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삼일절(1919.3.1)은 단순한 민족운동이 아니라, 당시의 한국 교회가 신앙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전국 만세운동의 상당수가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신앙 공동체를 넘어 정의와 인간 존엄을 위한 공적 역할을 감당했음을 보여 줍니다. 제 107주년 삼일절을 기념하는 오늘, 신앙의 선배들의 나라 사랑, 정의와 인간 존엄 정신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흐르고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상업·문화 중심지로 돈이 모이고, 권력이 모이고, 쾌락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그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은 축구장보다 큰 규모에 127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으로 세워졌는데, 에베소 시민들은 아데미 신전을 보며 종교적으로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의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미신과 수많은 우상이 난무하던 당시 에베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전쟁터와 같은 에베소에 바울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도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습니다. 바울의 눈에 에베소는 물질과 돈은 풍부한데 생명의 말씀이 없어서 타락하고 죽어가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숭배와 마술과 주술이 일상이었던 에베소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의 영적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바울이 무엇으로 이 척박한 땅에서 복음이 힘있게 승리를 거두고 흥왕해 지도록 했는지 찾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8~9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고 권면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경의 예언들을 제시하며 복음을 자세히 풀어 가르치고, 정성으로 권면했음에도 막무가내로 복음을 배척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를 거절하며 ‘작정하고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회당이 아니라 두란노 서원에 가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고 반박에 반박을 거듭합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고, 결국 복음은 사라지고 감정싸움만 남고 맙니다. 또한,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일념하에 죽기 살기로 집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도는 사람이 하되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되 배척하는 자들과 싸우고 논쟁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6장에 복음을 배척하던 자들은 뒤에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14에 제자들을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먼지를 털고 돌아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도를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과 싸우느라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과 쓸데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10절에 바울이 반대자들과 논쟁을 하는 대신 두란노에서의 사역을 통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하는 더 큰 역사를 일으켰던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반대자들과의 논쟁에 빠질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12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의 능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만일, 오늘날에도 바울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가 있다면 아마도 병원은 다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바울만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기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와 안수로써 병자를 낫게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권능은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분명히 있고 또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적은 신앙의 핵심이 아닙니다. 기적은 단지 복음을 확증하는 도구로 나타나는 것일 뿐,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는 큰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큰 기적들이 일어난 것은, 에베소의 경우 우상숭배의 경향이 너무나도 극심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확증하는데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기적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허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기적이 초대교회 당시처럼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굳이 기적을 일으키지 않아도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기적이 신앙의 핵심이라도 되는 듯이 지나치게 기적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기적을 추구하다 보면 그릇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많은 이단들이 병 고침을 내세우며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대개 거짓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설령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귀신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적인 일은 하나님만이 일으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하나님의 능력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인간에 비하면 매우 큰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완전하지만 자기의 하수인을 통해 기적적인 일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13~16절까지에 바울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8장에 성령의 능력을 돈 주고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과 비슷한 사람들로, 시험삼아 바울의 흉내를 내며 악귀를 쫓으려 했습니다.
마술사들이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탐하는 것은, 자기들은 눈속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성령의 능력은 실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어 했고, 흉내까지 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대에도 많은 성도들이 점쟁이를 찾고,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 유대의 한 제사장의 일곱 아들도 예수님의 이름과 바울의 이름을 사칭하여 악귀를 쫓아내고자 하려다 오히려 악귀에게 두들겨 맞고 벌거벗긴 채로 도망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부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과 십자가 형상을 손에 들고 외친다고 해서 마귀가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만이 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던 제사장의 아들들이 마귀에게 망신과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악귀도 예수님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아는데 그치지 말고 그 이름을 믿고 그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령의 능력이 때에 따라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여 바른 신앙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19절 함께 읽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했을 때 나타난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가 하면,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신봉하던 마술책들을 모아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마술사들이 불사른 책의 양이 ‘은 오만’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화폐로 계산하면 약 ‘노동자 140명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습니다.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50억 원이 넘는 액수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마술책들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복음의 능력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바울 한 사람의 진실한 신앙이 한 도시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100명 중 한 명은 성경을, 나머지 99명은 기독교인을 읽는다"라는 무디의 말처럼 내가 변하여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온 도시가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믿음의 꿈을 안고 성령의 권능이 없어 무너져 내린 교회의 위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우상과 미신에 빠진 한 도시를 통째로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함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같은 믿음을 갖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여전히 태우지 못한 ‘마술 책’과 같은 미련과 죄악이 있다면 성령의 불로 태워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오직 주의 말씀만이 흥왕하는 곳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삼일절(1919.3.1)은 단순한 민족운동이 아니라, 당시의 한국 교회가 신앙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전국 만세운동의 상당수가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신앙 공동체를 넘어 정의와 인간 존엄을 위한 공적 역할을 감당했음을 보여 줍니다. 제 107주년 삼일절을 기념하는 오늘, 신앙의 선배들의 나라 사랑, 정의와 인간 존엄 정신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흐르고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상업·문화 중심지로 돈이 모이고, 권력이 모이고, 쾌락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그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은 축구장보다 큰 규모에 127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으로 세워졌는데, 에베소 시민들은 아데미 신전을 보며 종교적으로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의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미신과 수많은 우상이 난무하던 당시 에베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전쟁터와 같은 에베소에 바울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도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습니다. 바울의 눈에 에베소는 물질과 돈은 풍부한데 생명의 말씀이 없어서 타락하고 죽어가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숭배와 마술과 주술이 일상이었던 에베소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의 영적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바울이 무엇으로 이 척박한 땅에서 복음이 힘있게 승리를 거두고 흥왕해 지도록 했는지 찾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8~9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고 권면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경의 예언들을 제시하며 복음을 자세히 풀어 가르치고, 정성으로 권면했음에도 막무가내로 복음을 배척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를 거절하며 ‘작정하고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회당이 아니라 두란노 서원에 가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고 반박에 반박을 거듭합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고, 결국 복음은 사라지고 감정싸움만 남고 맙니다. 또한,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일념하에 죽기 살기로 집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도는 사람이 하되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되 배척하는 자들과 싸우고 논쟁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6장에 복음을 배척하던 자들은 뒤에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14에 제자들을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먼지를 털고 돌아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도를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과 싸우느라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과 쓸데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10절에 바울이 반대자들과 논쟁을 하는 대신 두란노에서의 사역을 통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하는 더 큰 역사를 일으켰던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반대자들과의 논쟁에 빠질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12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의 능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만일, 오늘날에도 바울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가 있다면 아마도 병원은 다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바울만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기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와 안수로써 병자를 낫게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권능은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분명히 있고 또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적은 신앙의 핵심이 아닙니다. 기적은 단지 복음을 확증하는 도구로 나타나는 것일 뿐,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는 큰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큰 기적들이 일어난 것은, 에베소의 경우 우상숭배의 경향이 너무나도 극심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확증하는데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기적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허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기적이 초대교회 당시처럼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굳이 기적을 일으키지 않아도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기적이 신앙의 핵심이라도 되는 듯이 지나치게 기적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기적을 추구하다 보면 그릇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많은 이단들이 병 고침을 내세우며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대개 거짓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설령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귀신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적인 일은 하나님만이 일으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하나님의 능력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인간에 비하면 매우 큰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완전하지만 자기의 하수인을 통해 기적적인 일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13~16절까지에 바울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8장에 성령의 능력을 돈 주고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과 비슷한 사람들로, 시험삼아 바울의 흉내를 내며 악귀를 쫓으려 했습니다.
마술사들이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탐하는 것은, 자기들은 눈속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성령의 능력은 실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어 했고, 흉내까지 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대에도 많은 성도들이 점쟁이를 찾고,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 유대의 한 제사장의 일곱 아들도 예수님의 이름과 바울의 이름을 사칭하여 악귀를 쫓아내고자 하려다 오히려 악귀에게 두들겨 맞고 벌거벗긴 채로 도망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부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과 십자가 형상을 손에 들고 외친다고 해서 마귀가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만이 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던 제사장의 아들들이 마귀에게 망신과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15절에 악귀도 예수님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아는데 그치지 말고 그 이름을 믿고 그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령의 능력이 때에 따라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여 바른 신앙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19절 함께 읽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했을 때 나타난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가 하면,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신봉하던 마술책들을 모아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마술사들이 불사른 책의 양이 ‘은 오만’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화폐로 계산하면 약 ‘노동자 140명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습니다.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50억 원이 넘는 액수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마술책들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복음의 능력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바울 한 사람의 진실한 신앙이 한 도시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100명 중 한 명은 성경을, 나머지 99명은 기독교인을 읽는다"라는 무디의 말처럼 내가 변하여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온 도시가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믿음의 꿈을 안고 성령의 권능이 없어 무너져 내린 교회의 위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우상과 미신에 빠진 한 도시를 통째로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함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같은 믿음을 갖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여전히 태우지 못한 ‘마술 책’과 같은 미련과 죄악이 있다면 성령의 불로 태워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오직 주의 말씀만이 흥왕하는 곳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