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4.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우인택 목사
2026-04-15
조회수 139

16. 항상 기뻐하라 


  우리는 지난주에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지 ‘거룩한 관계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지도자를 존중하고, 연약한 자를 돌보며, 모든 사람에게 선을 대하는 것이 곧 깨어 있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명령 중 하나인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3주간에 걸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16절,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항상 기뻐하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시는 기쁨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실 기뻐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감정이지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뻐해야 할 의무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는 기뻐해야만 할 이유를 가진 자로서 매 순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얼마만큼 사랑하시나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니? 물으면 어떻게 하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그것을 내려놓고 힘껏 팔을 벌리면서 “이~ 만큼이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번 해볼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하시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가슴 설레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설레고 기쁜 것,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라는 증거이고,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기도하게도 하고, 감사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면 성도가 아니기에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은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잃어버리면 성도로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 보면, 요셉은 보디발 집에 팔려간 노예였지만, 그는 노예임에도 다른 노예를 지도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는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수를 관리하는 감옥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노예 출신의 이방인인 그가 한 나라의 살림을 총괄하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이 요셉을 지도자로 만들었습니까? 환경이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똑똑해서 지도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똑똑했다면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지도, 노예로 팔려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했고 그 믿음이 결국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서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환경도 두려움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은 그 자체가 ‘기쁨’을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38년 된 병자의 병을 고쳐주셨고,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려주셨고, 소외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을 품으셨고, 슬픔뿐이던 그들의 삶을 기쁨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삶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성경’이 기록된 이유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기까지 ‘복음’을 전한 이유도, 또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기까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도 바로 자기 안에 있는 이 구원의 기쁨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들의 가장 큰 사명도 바로 이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 만일 내가 이 구원의 기쁨을 모르면서 성도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내게 구원의 기쁨이 없다면 나는 지금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지금 현대의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병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기쁨을 말하고 전하면서도 자신은 전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심지어, 성도의 거룩함을 무뚝뚝함, 희생, 고행, 의무, 절제, 무거움 등으로 아는 잘못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최고의 거룩함은 구원에 대한 기쁨을 누릴 때 있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가장 복되고 거룩한 삶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이 은혜를 나누는 삶 속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과 수고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인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이 잘 아는 배우이자 코미디언이자 성우인 ‘로빈 윌리엄스’는 그가 주연으로 연기한 영화 속에서 언제나 따뜻하고, 재치가 넘치며,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웃음의 전도사로 등장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보면서 기쁨을 되찾았고, 위로를 받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가 평생 지독한 우울증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타인에게는 기쁨과 소망을 주었지만, 정작 자기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둠을 물리치지 못한 채 일생을 홀로 고통 가운데 산 것입니다.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 말고도 웃음과 소망과 행복을 전하는 사람 중에 의외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우리도 구원의 기쁨을 말하면서, 자신은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그 비워진 자리의 허전함을 채우고자 스스로를 속이는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기쁨을 찾아야 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성도의 삶은 기쁨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항상 기뻐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소망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 기쁨을 항상 소유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목자는 일백 마리의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남아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그에게 있었지만, 그것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괴로움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그의 기쁨을 빼앗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흔아홉 가지를 가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만족한 삶을 살고 계시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아흔아홉 가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한 가지가 부족한데서 기쁨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부족한 한 가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청년은 그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모두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청년에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청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잘못된 삶의 가치관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위선적인 신앙인들이었던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은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남들 보기에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겉만 화려하게 치장한 믿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너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삶의 수단으로 주신 것을 어리석게도 삶의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렇게 살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참 기쁨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 수단은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에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던 많은 재물은 생명의 근원인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서도 잃어버리게 만든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청년은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기에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기쁨의 근원은 바로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가 다 잘 아는 가난한 자들의 친구였던 테레사 수녀는 어느 날, 콜카타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 아직 살아있는데도 쥐들에게 살점을 뜯기며 죽어가는 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그 여인을 병원으로 데려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극진히 치료하여 마침내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동기가 되어서 그녀는 일평생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자기 삶의 동기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기쁨은 기도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나눠주는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기쁜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을 한순간이라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고통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예수님 또한 고통을 느끼시며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오늘은 나와 여러분이 서로를 사랑할 차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이 음성에 우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예”라고 말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러했듯이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곳이 바로 기쁨의 자리,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삶은 기쁨의 삶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사랑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기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맘껏 자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화>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행자는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표정이 복음의 기쁨을 나타내는 가장 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들이 아니라,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성도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섬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이 기쁨을 서로 나누게 하셔서 날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이 ‘기쁨의 삶’을 만드시는 것이었듯이, 우리도 이 땅에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기본임을 날마다 자랑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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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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