도록 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도록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고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실 때, 주저 말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하며,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일어나게 됨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이유 세 번째는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 에베소서 1:4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14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리에 초대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궁극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궁극적인 이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리에 초대하기 위함이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떤 영광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영광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이미 주어진 영광이며, 장차 있을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될 영광입니다(요 17:22, 롬 8: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시에 예수님과 동일한 상속자가 되기에 받게 되는 장래의 영광입니다. 또한, 이 영광은 구원의 완성으로서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과 모든 죄악과 사망과 슬픔과 수고가 끝이 나는 영광입니다(고전 15:43~44, 계 21:4, 계 14:13).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왕의 권세를 받아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영광입니다(계 2:26-27, 계 3:21).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18에서 이 장래의 영광에 대하여 성도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한 이유는 그 고난을 통과한 후 이러한 영광이 주어질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의 자리에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영광을 생각하며 바울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주어진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예수님을 위한 고난임을 믿고 당당하게 이겨내야 합니다(골 1:24). 그리고 아직도 이 영광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복음의 삶으로 초총해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성도의 삶과 구원의 영광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놀라운 것이니, 너희는 세상의 박해와 미혹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먼저, “굳건하게 서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서다 στήκω’라는 말은 군대 용어입니다. 전쟁터에서 맹렬한 적군의 공격 앞에서도 밀려나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방어 진지에 굳건하게 서서 목숨 걸고 지켜내고 있는 군사의 모습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박해와 거짓 미혹이 아무리 강해도,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고 바른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전통’은 유대인들이 지킨 장로의 전통과 같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전통이 아니라, 사도들이 예수님께 직접 받아서 전해준 ‘복음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2천 년 역사는 ‘복음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교회가 로마제국의 박해 앞에서도, 중세시대의 영적 어둠 속에서도, 그리고 근대의 제국주의적인 사상적 공격 앞에서도 교회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새로운 사상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의 가르침,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라”라고 속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고지식하게 따르지 말고, 세상의 가치관과 사상을 고려하여 지혜롭게 적용하라”라며 달콤하게 미혹합니다. 그러하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복음의 가르침 위입니까?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은 언제나 변하고 사라집니다. 우리는 오직 사도들이 피 흘려 전해주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어떠한 유혹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가르침을 끝까지 지켜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가 굳건하게 서서 복음의 가르침을 지킬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위로는 일시적입니다. 돈이 주는 안도감이나 사람이 주는 격려는 환경이 바뀌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영원한 위로’입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늘의 평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은 이 땅에 살 때 일시적으로 갖는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좋은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있을 때에만, 굳건하게 복음의 가르침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7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시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여 치료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받고 지친 성도, 두려움에 떠는 성도들과 늘 함께 계시며 다시 일어설 힘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그 위로받은 마음으로 삶의 자리에서 행하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의 권능으로 굳건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음 따로, 삶 따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위로를 받은 성도는, 그의 말이 달라지고 삶의 행위가 달라집니다. 거짓과 비난이 가득 찬 세상에서 따뜻하고 은혜로운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됩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 속에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선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마음을 붙들어 주시기에 고난 앞에서도 선한 말과 행실이 꺾이지 않고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교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성도가 끝까지 신앙을 지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성도의 의지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신실하신 손길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지치고 낙심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친히 위로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입술과 행실을 단단히 붙들고 계십니다. 이를 믿고, 오늘부터 그 위로의 하나님을 힘입어, 여러분의 입술로 더욱 선한 말을 하시고, 여러분의 손과 발로 더욱 큰 사랑과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수많은 미혹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저희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세상의 헛된 유혹과 거짓 가르침 앞에 흔들리지 않고 사도들이 전해준 십자가 복음 위에 굳건하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신앙의 유산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전하는 믿음의 파수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