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설교

48.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욥 16:17-22)

우인택 목사
2026-04-24
조회수 89

17.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어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욥의 원망과 탄식을 상고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쏘시는 화살의 과녁이 되었다고 느꼈고, 이는 마치 하나님이 원수처럼 느껴질 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욥의 시선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친구들은 여전히 욥을 향해 정죄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합니다.


  1. 먼저, 17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그는 7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며, 비참하게 만드셨는가를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자신을 돌아봐도 자신이 하나님께 이처럼 극심한 징계를 받을 만한 죄를 지은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만큼은 잊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18절 함께 읽습니다.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욥의 이 말은 자신의 억울함이 땅에 묻혀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외침입니다. 가인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었던 것처럼,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땅속에 파묻혀 잊히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욥만큼은 아니지만 억울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정직하게 행했는데, 내 진심을 사람들이 오해하고, 무시하고, 비난의 도마 위에 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사람에게 가서 “제발 내 진심을 알아달라”고 설득하십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사람의 귀는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18절에 땅을 향해 외칩니다. “땅아, 내게 닥쳐온 이 잘못된 일을 숨기지 말아라! 애타게 정의를 찾는 내 부르짖음이 허공에 흩어지게 하지 말아라!”(표준새변역성경) 자신의 진실이 하늘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만일 지금까지 여러분의 억울함을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면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헛된 노력일 뿐입니다. 오직 우리의 정직함을 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면 반드시 오해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시고 우리의 억울함 또한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이러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욥은 지금 신앙의 전환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욥이 하는 말을 가지고 욥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친구들의 시선은 욥의 죄를 찾는 데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그 조롱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정죄할 때, 욥이 선택한 것은 똑같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언제든지 여러분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있습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한 고난을 당하느냐? 네가 믿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조롱할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눈이 계속해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눈을 돌려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여러분의 인생은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그 눈물은 더이상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는 거룩한 생명줄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 소리보다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더 크게 들으십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향해 마음껏 눈물을 쏟아내는 기도의 자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자신이 의지하던 친구들은 자신이 처한 고난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고 해석하기에, 이제 자신의 바라보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21절 함께 읽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욥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하셔서 직접 대화하기가 두렵고, 친구들은 너무나 차갑고 편협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 막막한 현실 속에서, 어렴풋이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할 중재자가 계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은 어렴풋이 갈망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해 주실 중재자가 누구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던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피 흘리신 분,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욥은 중재자가 있기를 원했으나, 우리는 지금 중재자를 모시고 삽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기도가 완벽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22절에서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라며 죽음을 예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끝날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길을 넘어서서 우리를 중재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비록 죽음의 문턱을 지나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아픔이 무엇입니까? 억울함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중재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진심을 오해하여 비난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증인이 있음을 믿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에게 변명할 것이 아니라 정결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욥이 하늘의 증인을 바라보며 일어섰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금요일: 새끼손가락 기도> 소지, 곧 새끼손가락은 가장 작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소년소녀가장, 독거어르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의 전반적인 기도 제목과 주일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이웃과의 삶에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속건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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