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18장에서 우리는 악인이 당할 비참한 운명을 나열하며 욥을 은근히 악인으로 몰아세운 빌닷의 변론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이 다시 입을 엽니다. 그런데 욥의 첫마디가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고난당하는 이웃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욥이 붙들고 있는 부르짖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교훈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여기에서의 ‘열 번’은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이, 철저하게’라는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전통적인 인과응보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욥의 고난이 그의 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거듭하여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거듭된 주장은 극심한 재앙과 질병으로 엄청난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욥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지금 친구들에게 폭력적 언어로 자기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욥을 학대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친구들의 위로가 학대가 되었을까요? 그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악인은 망한다’라는 성경적인 원리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옳은 말’ 속에 ‘긍휼’이 빠져 있었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실패하고 병들었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빌닷처럼 행동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의 영혼을 짓부수는 일인 줄도 모르고 “기도가 부족한 건 아닐까?”, “하나님 앞에 숨긴 죄가 있는 건 아닐까?”라며 율법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여러분, 긍휼 없는 진리는 폭력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내 입술에 정죄의 칼을 거두게 하시고, 상처 입은 영혼을 싸매는 따뜻한 사랑의 언어를 주옵소서”라고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5절 함께 읽습니다.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친구들은 욥의 불행을 ‘죄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욥이 망했으니 분명 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들은 욥보다 더 의롭다는 영적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 “나는 저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저 사람보다 믿음이 좋다”라는 자만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보며 자신들의 의로움을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자만이 내뿜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이에 욥이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설령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희가 나를 학대할 권리가 된다는 말이냐?”
여러분, 우리 중에 하나님 앞에 허물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남의 눈에 든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 속의 들보를 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인의 고난을 나의 영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도구로 삼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겸비해야 합니다. 오히려 “나도 언제든지 저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겸손을 겸비한 위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6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의 이 말은 “내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은 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그물로 가두셨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을 ‘나를 억울하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불신앙의 고백 같지만 이것은 욥의 ‘처절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의 정죄에는 눈길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고난의 주관자는 너희들이 말하는 ‘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하나님이 자신을 가두는 ‘그물’처럼 느껴지지만, 그 그물을 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결국 그 그물을 걷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욥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그물에 갇힌 것 같은 괴로움이 있습니까? 삶이 여러분을 억울하게 하는 것 같아 답답하십니까? 그러할 때 사람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그물을 치신 하나님의 손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여러분을 그물에 가두어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그 그물 안에서 정금같이 빚어내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물을 찢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혼이 짓부서진 욥의 고통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를 말한다는 핑계로 이웃의 상처에 고통을 더했던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긍휼 없는 진리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고, 오직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언어를 말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가두신 것 같고,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그물을 쥐고 계신 분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임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요일: 약지손가락 기도, 속죄제의 삶> 약지는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병든 분들,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한 분들, 삶의 형편에 지쳐서 믿음이 연약해진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한 주간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속죄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18장에서 우리는 악인이 당할 비참한 운명을 나열하며 욥을 은근히 악인으로 몰아세운 빌닷의 변론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이 다시 입을 엽니다. 그런데 욥의 첫마디가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고난당하는 이웃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욥이 붙들고 있는 부르짖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교훈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2~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여기에서의 ‘열 번’은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이, 철저하게’라는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전통적인 인과응보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욥의 고난이 그의 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거듭하여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거듭된 주장은 극심한 재앙과 질병으로 엄청난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욥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지금 친구들에게 폭력적 언어로 자기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욥을 학대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친구들의 위로가 학대가 되었을까요? 그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악인은 망한다’라는 성경적인 원리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옳은 말’ 속에 ‘긍휼’이 빠져 있었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실패하고 병들었을 때, 우리는 은연중에 빌닷처럼 행동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의 영혼을 짓부수는 일인 줄도 모르고 “기도가 부족한 건 아닐까?”, “하나님 앞에 숨긴 죄가 있는 건 아닐까?”라며 율법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여러분, 긍휼 없는 진리는 폭력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내 입술에 정죄의 칼을 거두게 하시고, 상처 입은 영혼을 싸매는 따뜻한 사랑의 언어를 주옵소서”라고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5절 함께 읽습니다.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친구들은 욥의 불행을 ‘죄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욥이 망했으니 분명 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들은 욥보다 더 의롭다는 영적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 “나는 저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저 사람보다 믿음이 좋다”라는 자만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보며 자신들의 의로움을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자만이 내뿜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이에 욥이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설령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희가 나를 학대할 권리가 된다는 말이냐?”
여러분, 우리 중에 하나님 앞에 허물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남의 눈에 든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 속의 들보를 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인의 고난을 나의 영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도구로 삼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겸비해야 합니다. 오히려 “나도 언제든지 저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겸손을 겸비한 위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6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의 이 말은 “내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은 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그물로 가두셨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을 ‘나를 억울하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불신앙의 고백 같지만 이것은 욥의 ‘처절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의 정죄에는 눈길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고난의 주관자는 너희들이 말하는 ‘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하나님이 자신을 가두는 ‘그물’처럼 느껴지지만, 그 그물을 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결국 그 그물을 걷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욥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그물에 갇힌 것 같은 괴로움이 있습니까? 삶이 여러분을 억울하게 하는 것 같아 답답하십니까? 그러할 때 사람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그물을 치신 하나님의 손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여러분을 그물에 가두어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그 그물 안에서 정금같이 빚어내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물을 찢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혼이 짓부서진 욥의 고통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를 말한다는 핑계로 이웃의 상처에 고통을 더했던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긍휼 없는 진리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고, 오직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언어를 말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가두신 것 같고,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그물을 쥐고 계신 분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임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요일: 약지손가락 기도, 속죄제의 삶> 약지는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병든 분들,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한 분들, 삶의 형편에 지쳐서 믿음이 연약해진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한 주간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속죄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