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지난 13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향해 “왜 나를 원수처럼 여기십니까?”라며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이제 14장에 들어서면서 욥의 시선은 자신의 고난을 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허무함에 대하여 토로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허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우리가 단명하여 삶이 짧아 겪는 괴로움이라도 함께 적든가, 장수하여 사는 날이 길어서 괴로움이 분산되어 임하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시편 90:10에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길지라고 그 삶에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2:23에서 솔로몬은 사람의 일평생은 근심과 슬픔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고통과 괴로움을 피해 갈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지혜롭게 살면 고난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큰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은 고난 없어 살아간다고들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보면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고난을 피해가지 못했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도 고난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예수님의 사도들도 고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표상이 될 만한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달려갈 사명의 길을 완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분들은 고난속에서도 철두철미하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극한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을 오직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속에서 약해집니까? 왜 원망의 마음이 생깁니까? 왜 그렇게 견디기 힘듭니까? 원인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기가 좋아도 믿음이 약하면 사는 것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것은 더 늘어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죄없이 감옥에 갇혀도 찬송과 기도가 나옵니다(행 17:25). 밭에 소출이 없고,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게 되어있습니다(합 3:17~18).
그러므로 여러분,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만 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의 내면을 믿음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살 길입니다. 믿음만이 능력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더욱 강한 믿음으로 삶의 모든 근심 걱정을 감사와 찬송으로 변화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성경에는 인생을 꽃에 비유하는 곳은 많습니다(시 103:15~16, 약 1:10~11, 벧전 1:24). 그런데 그러한 말씀에서 꽃의 이미지는 아름다움보다는 피어 있는 기간이 아주 짧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꽃은 피어 있는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오죽하면 열흘 이상 가는 꽃이 없다는 격언이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이 땅의 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시면 우리는 한낱 피었다 지는 들꽃과 같고, 잠깐 비치다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차 방심하는 순간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헛살았다, 잘못 살았다는 고백을 하는 처지에 설 수 있습니다. 너무 늦었을 때 이것을 깨닫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늘 살피고 겸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주어진 시간을 정말 귀한 일에,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하여 훗날 정말 인생을 잘 살았다고, 꼭 써야 할 곳에 자기 인생을 사용하였다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욥을 동방 최고의 지혜자로 인정한다면 욥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욥이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인생은 매우 짧고 허무하니 아등바등 살지 말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영원하신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의미로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붙들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잡히지 않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이신 하나님을 붙잡게 된다는 의미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허무하게 사라질 그림자를 쫓는 삶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이 말은 인간의 원죄와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샘물에서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없듯이, 죄인인 인간에게서 온전한 의로움이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네가 깨끗해지면 복을 받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본질적으로 더러운 자입니다. 제 힘으로는 도무지 깨끗해질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내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내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나를 깨끗하게 하실 분’, 즉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해집니다.
그리고 5~6절 함께 읽습니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인생의 생사화복, 그 모든 시간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그 누구도 어길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잠시 눈을 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품꾼처럼,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그저 조용히 생을 마칠 수 있게 내버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품꾼은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칩니다. 수고를 멈추고 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날수를 정하셨다면, 그 날수가 다하는 날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환경 때문에 분노하기보다, 내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품꾼의 수고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우리의 날수를 정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고, 그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이 짧은 삶을 살면서 걱정이 가득한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세상의 헛된 영광과 그림자를 따르는 삶을 멈추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생명의 선한 삶을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이요 영원한 소망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지난 13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향해 “왜 나를 원수처럼 여기십니까?”라며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이제 14장에 들어서면서 욥의 시선은 자신의 고난을 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허무함에 대하여 토로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허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우리가 단명하여 삶이 짧아 겪는 괴로움이라도 함께 적든가, 장수하여 사는 날이 길어서 괴로움이 분산되어 임하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시편 90:10에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길지라고 그 삶에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2:23에서 솔로몬은 사람의 일평생은 근심과 슬픔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고통과 괴로움을 피해 갈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지혜롭게 살면 고난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큰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은 고난 없어 살아간다고들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보면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고난을 피해가지 못했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도 고난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예수님의 사도들도 고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표상이 될 만한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달려갈 사명의 길을 완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분들은 고난속에서도 철두철미하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극한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을 오직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속에서 약해집니까? 왜 원망의 마음이 생깁니까? 왜 그렇게 견디기 힘듭니까? 원인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기가 좋아도 믿음이 약하면 사는 것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것은 더 늘어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죄없이 감옥에 갇혀도 찬송과 기도가 나옵니다(행 17:25). 밭에 소출이 없고,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게 되어있습니다(합 3:17~18).
그러므로 여러분,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만 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의 내면을 믿음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살 길입니다. 믿음만이 능력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더욱 강한 믿음으로 삶의 모든 근심 걱정을 감사와 찬송으로 변화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성경에는 인생을 꽃에 비유하는 곳은 많습니다(시 103:15~16, 약 1:10~11, 벧전 1:24). 그런데 그러한 말씀에서 꽃의 이미지는 아름다움보다는 피어 있는 기간이 아주 짧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꽃은 피어 있는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오죽하면 열흘 이상 가는 꽃이 없다는 격언이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이 땅의 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시면 우리는 한낱 피었다 지는 들꽃과 같고, 잠깐 비치다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차 방심하는 순간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헛살았다, 잘못 살았다는 고백을 하는 처지에 설 수 있습니다. 너무 늦었을 때 이것을 깨닫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늘 살피고 겸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주어진 시간을 정말 귀한 일에,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하여 훗날 정말 인생을 잘 살았다고, 꼭 써야 할 곳에 자기 인생을 사용하였다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욥을 동방 최고의 지혜자로 인정한다면 욥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욥이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인생은 매우 짧고 허무하니 아등바등 살지 말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영원하신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의미로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붙들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잡히지 않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이신 하나님을 붙잡게 된다는 의미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허무하게 사라질 그림자를 쫓는 삶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이 말은 인간의 원죄와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샘물에서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없듯이, 죄인인 인간에게서 온전한 의로움이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네가 깨끗해지면 복을 받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본질적으로 더러운 자입니다. 제 힘으로는 도무지 깨끗해질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내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내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나를 깨끗하게 하실 분’, 즉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해집니다.
그리고 5~6절 함께 읽습니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인생의 생사화복, 그 모든 시간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그 누구도 어길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잠시 눈을 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품꾼처럼,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그저 조용히 생을 마칠 수 있게 내버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품꾼은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칩니다. 수고를 멈추고 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날수를 정하셨다면, 그 날수가 다하는 날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환경 때문에 분노하기보다, 내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품꾼의 수고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우리의 날수를 정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고, 그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이 짧은 삶을 살면서 걱정이 가득한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세상의 헛된 영광과 그림자를 따르는 삶을 멈추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생명의 선한 삶을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이요 영원한 소망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