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 복음이 과연 진리인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들과 다른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베뢰아 사람들과 똑같은 복음, 똑같은 전도자의 말을 들은 그들은 베뢰아 사람들과 달리 복음을 외면했습니다. 베뢰아가 ‘말씀을 상고하던 도시’였다면, 아덴은 ‘생각을 상고하던 도시’였습니다. 베뢰아는 성경이 기준이었고, 아덴은 인간의 이성과 철학이 기준이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아덴 사람들은 복음을 연구의 대상으로, 토론의 대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복음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베뢰아의 성도인가, 아덴의 청중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아덴(아테네)은 그리스의 종교 철학 과학 수사학 문학의 본거지로, 아덴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아테나’라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아덴은 그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신화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들이 대표적으로 섬기는 신들만 해도 열둘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덴에는 각종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수많은 신전이 건축되었고, 각종 신들을 기념하는 조각품들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아덴에는 사람보다 신상이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약 3만 개 이상의 신상과 제단이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온 성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고 마음에 격분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격분은 아덴을 우상의 도시로 만든 사탄에 대한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아덴 시민들은 스스로 지혜로운 자들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그들의 영적인 눈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대신 허다한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지식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생명 없는 헛된 우상들에게 인생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 풍부한 지식이 오히려 많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이렇게 세상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아덴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며 문명인임을 자처하던 로마 사람들도 수많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황제를 우상화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인간의 영혼이 달에서 와서 달로 간다고 생각하며 달을 숭배했습니다. 또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하늘의 별들도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세상 지식의 실체요, 한계입니다. 아무리 세상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2-23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만 어리석게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고 말았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의분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만든 사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바울의 의분은 그런 사탄에게 속아 수많은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의 신들이 진정 살아있는 신들이라고 믿고 우상을 만든 아덴 시민들의 무지한 어리석음에 대한 의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쉽게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감정에 쉽게 치우쳐 분노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세상의 무지와 불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분을 느껴야 옳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불의에 대해서 자극을 받지 않고 무관심한 사람은 참된 성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의분과 그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복음 전도 대한 열정으로 승화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분노한 것은 아덴 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불의하고 무지몽매한 세상을 보며 바울과 같은 의분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의 열정, 영혼 구원의 열정을 지닌 성도는 사탄에게 속아 우상을 섬기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의분을 느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숭배를 하는 무지한 자들을 볼 때 의분이 일어납니까? 또 그런 자들을 어찌하든지 사탄에게서 구해 내려는 영혼 구원의 열정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이런 의분과 열정을 지닌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이웃을 사탄에게서 구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 복음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과 같은 복음에의 열정을 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7절 함께 읽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18절에 아덴의 광장에서는 철학자들과 토론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한 쾌락주의자들이었고, 스토아학파는 이성에 의한 절제를 강조한 윤리 중심의 학파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철학자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말쟁이’란 쓰레기를 주워 모으듯이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이곳저곳에서 얻어듣고, 그것이 자기의 말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자기주관도 없이 쓰레기 같은 사상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는 수다쟁이나 사기꾼 정도로 격하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9절에, 당시 토론이 자주 이루어졌던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서 아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신에 관한 그릇된 인식을 깨우쳐 주고자 그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들이 알고 있는 신화 속의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세 가지 사실을 통해 밝혔습니다.
1) 바울은 먼저 24절에, ‘하나님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유일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약 3만이 넘는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그들이 섬기는 신 중에는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스스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창조된 신들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은 그러한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로서 유일하신 절대자이심을 밝혔습니다.
2) 다음으로 바울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신전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하나님은 사람이 지으신 성전에만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고 하자 그를 성전 모독자로 규정하여 사형에 처했던 것입니다(행 7:48-50).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이나 신전이나 교회당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라도 거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 하시고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만일, 인간이 만든 곳에 갇혀 있는 제한된 존재라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3) 또, 25절에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존재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 받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신들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그에 상응한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 존재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신화 속의 신들은 모두 인간에게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받아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도, 재능도, 가정도, 물질도, 모든 축복까지도 모두 거저 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화나 세상 종교의 신이나 우상과 같이 만들어진 존재이거나 사람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또 사람에게 무얼 요구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거저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늘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6-27절 함께 읽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인간은 본래 자기의 성찰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더듬다’는 말은 ‘탐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자연과 인류의 모든 삶에 관여하시며 섭리하고 계십니다(시 74:17).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와 만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 1:20 말씀대로, 우리가 자연 만물을 관찰한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가까우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찾으려고 힘쓰면 만나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사람들을 노리갯감으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근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아덴은 오늘 이 시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지성은 높아졌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디오누시오처럼 믿음으로 응답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복음을 평가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복음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알지 못하던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식은 많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덴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우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창조주 하나님만 참 신이심을 고백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 앞에 겸손히 서되, 말씀을 평가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디오누시오처럼 믿음으로 응답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베뢰아 사람들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 복음이 과연 진리인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들과 다른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베뢰아 사람들과 똑같은 복음, 똑같은 전도자의 말을 들은 그들은 베뢰아 사람들과 달리 복음을 외면했습니다. 베뢰아가 ‘말씀을 상고하던 도시’였다면, 아덴은 ‘생각을 상고하던 도시’였습니다. 베뢰아는 성경이 기준이었고, 아덴은 인간의 이성과 철학이 기준이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아덴 사람들은 복음을 연구의 대상으로, 토론의 대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복음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베뢰아의 성도인가, 아덴의 청중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16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아덴(아테네)은 그리스의 종교 철학 과학 수사학 문학의 본거지로, 아덴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아테나’라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아덴은 그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신화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들이 대표적으로 섬기는 신들만 해도 열둘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덴에는 각종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수많은 신전이 건축되었고, 각종 신들을 기념하는 조각품들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아덴에는 사람보다 신상이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약 3만 개 이상의 신상과 제단이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온 성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고 마음에 격분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격분은 아덴을 우상의 도시로 만든 사탄에 대한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아덴 시민들은 스스로 지혜로운 자들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그들의 영적인 눈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대신 허다한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지식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생명 없는 헛된 우상들에게 인생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 풍부한 지식이 오히려 많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당시 이렇게 세상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아덴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며 문명인임을 자처하던 로마 사람들도 수많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황제를 우상화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인간의 영혼이 달에서 와서 달로 간다고 생각하며 달을 숭배했습니다. 또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하늘의 별들도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세상 지식의 실체요, 한계입니다. 아무리 세상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2-23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만 어리석게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고 말았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의분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만든 사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바울의 의분은 그런 사탄에게 속아 수많은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의 신들이 진정 살아있는 신들이라고 믿고 우상을 만든 아덴 시민들의 무지한 어리석음에 대한 의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쉽게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감정에 쉽게 치우쳐 분노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세상의 무지와 불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분을 느껴야 옳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불의에 대해서 자극을 받지 않고 무관심한 사람은 참된 성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의분과 그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복음 전도 대한 열정으로 승화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분노한 것은 아덴 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불의하고 무지몽매한 세상을 보며 바울과 같은 의분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의 열정, 영혼 구원의 열정을 지닌 성도는 사탄에게 속아 우상을 섬기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의분을 느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숭배를 하는 무지한 자들을 볼 때 의분이 일어납니까? 또 그런 자들을 어찌하든지 사탄에게서 구해 내려는 영혼 구원의 열정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이런 의분과 열정을 지닌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이웃을 사탄에게서 구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 복음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과 같은 복음에의 열정을 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7절 함께 읽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18절에 아덴의 광장에서는 철학자들과 토론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추구한 쾌락주의자들이었고, 스토아학파는 이성에 의한 절제를 강조한 윤리 중심의 학파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철학자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말쟁이’란 쓰레기를 주워 모으듯이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이곳저곳에서 얻어듣고, 그것이 자기의 말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자기주관도 없이 쓰레기 같은 사상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는 수다쟁이나 사기꾼 정도로 격하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9절에, 당시 토론이 자주 이루어졌던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서 아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신에 관한 그릇된 인식을 깨우쳐 주고자 그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들이 알고 있는 신화 속의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세 가지 사실을 통해 밝혔습니다.
1) 바울은 먼저 24절에, ‘하나님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유일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약 3만이 넘는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그들이 섬기는 신 중에는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스스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창조된 신들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은 그러한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로서 유일하신 절대자이심을 밝혔습니다.
2) 다음으로 바울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신전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하나님은 사람이 지으신 성전에만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고 하자 그를 성전 모독자로 규정하여 사형에 처했던 것입니다(행 7:48-50).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이나 신전이나 교회당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라도 거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 하시고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만일, 인간이 만든 곳에 갇혀 있는 제한된 존재라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3) 또, 25절에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존재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 받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신들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그에 상응한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 존재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신화 속의 신들은 모두 인간에게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받아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도, 재능도, 가정도, 물질도, 모든 축복까지도 모두 거저 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화나 세상 종교의 신이나 우상과 같이 만들어진 존재이거나 사람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또 사람에게 무얼 요구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거저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늘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6-27절 함께 읽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인간은 본래 자기의 성찰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더듬다’는 말은 ‘탐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자연과 인류의 모든 삶에 관여하시며 섭리하고 계십니다(시 74:17).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와 만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 1:20 말씀대로, 우리가 자연 만물을 관찰한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가까우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찾으려고 힘쓰면 만나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사람들을 노리갯감으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근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아덴은 오늘 이 시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지성은 높아졌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디오누시오처럼 믿음으로 응답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복음을 평가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복음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알지 못하던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식은 많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덴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우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창조주 하나님만 참 신이심을 고백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 앞에 겸손히 서되, 말씀을 평가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디오누시오처럼 믿음으로 응답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