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15장에는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의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매서워졌습니다. 그는 욥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욥이 내뱉은 탄식을 꼬투리 잡아 죄인으로 몰아세웁니다.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라며 욥을 매우 강하게 정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엘리바스의 지적이 옳은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당하는 이웃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의미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헛된 지식’, ‘동풍’이라고 비판합니다. 여기에서의 ‘동풍’은 이스라엘 광야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으로, 특히 봄철에 많이 불며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는 바람을 뜻합니다(27:21, 창 41:6, 욘 4:8). 그리고 ‘복부’는 가슴, 아랫배, 자궁 등 인체의 빈공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로, 여기에서는 지식과 진리로 채워져야 할 공허한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바스의 이 말은 욥이 지금까지 한 탄식의 말들은 자기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근거없이 한 말들일 뿐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3절에는, 욥의 탄식을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변론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고통 중에 뱉은 탄식들을 아무런 교훈도 되지 않고 도리어 주변을 해치는 독설로 규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바스의 귀에는 욥의 울부짖음이 절제되지 못한 불평으로만 들렸습니다. 욥은 지금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 진실을 찾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그것을 자신이 소유한 신학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며 냉혹하게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종종 엘리바스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공감 없는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당하는 친구의 울부짖는 탄식을 무익한 말로 치부해버리는 순간, 그의 지혜는 동풍보다 더 파괴적인 폭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이웃의 아픔을 율법적인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고통의 신음 속에 담긴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이 말은 엘리바스가 던진 가장 무거운 정죄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께 따져 묻고 항변하는 태도를 보고, 욥이 신앙을 포기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경건한 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다물고 순종해야 하는데, 욥처럼 하나님께 따져 묻듯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엘리바스가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거룩한 척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진실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부르짖기를 기다리시고, 우리가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묻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소유한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거칠고 투박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질문은 결코 경건을 해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마음의 모든 질문과 소원을 숨김없이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6절 함께 읽습니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이 말을 좀 더 쉽게 번역을 하면 “네 죄가 너의 입에 할 말을 가르치고 있구나. 너는 지금 간사한 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 너를 죄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 입이다. 네 입술이 너에게 죄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라는 뜻이 됩니다(현대인의성경).
엘리바스는, 욥이 친구들의 걱정과 권면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자기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어 말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결코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변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욥이 지나치게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같은 극심한 고난을 당할 만한 죄를 지은 일이 없었고, 그러므로 지어낸 말로 자신을 변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과응보라는 논리로 욥의 고난은 그의 죄의 결과임을 확신한 엘리바스에게는 욥의 반론이 자기 죄를 숨기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으로만 들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 잘못은 자기의 의를 변론한 욥에게보다 그릇된 지식으로 욥을 정죄한 엘리바스에게 더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 한 가지는 엘리바스의 말이 암시하고 있듯이 죄는 인간에게로 끝없는 변명과 빠져나갈 구실을 찾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죄가 우리에게 변명과 빠져나갈 구실을 찾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속히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자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죄사함의 은혜와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그 속에 담긴 상한 심령을 보시고 고치시는 분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이러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가기를 다시 한번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바스의 날카로운 정죄를 통해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돌아봅니다. 율법적인 지식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고난당하는 성도의 탄식을 죄의 증거로 삼았던 엘리바스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러한 교만과 무지함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주셔서, 남을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위로하고 살리는 말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 앞에 숨김없는 정직함으로 나아감으로써, 사람의 눈치를 보는 가짜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상한 심령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신음을 기도로 받아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요일: 약지손가락 기도, 속죄제의 삶> 약지는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병든 분들,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한 분들, 삶의 형편에 지쳐서 믿음이 연약해진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한 주간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속죄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15장에는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의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매서워졌습니다. 그는 욥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욥이 내뱉은 탄식을 꼬투리 잡아 죄인으로 몰아세웁니다.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라며 욥을 매우 강하게 정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엘리바스의 지적이 옳은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당하는 이웃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의미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헛된 지식’, ‘동풍’이라고 비판합니다. 여기에서의 ‘동풍’은 이스라엘 광야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으로, 특히 봄철에 많이 불며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는 바람을 뜻합니다(27:21, 창 41:6, 욘 4:8). 그리고 ‘복부’는 가슴, 아랫배, 자궁 등 인체의 빈공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로, 여기에서는 지식과 진리로 채워져야 할 공허한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바스의 이 말은 욥이 지금까지 한 탄식의 말들은 자기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근거없이 한 말들일 뿐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3절에는, 욥의 탄식을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변론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고통 중에 뱉은 탄식들을 아무런 교훈도 되지 않고 도리어 주변을 해치는 독설로 규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바스의 귀에는 욥의 울부짖음이 절제되지 못한 불평으로만 들렸습니다. 욥은 지금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 진실을 찾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그것을 자신이 소유한 신학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며 냉혹하게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종종 엘리바스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공감 없는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당하는 친구의 울부짖는 탄식을 무익한 말로 치부해버리는 순간, 그의 지혜는 동풍보다 더 파괴적인 폭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이웃의 아픔을 율법적인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고통의 신음 속에 담긴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이 말은 엘리바스가 던진 가장 무거운 정죄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께 따져 묻고 항변하는 태도를 보고, 욥이 신앙을 포기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경건한 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다물고 순종해야 하는데, 욥처럼 하나님께 따져 묻듯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엘리바스가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거룩한 척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진실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부르짖기를 기다리시고, 우리가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묻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소유한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거칠고 투박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질문은 결코 경건을 해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마음의 모든 질문과 소원을 숨김없이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6절 함께 읽습니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이 말을 좀 더 쉽게 번역을 하면 “네 죄가 너의 입에 할 말을 가르치고 있구나. 너는 지금 간사한 말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 너를 죄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 입이다. 네 입술이 너에게 죄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라는 뜻이 됩니다(현대인의성경).
엘리바스는, 욥이 친구들의 걱정과 권면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자기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어 말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결코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변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욥이 지나치게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같은 극심한 고난을 당할 만한 죄를 지은 일이 없었고, 그러므로 지어낸 말로 자신을 변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과응보라는 논리로 욥의 고난은 그의 죄의 결과임을 확신한 엘리바스에게는 욥의 반론이 자기 죄를 숨기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으로만 들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 잘못은 자기의 의를 변론한 욥에게보다 그릇된 지식으로 욥을 정죄한 엘리바스에게 더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 한 가지는 엘리바스의 말이 암시하고 있듯이 죄는 인간에게로 끝없는 변명과 빠져나갈 구실을 찾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죄가 우리에게 변명과 빠져나갈 구실을 찾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속히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자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죄사함의 은혜와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그 속에 담긴 상한 심령을 보시고 고치시는 분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이러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가기를 다시 한번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바스의 날카로운 정죄를 통해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돌아봅니다. 율법적인 지식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고난당하는 성도의 탄식을 죄의 증거로 삼았던 엘리바스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러한 교만과 무지함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주셔서, 남을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위로하고 살리는 말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 앞에 숨김없는 정직함으로 나아감으로써, 사람의 눈치를 보는 가짜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상한 심령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신음을 기도로 받아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요일: 약지손가락 기도, 속죄제의 삶> 약지는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병든 분들,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한 분들, 삶의 형편에 지쳐서 믿음이 연약해진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한 주간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속죄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