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오늘은 ‘성도의 3대 실천 목표’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 중에서 두 번째 실천목표인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가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 목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셨고, 또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고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막 9:29). 그리고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 성령의 임재하심은 기도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는 특별한 체력이나 지식이나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 구별이 없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것입니다. 심지어는 마태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의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계단 벽에도 ‘패트릭 존스턴’의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라는 고백이 붙어 있습니다.
1. 그런데 여러분, 기도가 이처럼 중요하고 또 성도가 실천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를 잘하지 못할까요? 왜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요인을 말씀합니다.
1)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잘못 구하기 때문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기 때문이고,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이고 등등, 참으로 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는 당사자가 정작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구하지 않고 자신을 망치게 하는 것을 구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우리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꼭 필요한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를 망치는 것에만 눈독을 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 사주면 생떼를 부립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애야, 너 생각이 있니 없니” 하면서 막 화내고 다그치십니까? 그렇지 않죠, 자녀들과 대화를 합니다. 이것은 이래서 나쁘고, 이것은 이래서 네게 유익하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있는 가정은 화평하고 형통한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가장 좋은 지도 방법은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디지만,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시는 매우 중요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더욱더 원하게 됩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닮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무엇을 하면 좋아할까?” 온통 그 사람 생각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기도하게 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기도라는 것, 참 매력 있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기도에 좀 더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도는 마치 우리와 하나님과 연결된 전화선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화는 서로 말하고 듣고, 대화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기도란 단지 우리가 말하고 또 말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라고만 생각하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 들으려고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황급하게 자신의 긴 요구 사항들을 쏟아 놓고, 그리고 그저 일방적으로 기도를 끝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불러 놓고 “이야기 좀 하자” 그러고는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계속 말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얄밉지 않습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란 서로 말하고 서로 듣는 쌍방 의사소통이어야 합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의 마음이 오가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나의 필요를 구하면서 동시에 내가 바르게 구하고 있는 것인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주문서가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께 상담하는 것입니다.
2) 또한, 기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합력하여 한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각각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온몸의 지체가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루듯이 교회를 세워갈 때도 서로 힘을 합해 함께 세워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벽기도회 등의 여러 모임을 통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는 절대 부패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모이는 것을 성경은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지도자 한 사람의 힘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게 됩니다. 그래서 동역자를 양성해야 하고, 특히 섬김의 지도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화평을 이루신 것처럼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헌신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3) 그리고 이러한 동역함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경건한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의 이끌림 없는 지도력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는 비록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항상 두 부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 약한 자, 부자, 가난한 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젊은이, 노인, 주류, 비주류... 내가 부자이면서 동시에 가난한 자가 될 수 없고, 내가 젊은이이면서 동시에 노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그 자리만큼만 삶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공평하게 하고자 해도 사람은 공평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자신들의 재산을 다 내어놓고 모든 것을 함께했던 그 은혜롭던 초대교회가 6장에 가면 벌써부터 헬라파, 유대파로 나누어져 싸웁니다. 심지어 성령을 속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러한 모든 불협화음의 원인을 대화의 부족이나 지도력의 문제로 진단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잡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의 양심으로 공평하게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었고, 그래서 분쟁과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리 은혜가 넘치는 교회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서서히 단절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단절되는 순간 사람의 생각으로 교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사람이 다스리는 곳에는 여지없이 편당이 생기고, 화평이 사라지고 분쟁과 형식과 율법만 남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 다른 성도들과 함께 모여 하는 기도, 개인의 경건이 뒷받침이 되는 기도를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렇다면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의외로 기도의 대상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이 제게 동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어떤 할머니가 기도를 오랫동안 하시더니 마지막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주문을 외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기도하십니까?
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9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 어떤 분들은 성령님께 기도하시는데 엄격히 말하자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기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3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어떤 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 이름 없이 기도를 마치시는데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증이 필요합니다.
3)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로마서 8:26~27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온전한 기도는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28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것은 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편 66:18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듯이, 죄는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길 또한 막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는 사람은 기도해도 허공만 울릴 뿐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기 직전에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 대하여 섭섭한 감정을 품은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기도한 후에 그 사람에게 “내가 무언가를 실수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해 보니 그 사람이 잘못된 말을 듣고 저를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이 저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이처럼 죄는 자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죄로 인해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또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다시 더 견고한 사랑으로 이어 줍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이 말씀은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마음을 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6~7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믿음이 없는 자, 구하고 의심하는 자는 아예 응답받기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성경은 잠언 28:9에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서의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가증하다는 말은 보기에 괘씸하고 얄밉다, 역겹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역겨워하실 만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야고보서 5:16에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와 성도 사이에 서로 마음의 벽을 쌓는 것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 됩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의 관계는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서로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거리낌이 없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함축한 말씀이 우리가 매일 신앙고백 하는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병을 낫게 하고 기적을 이루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더라도 지적하지 말고 그 부족한 부분을 말없이 채워주는 훈훈한 사랑이 넘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4) 그리고 베드로전서 3:7에 부부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말씀합니다. 가정의 불화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응답받기를 원하신다면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어느 부부가 아주 심한 부부 싸움 끝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글로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출장을 가게 된 남편은 새벽 열차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내일 새벽 4시에 깨워 줘요.”라고 적은 쪽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써 7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부인을 깨우려고 하는데 머리맡에 종이 쪽지가 보였습니다. “여보, 새벽 4시예요. 일어나세요.” 부부 싸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마가복음에 11:25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기도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고, 또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열심히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내, 내 남편, 내 형제, 내 자녀들에게도 함께 기도하기를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사랑이 샘솟는 가정, 형통한 복이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기본이자 특권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날마다 기도에 힘쓸 때 어느샌가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귀한 기도의 시간을 아름답게 선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로 하나 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오늘은 ‘성도의 3대 실천 목표’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 중에서 두 번째 실천목표인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가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 목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셨고, 또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고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막 9:29). 그리고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 성령의 임재하심은 기도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는 특별한 체력이나 지식이나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 구별이 없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것입니다. 심지어는 마태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의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계단 벽에도 ‘패트릭 존스턴’의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라는 고백이 붙어 있습니다.
1. 그런데 여러분, 기도가 이처럼 중요하고 또 성도가 실천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를 잘하지 못할까요? 왜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요인을 말씀합니다.
1)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잘못 구하기 때문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기 때문이고,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이고 등등, 참으로 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는 당사자가 정작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구하지 않고 자신을 망치게 하는 것을 구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우리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꼭 필요한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를 망치는 것에만 눈독을 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 사주면 생떼를 부립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애야, 너 생각이 있니 없니” 하면서 막 화내고 다그치십니까? 그렇지 않죠, 자녀들과 대화를 합니다. 이것은 이래서 나쁘고, 이것은 이래서 네게 유익하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있는 가정은 화평하고 형통한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가장 좋은 지도 방법은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디지만,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시는 매우 중요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더욱더 원하게 됩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닮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무엇을 하면 좋아할까?” 온통 그 사람 생각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기도하게 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기도라는 것, 참 매력 있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기도에 좀 더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도는 마치 우리와 하나님과 연결된 전화선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화는 서로 말하고 듣고, 대화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기도란 단지 우리가 말하고 또 말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라고만 생각하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 들으려고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황급하게 자신의 긴 요구 사항들을 쏟아 놓고, 그리고 그저 일방적으로 기도를 끝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불러 놓고 “이야기 좀 하자” 그러고는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계속 말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얄밉지 않습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란 서로 말하고 서로 듣는 쌍방 의사소통이어야 합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의 마음이 오가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나의 필요를 구하면서 동시에 내가 바르게 구하고 있는 것인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주문서가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께 상담하는 것입니다.
2) 또한, 기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합력하여 한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각각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온몸의 지체가 연합되어 한 몸을 이루듯이 교회를 세워갈 때도 서로 힘을 합해 함께 세워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벽기도회 등의 여러 모임을 통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는 절대 부패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모이는 것을 성경은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지도자 한 사람의 힘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게 됩니다. 그래서 동역자를 양성해야 하고, 특히 섬김의 지도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화평을 이루신 것처럼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헌신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3) 그리고 이러한 동역함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경건한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의 이끌림 없는 지도력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는 비록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항상 두 부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 약한 자, 부자, 가난한 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젊은이, 노인, 주류, 비주류... 내가 부자이면서 동시에 가난한 자가 될 수 없고, 내가 젊은이이면서 동시에 노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그 자리만큼만 삶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공평하게 하고자 해도 사람은 공평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자신들의 재산을 다 내어놓고 모든 것을 함께했던 그 은혜롭던 초대교회가 6장에 가면 벌써부터 헬라파, 유대파로 나누어져 싸웁니다. 심지어 성령을 속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러한 모든 불협화음의 원인을 대화의 부족이나 지도력의 문제로 진단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잡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의 양심으로 공평하게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었고, 그래서 분쟁과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리 은혜가 넘치는 교회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서서히 단절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단절되는 순간 사람의 생각으로 교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사람이 다스리는 곳에는 여지없이 편당이 생기고, 화평이 사라지고 분쟁과 형식과 율법만 남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 다른 성도들과 함께 모여 하는 기도, 개인의 경건이 뒷받침이 되는 기도를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렇다면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의외로 기도의 대상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이 제게 동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어떤 할머니가 기도를 오랫동안 하시더니 마지막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주문을 외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기도하십니까?
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9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 어떤 분들은 성령님께 기도하시는데 엄격히 말하자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기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3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어떤 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 이름 없이 기도를 마치시는데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증이 필요합니다.
3)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로마서 8:26~27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온전한 기도는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28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4. 그렇다면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것은 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편 66:18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듯이, 죄는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길 또한 막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는 사람은 기도해도 허공만 울릴 뿐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기 직전에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 대하여 섭섭한 감정을 품은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기도한 후에 그 사람에게 “내가 무언가를 실수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해 보니 그 사람이 잘못된 말을 듣고 저를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이 저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이처럼 죄는 자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죄로 인해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또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다시 더 견고한 사랑으로 이어 줍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이 말씀은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마음을 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6~7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믿음이 없는 자, 구하고 의심하는 자는 아예 응답받기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성경은 잠언 28:9에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서의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가증하다는 말은 보기에 괘씸하고 얄밉다, 역겹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역겨워하실 만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야고보서 5:16에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와 성도 사이에 서로 마음의 벽을 쌓는 것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 됩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의 관계는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서로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거리낌이 없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함축한 말씀이 우리가 매일 신앙고백 하는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병을 낫게 하고 기적을 이루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더라도 지적하지 말고 그 부족한 부분을 말없이 채워주는 훈훈한 사랑이 넘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4) 그리고 베드로전서 3:7에 부부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말씀합니다. 가정의 불화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응답받기를 원하신다면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어느 부부가 아주 심한 부부 싸움 끝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글로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출장을 가게 된 남편은 새벽 열차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내일 새벽 4시에 깨워 줘요.”라고 적은 쪽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써 7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부인을 깨우려고 하는데 머리맡에 종이 쪽지가 보였습니다. “여보, 새벽 4시예요. 일어나세요.” 부부 싸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마가복음에 11:25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도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기도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고, 또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열심히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내, 내 남편, 내 형제, 내 자녀들에게도 함께 기도하기를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사랑이 샘솟는 가정, 형통한 복이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기본이자 특권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날마다 기도에 힘쓸 때 어느샌가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원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귀한 기도의 시간을 아름답게 선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로 하나 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