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설교

39. 나무보다 못한 인생, 그러나 하나님이 깨우시면 (욥 14:7-12)

우인택 목사
2026-04-13
조회수 89

7.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11.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12.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인생은 꽃과 같고 그림자 같다”라는 욥의 탄식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인생은 짧고, 걱정이 가득하고, 자기 힘으로는 조금도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는 연약함에 대한 탄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인간을 '길가에 서 있는 나무'와 비교합니다. 그런데 욥의 눈에 비친 인간은 나무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진다고 고백합니다. 길가에 있는 나무에게도 있는 새 생명의 희망이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합니다. 이러한 욥의 탄식에서, 세상이 말하는 절망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7절 함께 읽습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욥은 나무의 생명력에 대하여 말합니다. 나무는 도끼에 찍혀도 잘려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납니다. 이어지는 8~9절에 기록된 것처럼, 뿌리가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은 것같이 보여도, 비가 내리면 신기하게도 다시 싹이 나고 가지가 자랍니다. 마치 새로 심은 나무처럼 살아납니다. 고난 중에 드리워진 극심한 죽음의 고통 아래에 있는 욥은 그 고통에 짓눌려 나무의 생명력까지도 부럽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저 나무는 도끼에 잘려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데,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욥처럼 오히려 더 큰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꽃은 다시 피는데, 내 건강은, 내 무너진 삶은 왜 다시 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면 누구든지 이러한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이 이처럼 처절하게 탄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고통의 날에 여러분의 입술에서 원망과 탄식이 흘러나오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고통 가운데 탄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탄식을 사람들에게 앞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원히 주저앉는 고통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상고하면서 배우게 되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에 대한 것입니다. 고통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할 때만이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나는 저 나무만도 못하다”라고 낙심하는 분이 계신다면, 욥의 이 솔직한 탄식을 여러분의 탄식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욥의 이 고백은 나무의 희망과는 잔인할 만큼 차가운 대조를 이룹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힘이 센 장정이라도,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이룬 인생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소멸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11절의 비유는 더 절망적입니다. 바닷물이 증발하고 강물이 마르면 흔적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도 한번 마르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나무는 물 기운에 반응하지만, 인간은 죽고 나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습니다. 더욱이 11절에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것은 인간의 허무함을 부각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왜 불안해합니까? 내 생명의 근원이 내 능력이나 소유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그것들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메말라 갈라진 강바닥처럼 속절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은 지금 인간의 절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고백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 너머에 계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음을 인정하는 그 지점이, 비로소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지점임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욥의 이러한 고백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의 때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이 고백은 마치 “죽으면 끝이다, 다시는 잠에서 깰 수 없다”라는 절망의 선언 같이 들려집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해 보면 그 뜻이 달리 느껴집니다. 사람이 스스로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한다는 말은, 누군가 밖에서 깨워주셔야만 일어날 수 있다는 간절한 갈망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면, 욥은 지금 “인간은 나무보다 못해서 스스로 싹을 틔울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죽음에서 건져주셔야 합니다”라는 외침으로 들려집니다. 욥은 지금 자신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습니다.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깨지 못할 깊은 잠, 즉 죽음의 잠을 깨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신앙은 자신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는 메말라 갈라진 강바닥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지 않으시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탄식하는 신앙입니다. 죽음 같은 잠에 빠져 있는 나를 깨워 일으키실 유일한 분은 우리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제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른 검불 같은 저를 주님의 생기로 깨워주옵소서”라고 간구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의 강물이 마를 때 낙심하지 않게 붙잡아주옵소서. 내 힘으로 해결하려 발버둥 치기보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절망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뜨려 주시고,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는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마른 뼈와 같은 우리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의 물가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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