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체로키 인디언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얘야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노여움과 교만, 이기심으로 가득한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랑과 겸손, 감사로 가득한 늑대인데 이 둘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 늘 싸운단다.” 어린 손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 두 마리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여러분, 어느 늑대가 싸움에서 이길까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마음의 주인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느냐에 달려 있지!”
여러분은 매일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고 계십니까? 우리는 오늘로써 3주째, 성도의 기본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이 성도의 기본만 잘 갖춰진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겸손과 감사의 늑대가 늘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끝으로 ‘성도의 기본’이 마무리됩니다. 기본이 튼튼하지 못하면, 그것이 건물이든, 인간관계든, 신앙이든 조그마한 풍파에도 흔들리고, 또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기도와 감사, 이 세 가지 성도의 기본을 잘 갖추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참 성도가 없다고 한탄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14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신학자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동안 기도하는 말이 감사합니다 뿐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만큼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사함, 이 감사의 감정은 우리를 행복함으로 이끄는 정말 우리 인생에 있어 소중합니다.
여러분,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는 윤활유가 뿌려져 있습니다. 자동차, 농기구, 이제 곧 올 더운 여름에 우리가 애용하는 에어컨, 선풍기 등 이 모든 기계에 윤활유가 없다면 금방 고장이 나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사는 우리의 삶에 윤활유와도 같습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모든 부분에서 삐걱 그립니다. 불편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의 삶은 그 감사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감사의 열매가 맺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습관화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9년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으면, 언제부터인가 예상하지 못한 삶의 풍족함을 얻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직장뿐만 아니라, 마트에 가거나, 버스를 탔을 때도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고맙다고 해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사하기 싫습니다. 뭘 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일일이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도 좀 쑥스럽고,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여러분,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풍족해질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아집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한번 고백해 볼까요?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2.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저자 바울은 그 생애가 정말 고난의 생애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이상의 고난과 어려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분이 바울을 신앙의 본보기로 삼는데, 실제로 바울과 같은 고난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열매는 탐스럽지만, 그 과정은 밟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바울을 존경하고 본받기를 원하지만, 그의 삶을 살아내라고 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만큼 바울의 삶은 험난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힘겨운 삶을 산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를 보면 놀랍게도 “나는 기뻐한다. 나는 감사한다.” 이 기쁨과 감사가 그의 삶 전체를 감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하다는 말은 걱정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슬퍼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태도가 전혀 없다는 그런 말도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때로는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우리를 흥분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이 감사로 가득 차게 되면, 그러한 것들이 나를 잠시 흔들 수는 있지만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감사를 가장 많이 강조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고난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다윗,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감사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고백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어떠한 믿음과 꿈과 비전이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 또한 범사에 감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6:27에 보시면, 예수께서 성찬식을 거행하실 때 감사기도를 먼저 드렸습니다. 포도주와 떡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감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감사기도에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증표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평범한 포도주와 떡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보혈과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또, 요한복음 6:11에 보시면, 예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먼저 그 떡을 가지고 축사, 곧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감사로 드리는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필요하십니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선포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상황 가운데’와 ‘언제든지’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의미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감사는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정이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감사하려고 노력하면 일시적으로는 감사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감사가 저절로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감사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내 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어떠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힘들고, 억울하고, 피곤한 삶을 산 바울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했던 그 근거, 그가 소유했던 그 근거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도 그가 가졌던 그 근거를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근거를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요셉을 비유로 많이 드는데,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요셉의 삶을 잘 알고 계시고, 또 요셉의 삶이 바로 신약의 성도의 삶을 함축해 놓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삶의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창세기 50:20에 보면, 다 같이 한 번 찾아볼까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그의 삶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억울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고 자신이 겪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결과를 이루실 줄을 믿었기에 모든 삶의 과정들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또한 로마서 8:2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진정으로 믿을 때,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범사에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던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셔서 선한 결과를 이루시며 또한, 우리에게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범사에 인정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신학자 ‘호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는 자는 역시 ‘할렐루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뜻이고,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찬양이 있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에 감사가 넘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또한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에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은 범사에 ‘할렐루야’ 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주간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로써 ‘성도의 3대 실천 목표’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 대한 말씀을 마칩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거창하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비전을 찾지만,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답을 줍니다. 오늘부터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잘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기도로서의 교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감사의 열매가 맺혀짐을 알았사오니, 저희에게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인 기도를 회복시켜 주심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자랑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체로키 인디언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얘야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노여움과 교만, 이기심으로 가득한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랑과 겸손, 감사로 가득한 늑대인데 이 둘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 늘 싸운단다.” 어린 손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 두 마리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여러분, 어느 늑대가 싸움에서 이길까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마음의 주인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느냐에 달려 있지!”
여러분은 매일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고 계십니까? 우리는 오늘로써 3주째, 성도의 기본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이 성도의 기본만 잘 갖춰진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겸손과 감사의 늑대가 늘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끝으로 ‘성도의 기본’이 마무리됩니다. 기본이 튼튼하지 못하면, 그것이 건물이든, 인간관계든, 신앙이든 조그마한 풍파에도 흔들리고, 또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기도와 감사, 이 세 가지 성도의 기본을 잘 갖추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참 성도가 없다고 한탄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14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신학자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동안 기도하는 말이 감사합니다 뿐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만큼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사함, 이 감사의 감정은 우리를 행복함으로 이끄는 정말 우리 인생에 있어 소중합니다.
여러분,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는 윤활유가 뿌려져 있습니다. 자동차, 농기구, 이제 곧 올 더운 여름에 우리가 애용하는 에어컨, 선풍기 등 이 모든 기계에 윤활유가 없다면 금방 고장이 나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사는 우리의 삶에 윤활유와도 같습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모든 부분에서 삐걱 그립니다. 불편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의 삶은 그 감사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감사의 열매가 맺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습관화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9년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으면, 언제부터인가 예상하지 못한 삶의 풍족함을 얻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직장뿐만 아니라, 마트에 가거나, 버스를 탔을 때도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고맙다고 해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사하기 싫습니다. 뭘 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일일이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도 좀 쑥스럽고,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여러분, 내가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풍족해질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아집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한번 고백해 볼까요?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2.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저자 바울은 그 생애가 정말 고난의 생애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이상의 고난과 어려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분이 바울을 신앙의 본보기로 삼는데, 실제로 바울과 같은 고난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열매는 탐스럽지만, 그 과정은 밟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바울을 존경하고 본받기를 원하지만, 그의 삶을 살아내라고 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만큼 바울의 삶은 험난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힘겨운 삶을 산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를 보면 놀랍게도 “나는 기뻐한다. 나는 감사한다.” 이 기쁨과 감사가 그의 삶 전체를 감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하다는 말은 걱정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슬퍼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태도가 전혀 없다는 그런 말도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때로는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우리를 흥분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이 감사로 가득 차게 되면, 그러한 것들이 나를 잠시 흔들 수는 있지만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감사를 가장 많이 강조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고난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다윗,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감사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고백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어떠한 믿음과 꿈과 비전이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 또한 범사에 감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6:27에 보시면, 예수께서 성찬식을 거행하실 때 감사기도를 먼저 드렸습니다. 포도주와 떡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감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감사기도에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증표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평범한 포도주와 떡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보혈과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또, 요한복음 6:11에 보시면, 예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먼저 그 떡을 가지고 축사, 곧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감사로 드리는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필요하십니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선포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상황 가운데’와 ‘언제든지’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의미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감사는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정이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감사하려고 노력하면 일시적으로는 감사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감사가 저절로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감사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내 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어떠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힘들고, 억울하고, 피곤한 삶을 산 바울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했던 그 근거, 그가 소유했던 그 근거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도 그가 가졌던 그 근거를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근거를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요셉을 비유로 많이 드는데,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요셉의 삶을 잘 알고 계시고, 또 요셉의 삶이 바로 신약의 성도의 삶을 함축해 놓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삶의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창세기 50:20에 보면, 다 같이 한 번 찾아볼까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그의 삶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억울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고 자신이 겪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결과를 이루실 줄을 믿었기에 모든 삶의 과정들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또한 로마서 8:2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진정으로 믿을 때,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범사에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던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셔서 선한 결과를 이루시며 또한, 우리에게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범사에 인정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신학자 ‘호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는 자는 역시 ‘할렐루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뜻이고,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찬양이 있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에 감사가 넘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또한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에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은 범사에 ‘할렐루야’ 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주간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로써 ‘성도의 3대 실천 목표’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 대한 말씀을 마칩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거창하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비전을 찾지만,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답을 줍니다. 오늘부터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잘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기도로서의 교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감사의 열매가 맺혀짐을 알았사오니, 저희에게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인 기도를 회복시켜 주심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자랑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