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기다리겠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욥의 소망을 나누었습니다. 고난의 밤이 아무리 길어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면 견딜 수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긍정적인 미래를 약속하시는 분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욥은 오늘 본문 19절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희망을 주셔야 할 하나님이 오히려 희망을 끊으신다는 것입니다.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사라지듯,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의 희망을 끊으시는 걸까요? 오늘, 욥의 탄식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마음에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8~19절 함께 읽습니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여기에서의 산과 바위는 우리가 인생에서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건강, 자녀의 미래, 평생 일궈온 재산과 명예 등 우리는 우리가 일궈온 그것들이 산처럼, 바위처럼 굳건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흔드시면 산도 무너지고 바위도 사라진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욥에게, 또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그 산을 무너뜨리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소망이라고 믿었던 가짜 희망을 끊어내시기 위함입니다. 땅의 티끌 같은 그러한 거짓 소망이 다 씻겨 내려가야 비로소 그 아래에 있는 영원한 반석인 하나님의 언약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무너져 내리는 산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 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욥은 인간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하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영히 이긴다’라는 말은 ‘끝없이 짓누른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라는 말은 질병 등의 고통으로 인해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고 창백해져 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쫓아 보내신다’라는 표현은 마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것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을 끝없이 누르셔서 도저히 살 수 없게 만드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는 그 허무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내가 죽고 나면 내 자녀들이 존귀하게 되든 비천하게 되든, 나는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고백은 욥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빗대어 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의 철저한 무능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녀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름이 빛나기를 바라지만,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관여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을 ‘영원히 이기신다’라는 말에는 사람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이 조금도 없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내 인생도, 내 자녀의 미래도 내 손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됩니다. 내 희망이 꺾이고 하나님께 완전히 패배하는 그 지점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지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내 주권을 내려놓고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항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2절 함께 읽습니다.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참으로 쓸쓸한 고백입니다. 세상의 희망이 끊어지고 나면 남는 것은 내 살의 통증과 내 마음의 슬픔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고난의 자리에 선 인간은 결국 홀로 남겨진 존재입니다. 내 아픔을 대신 아파해 줄 사람이 없고, 내 슬픔을 온전히 이해해 줄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욥기 14장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지만, 욥의 이 아픔의 자리는 사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내 살이 아프고 내 마음이 슬플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고통의 자리로 직접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끊어지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그 순간,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곁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희망이 끊어진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홀로 기도의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슬픔을 정직하게 쏟아 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짜 희망을 끊으시는 이유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하늘의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패배하고 내 주권이 완전히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의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환경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희망을 끊으셨다고 느껴진다면, 이제는 내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픈 살과 슬픈 마음을 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희망이 끊어진 아픔 위에서 다시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사라지듯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헛된 희망을 끊으실 때, 그러한 절망에 함몰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영원한 소망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고통의 자리, 살이 아프고 마음이 슬픈 그 자리에 있는 성도들을 욥의 세 친구처럼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위로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8.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기다리겠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욥의 소망을 나누었습니다. 고난의 밤이 아무리 길어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면 견딜 수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긍정적인 미래를 약속하시는 분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욥은 오늘 본문 19절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희망을 주셔야 할 하나님이 오히려 희망을 끊으신다는 것입니다.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사라지듯,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의 희망을 끊으시는 걸까요? 오늘, 욥의 탄식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마음에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8~19절 함께 읽습니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여기에서의 산과 바위는 우리가 인생에서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건강, 자녀의 미래, 평생 일궈온 재산과 명예 등 우리는 우리가 일궈온 그것들이 산처럼, 바위처럼 굳건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흔드시면 산도 무너지고 바위도 사라진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욥에게, 또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그 산을 무너뜨리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소망이라고 믿었던 가짜 희망을 끊어내시기 위함입니다. 땅의 티끌 같은 그러한 거짓 소망이 다 씻겨 내려가야 비로소 그 아래에 있는 영원한 반석인 하나님의 언약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무너져 내리는 산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 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욥은 인간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하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영히 이긴다’라는 말은 ‘끝없이 짓누른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라는 말은 질병 등의 고통으로 인해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고 창백해져 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쫓아 보내신다’라는 표현은 마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것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을 끝없이 누르셔서 도저히 살 수 없게 만드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는 그 허무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내가 죽고 나면 내 자녀들이 존귀하게 되든 비천하게 되든, 나는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고백은 욥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빗대어 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의 철저한 무능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녀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름이 빛나기를 바라지만,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관여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을 ‘영원히 이기신다’라는 말에는 사람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이 조금도 없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내 인생도, 내 자녀의 미래도 내 손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됩니다. 내 희망이 꺾이고 하나님께 완전히 패배하는 그 지점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지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내 주권을 내려놓고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항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2절 함께 읽습니다.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참으로 쓸쓸한 고백입니다. 세상의 희망이 끊어지고 나면 남는 것은 내 살의 통증과 내 마음의 슬픔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고난의 자리에 선 인간은 결국 홀로 남겨진 존재입니다. 내 아픔을 대신 아파해 줄 사람이 없고, 내 슬픔을 온전히 이해해 줄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욥기 14장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지만, 욥의 이 아픔의 자리는 사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내 살이 아프고 내 마음이 슬플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고통의 자리로 직접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끊어지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그 순간,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곁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희망이 끊어진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홀로 기도의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슬픔을 정직하게 쏟아 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짜 희망을 끊으시는 이유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하늘의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패배하고 내 주권이 완전히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의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환경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희망을 끊으셨다고 느껴진다면, 이제는 내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픈 살과 슬픈 마음을 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희망이 끊어진 아픔 위에서 다시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사라지듯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헛된 희망을 끊으실 때, 그러한 절망에 함몰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영원한 소망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고통의 자리, 살이 아프고 마음이 슬픈 그 자리에 있는 성도들을 욥의 세 친구처럼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위로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