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91. 무언가 남다른 사도 바울의 믿음 (행 21:1-16)

우인택 목사
2026-04-19
조회수 137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사도행전 1장부터 시작된 우리의 강해 여정이 어느덧 91번째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성령의 강한 충고를 두 번이나 듣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지금 바울의 마음은 매우 급합니다. 오순절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에베소에 들르는 것조차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배가 ‘두로’에 정박해서 짐을 내리고 싣는 일주일 동안,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이제 선교 보고를 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피곤하고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우리는 이 장면에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바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바울을 위해 뭔가 특별한 방법을 쓰셔서 좀 더 편안하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동시켜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기적도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바울은 선박들이 왕래하던 항구를 배들의 항해 일정을 그대로 따라 지루하고 힘들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면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기적과 같은 굉장한 일들을 떠올립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사건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평범한 일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성경에 기록된 기적의 이야기들을 거론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이적들은 특별한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에 대한 기록일 뿐, 오직 그러한 사건만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과 성령의 역사는 이 땅의 질서를 존중하며 따르는 것임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 십자가를 지신 것,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와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순교한 것, 이러한 역사가 바로 그 증거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명을 맡았다고 해서 특별 대우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많이 수고했다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힘겹게 배를 타거나 걸어서 귀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주어진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어떤 특별한 배려나 예외적인 수단을 기대하기 이전에 이 땅의 질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높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 만나는 사람마다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면하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4절 함께 읽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두로의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권유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은 매우 모순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을 받게 하신 것은 누구의 뜻입니까? 성령의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령께서 그러한 결박과 환난을 피해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에 매임을 받아 가게 하실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마치 피해 가도 좋을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8~9절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이르렀을 때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말씀하면서, 그의 딸 넷이 처녀로서 예언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도 빌립의 딸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12절에서 또다시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저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아가보’라는 선지자입니다. 유대 땅에서 내려온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으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게다가 아가보 선지자는 오늘 본문 앞부분인 11:28에서 천하가 크게 흉년들 것을 예언하여 적중시킨 당시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만류에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제자들이 아무리 그가 가는 길을 말린다고 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예언 자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받은 제자들과 선지자들은 바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간적인 애정을 담아 그 예언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고난을 피하라는 신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나의 안위와 나의 평안이라는 필터로 걸러서 듣습니다.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손해가 예상되면 “이건 사탄이 방해하는 거야” 혹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아”라고 하며 성급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난받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을 ‘피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준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바울의 믿음이 남달랐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편의대로 해석하지 않는 정직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막는 사람들은 바울을 죽이려는 원수가 아닙니다. 바울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가장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 선생님, 당신이 죽으면 누가 주도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살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하고 바울의 앞길을 막아섰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남다른 믿음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그는 신앙적인 합리성이나 동료들의 애정 어린 충고보다, ‘하나님과 독대하며 받은 개인적 소명’에 더 정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 우리의 사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사람들을 동원하여 막으시더라도, 그러나 우리는 바울을 본받아 주어진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자기 십자가의 길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하니”

  바울의 신앙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에게 있어 일차적 관심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차적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거듭되는 고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물론 우리 성도들조차 일차적 관심의 대상을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둡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 그 판단의 출발점은 언제나 자기입니다.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것도 그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함께 교제하면 나에게 어떠한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복음이 필요한 사람과 가까이하기보다는 나의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더 열심입니다. 모든 판단과 결정의 중심에 자기의 평안과 명예와 이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중심이던 그들의 삶이 예수님 중심, 복음 중심, 이웃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 대표적인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익과 안전보다는 예수님의 이름이 우선이 되고 나아가서는 그의 자랑거리 역시 복음과 교회의 성도들로 변하였습니다(빌 4:1). 

  여러분, 이것이 참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합당한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자기의 안위나 유익보다는 예수님 이름과 영광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이 진정으로 은혜를 알고 입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안전한 길로 가라, 적당히 타협하라, 너의 행복이 제일이다”라고 속삭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고난 없는 복음이 진리인 것처럼 선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은 결박과 죽음을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손해 보아야 할 자리, 하나님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할 자리, 하나님 때문에 매를 맞아야 할 자리까지 감내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임을 우리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거창하게 순교의 자리까지는 아닐지라도, 삶의 작은 현장에서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세상은 여러분을 향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무언가 남다른 믿음을 가졌구나” 이 남다른 믿음의 향기가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의 결단 앞에 우리의 부끄러운 신앙을 내려놓습니다. 우리는 늘 평안한 길만 구했고,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도망쳤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남다른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음성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내 감정보다 사명을 앞세우는 신실한 믿음을 부어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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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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