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지난 본문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지만 자신에게 어떤 위로도 용기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했지만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말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참된 섭리를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욥은 시선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겠다”라고 토로합니다.
많은 경우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피하거나,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내 팔자지”하며 주저앉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직면’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붙잡아야 할 ‘진짜 믿음’의 태도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네가 죄가 있어서 그렇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니까 벌 받는 거다”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이 내린 이러한 결과는 그럴듯하게 들리고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런데 욥은 화를 내며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그리고 14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여기에서 ‘내 살을 이로 문다, 내 생명을 내 손에 둔다’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던지다’라는 뜻의 관용구입니다. 평소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외하던 욥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3절에, 용기를 내어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말하고, 14절의 이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주어진 모든 일이 무조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이해되지 않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정직하게 묻는 신앙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적당히 경건한 척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욥처럼, 우리가 이미 상고했던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로 하나님과 독대할 때, 비로소 형식적인 신앙의 껍질이 벗겨지게 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사람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직면할 용기를 달라고 간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의 이 고백은 욥기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고백 중 하나입니다. 이 고백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며 내 사정을 아뢰겠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때만 신뢰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려 하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나를 죽이시려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나를 살리실 분도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욥은 믿었던 것입니다.
특히, 16절 함께 읽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욥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숨기는 것이 없는 정직함’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선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만, 경건한 자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찾으신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나의 비참함과 억울함, 이해할 수 없는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욥이 고백하는 ‘구원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삶의 문제를 하나님 밖에서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결판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러분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욥과 같이 숨기지 않는 정직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나는 이제 재판받을 마음 준비가 다 되어 있고, 무죄로 풀려날 줄도 알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았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욥이 교만해서 내뱉은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모든 사정을 쏟아놓고 나니, 이제는 결과에 상관없이 평안이 찾아왔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9절 함께 읽습니다.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이 말은 “만일 누군가 내 진실함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즉시 입을 닫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과 충분히 대화하고 그분 앞에 내 모든 것을 쏟아놓은 사람은 더이상 사람 앞에서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진심을 아신다는 확신이 들면,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든 잠잠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불안합니까? 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립니까?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사정을 다 아뢰고 나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정죄할 수 없는 당당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람의 판단 앞에서는 잠잠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당당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도 때로 욥과 같이 죽음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숨기는 것이 없는 정직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위로에 매달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지난 본문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지만 자신에게 어떤 위로도 용기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했지만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말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참된 섭리를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욥은 시선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겠다”라고 토로합니다.
많은 경우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피하거나,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내 팔자지”하며 주저앉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직면’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붙잡아야 할 ‘진짜 믿음’의 태도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네가 죄가 있어서 그렇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니까 벌 받는 거다”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이 내린 이러한 결과는 그럴듯하게 들리고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런데 욥은 화를 내며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그리고 14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여기에서 ‘내 살을 이로 문다, 내 생명을 내 손에 둔다’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던지다’라는 뜻의 관용구입니다. 평소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외하던 욥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3절에, 용기를 내어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말하고, 14절의 이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주어진 모든 일이 무조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이해되지 않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정직하게 묻는 신앙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적당히 경건한 척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욥처럼, 우리가 이미 상고했던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로 하나님과 독대할 때, 비로소 형식적인 신앙의 껍질이 벗겨지게 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사람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직면할 용기를 달라고 간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의 이 고백은 욥기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고백 중 하나입니다. 이 고백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며 내 사정을 아뢰겠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때만 신뢰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려 하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나를 죽이시려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나를 살리실 분도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욥은 믿었던 것입니다.
특히, 16절 함께 읽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욥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숨기는 것이 없는 정직함’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선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만, 경건한 자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찾으신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나의 비참함과 억울함, 이해할 수 없는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욥이 고백하는 ‘구원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삶의 문제를 하나님 밖에서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결판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러분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욥과 같이 숨기지 않는 정직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나는 이제 재판받을 마음 준비가 다 되어 있고, 무죄로 풀려날 줄도 알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았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욥이 교만해서 내뱉은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모든 사정을 쏟아놓고 나니, 이제는 결과에 상관없이 평안이 찾아왔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9절 함께 읽습니다.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이 말은 “만일 누군가 내 진실함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즉시 입을 닫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과 충분히 대화하고 그분 앞에 내 모든 것을 쏟아놓은 사람은 더이상 사람 앞에서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진심을 아신다는 확신이 들면,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든 잠잠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불안합니까? 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립니까?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사정을 다 아뢰고 나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정죄할 수 없는 당당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람의 판단 앞에서는 잠잠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당당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도 때로 욥과 같이 죽음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숨기는 것이 없는 정직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위로에 매달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