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에베소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은 5만이나 되는 마술책들을 불태우고, 도시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영적인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이처럼 흥왕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가만히 있을까요? 아닙니다. 반드시 저항과 소동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사역의 절정이자 위기였던 ‘데메드리오 소동’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이 분노했고, 제자들을 위협했습니다. 오늘 이 소동의 현장을 상고하면서 “왜 세상은 복음 앞에서 이토록 격렬하게 소동하는가?”, “이처럼 소동하는 세상에서 성도는 어떤 자세로 서야 하는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성도의 삶을 뒤흔드는 세상의 소란 속에서 오직 주의 말씀만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1절 함께 읽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에베소에서의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려고 한 것은 그동안의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었지만,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잊지 않고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여행을 마치면 항상 사도들이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보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과 겸손은 서로 비례함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근엄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바울이 어렵고 험난한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하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힘들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에베소에서와같이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을 때도 이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당시 세계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삶에 있어서 복음 전도, 곧 생명을 구하는 일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런 비전이나 꿈도 없어 주어지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도는 바울과 같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음 전도, 곧 사람을 살리는 일에 비전을 품고,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품 안에 있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이웃과 지역 사회를 바라보고, 우리나라의 소외된 지역을 바라보며, 더 나아가 북한을, 아시아를, 그리고 땅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더 큰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복음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일은 꼭 내 몸이 땅끝까지 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물질로써, 기도로써, 교육으로써, 선교사를 길러내는 일로써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23절 함께 읽습니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여기에서의 ‘도’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가리킵니다(요 14:6). 그리고 에베소에서 이러한 소동이 일어난 것은 수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에게는 종교적인 자존심과 생업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중대한 위협이자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이 합세하여 바울을 제거하고자, 에베소 전체가 들썩일 만큼의 큰 소동이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 자체는 화목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만,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서는 평화 이전에 심각한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부르며, 한없어 온순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부드럽고 다정하며, 따뜻한 말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용인하고 그들과 타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하고, 그곳에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는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과 분쟁은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먼저, 한 개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를 받아들인 사람의 영혼 속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악한 영들과 잘못된 삶의 방식과의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롬 7장). 그리고 이러한 갈등과 싸움은 한 개인을 넘어 피를 나눈 가족과의 관계로까지 확장되고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 전체로 퍼져 나갑니다(마 10:35).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0:34).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파되는 곳에서 아무런 문제나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 복음이 오히려 이상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대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이 시대의 악에 대해 도전하고 경고하며, 영적인 삶을 올바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이 시대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과 같이 이 시대의 악과 타협함으로써 거짓된 화평과 안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이 땅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회개의 불을 던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거짓되고 더러운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움으로써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품고,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로 거듭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4절 함께 읽습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이 모든 소동의 주동자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세공업자였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당시 아데미는 헬라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었고, 또 에베소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아데미 신전이 있어서 많은 우상 숭배자들이 에베소에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데메드리오는 그들에게 우상을 팔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 인해 우상을 믿던 자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자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아데미 신전이 무시당하고 있다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는 25절과 27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데미에 대한 신앙이 있어 소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아데미에 대한 신앙을 들먹이며 에베소 사람들을 선동했지만, 그 내막에는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에베소의 종교인 아데미 신앙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32절에는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왜 비난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이 외치니까 같이 휩쓸려 외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오늘 본문의 군중들처럼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에게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에는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자들은 데메드리오처럼 교회를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어떤 자들은 명예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어떤 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처럼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의 세속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게 되면, 그 교회는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과거, 중세시대의 교회가 탐욕적인 지배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을 때 심각하게 타락하였던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에 의해 이용되지 않도록, 그들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자기의 이기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을 가려내고 엄히 징계함으로써 교회가 악한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세우신 유일한 구원의 통로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소동은 어떻게 끝이 납니까? 35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인 ‘서기장’을 세우셔서 무리를 진정시키고 바울 일행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력과 제도까지 동원하여 바울과 성도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게 소동해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악한 자들이지만, 그들을 흩으시고 소란을 잠재우시는 분은 역사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 바울처럼 세상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사명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익보다 진리를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은 겸손과 섬김이며, 또한 복음이 처음 선포되는 곳에는 분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섭리를 가슴에 새겨 복음을 전하되, 지혜롭게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악한 자들이 교회에 틈타지 못하도록 의와 사랑과 섬김이 교회의 기둥이 되도록 늘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에베소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은 5만이나 되는 마술책들을 불태우고, 도시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영적인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이처럼 흥왕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가만히 있을까요? 아닙니다. 반드시 저항과 소동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사역의 절정이자 위기였던 ‘데메드리오 소동’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이 분노했고, 제자들을 위협했습니다. 오늘 이 소동의 현장을 상고하면서 “왜 세상은 복음 앞에서 이토록 격렬하게 소동하는가?”, “이처럼 소동하는 세상에서 성도는 어떤 자세로 서야 하는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성도의 삶을 뒤흔드는 세상의 소란 속에서 오직 주의 말씀만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1절 함께 읽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에베소에서의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려고 한 것은 그동안의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었지만,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잊지 않고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여행을 마치면 항상 사도들이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보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과 겸손은 서로 비례함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근엄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바울이 어렵고 험난한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하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힘들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에베소에서와같이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을 때도 이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당시 세계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삶에 있어서 복음 전도, 곧 생명을 구하는 일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런 비전이나 꿈도 없어 주어지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도는 바울과 같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음 전도, 곧 사람을 살리는 일에 비전을 품고,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품 안에 있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이웃과 지역 사회를 바라보고, 우리나라의 소외된 지역을 바라보며, 더 나아가 북한을, 아시아를, 그리고 땅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더 큰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복음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일은 꼭 내 몸이 땅끝까지 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물질로써, 기도로써, 교육으로써, 선교사를 길러내는 일로써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23절 함께 읽습니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여기에서의 ‘도’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가리킵니다(요 14:6). 그리고 에베소에서 이러한 소동이 일어난 것은 수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에게는 종교적인 자존심과 생업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중대한 위협이자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과 현업에 종사하던 자들이 합세하여 바울을 제거하고자, 에베소 전체가 들썩일 만큼의 큰 소동이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 자체는 화목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만,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서는 평화 이전에 심각한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부르며, 한없어 온순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부드럽고 다정하며, 따뜻한 말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용인하고 그들과 타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하고, 그곳에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는 혼란과 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과 분쟁은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먼저, 한 개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를 받아들인 사람의 영혼 속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악한 영들과 잘못된 삶의 방식과의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롬 7장). 그리고 이러한 갈등과 싸움은 한 개인을 넘어 피를 나눈 가족과의 관계로까지 확장되고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 전체로 퍼져 나갑니다(마 10:35).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0:34).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파되는 곳에서 아무런 문제나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 복음이 오히려 이상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대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이 시대의 악에 대해 도전하고 경고하며, 영적인 삶을 올바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이 시대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과 같이 이 시대의 악과 타협함으로써 거짓된 화평과 안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이 땅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회개의 불을 던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거짓되고 더러운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움으로써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품고,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로 거듭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4절 함께 읽습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이 모든 소동의 주동자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세공업자였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당시 아데미는 헬라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었고, 또 에베소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아데미 신전이 있어서 많은 우상 숭배자들이 에베소에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데메드리오는 그들에게 우상을 팔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 인해 우상을 믿던 자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자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아데미 신전이 무시당하고 있다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는 25절과 27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데미에 대한 신앙이 있어 소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아데미에 대한 신앙을 들먹이며 에베소 사람들을 선동했지만, 그 내막에는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에베소의 종교인 아데미 신앙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32절에는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왜 비난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이 외치니까 같이 휩쓸려 외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오늘 본문의 군중들처럼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에게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에는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자들은 데메드리오처럼 교회를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어떤 자들은 명예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어떤 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처럼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의 세속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게 되면, 그 교회는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과거, 중세시대의 교회가 탐욕적인 지배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을 때 심각하게 타락하였던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에 의해 이용되지 않도록, 그들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자기의 이기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을 가려내고 엄히 징계함으로써 교회가 악한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세우신 유일한 구원의 통로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소동은 어떻게 끝이 납니까? 35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인 ‘서기장’을 세우셔서 무리를 진정시키고 바울 일행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력과 제도까지 동원하여 바울과 성도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게 소동해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악한 자들이지만, 그들을 흩으시고 소란을 잠재우시는 분은 역사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 바울처럼 세상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사명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익보다 진리를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은 겸손과 섬김이며, 또한 복음이 처음 선포되는 곳에는 분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섭리를 가슴에 새겨 복음을 전하되, 지혜롭게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악한 자들이 교회에 틈타지 못하도록 의와 사랑과 섬김이 교회의 기둥이 되도록 늘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