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오늘 본문은 일곱째 대접 재앙에 의하여 파괴된 세상 문명의 상징인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세 부류의 세상 기득권자들의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9-10절에 기록된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던 땅의 왕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바벨론에 충성하고 또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했던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둘째 부류는 11-17절 전반부에 기록된 바벨론을 통해 부를 축적한 땅의 상인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보호와 혜택 아래서 불의한 방법으로큰 부를 축적해 왔던 재벌들을 상징합니다.
셋째 부류는 17절 후반부-19절에 기록된 바다에서 일하는 선장들과 선원, 그리고 선객들입니다. 이들은 땅의 상인들을 도우면서 그들과 함께 세상의 풍요를 누리던 세상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세 부류가 부르는 애가는 서로 다르면서도 세 가지의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벨론이 멸망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이 없어진 것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벨론이 받은 심판이 자기들에게도 미칠까 염려하여 멀리 서서 애가를 불렀다는 것입니다(10, 15, 17절).
셋째는 견고하고 화려했던 바벨론이 순식간에 갑자기 멸망한 사실로 인하여 놀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9절에,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땅의 왕들이 가슴을 치며 울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땅의 왕들은 음녀 바벨론의 그늘 아래서 권세를 잡고 그녀와 함께 음행과 우상숭배와 사치를 일삼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슴을 치며 울고 슬퍼한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음녀의 죄에 동참했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지난 잘못을 후회하면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슬픔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리고 즐겨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의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권력자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까요? 조금 더 잘 살겠다고 범죄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세상에서 잘 먹고 오래 살고 싶어 합니까?
그들에게는 이 땅의 삶 이외의 다른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땅의 왕을 상징하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던 로마 사람들이 얼마만큼 퇴폐와 향락과 사치에 빠졌는가 하면 이들을 풍자하는 글 중에는 “현대에 사는 우리는 로마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향락에 있어서 어린 애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지금 이 시대 최고의 화려한 사치는 로마 사람들의 사치와 비교하면 가난뱅이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원로원 의원이 너무 값싼 집에 살거나 시종을 적게 데리고 마차를 타고 다니면 그 신분을 잃었다”는 기록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불행, 복과 저주의 기준은 오직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물질의 기반을 잃었으니 땅을 치며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일 그들에게 이 땅의 소망 이외의 다른 소망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만일 이 땅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에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 확신했다면 이 땅의 모든 것을 가차없이 버리고서라도 천국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돈과 물질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갖고 있었던 그들이 택한 것은 오직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녀 바벨론과 함께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가진 소망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돈이나 세상 지식이나 세상 권력은 아닙니까?
또, 지금 여러분이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친구, 이웃, 가족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돈입니까?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입니까?
오늘, 여러분의 소망과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돌아 보시되, 오늘 본문의 사람들과 같은 멸망당할 것에 그것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 있다면, 그 관계를 예수님 안에서의 소망과 관계로 변화시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17절 전반부에 바벨론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두 번째 부류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땅의 상인들로서 바벨론의 보호 아래서 큰 부를 축적해 왔던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과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들이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11절에 그들이 눈물 흘리는 이유에 대하여 더 이상 그들의 상품을 사줄 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바벨론의 멸망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상품을 구매해 줄 고객이 사라졌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의 실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익이 사라질 때 가장 안타까워하고 슬퍼합니다. 입으로는 정의, 공의, 사랑, 구제를 외치지만 실상은 모두가 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 이익의 중심에는 반드시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선행조차도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귀가 인간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소유욕은 오직 마귀가 주는 악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소유욕에 빠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남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의 실수를 은근히 좋아하게 되고, 그의 기쁨은 오직 자기 소유가 많아지는 것과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타인의 큰 고난보다 자신의 작은 아픔을 더 괴로워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이들 땅의 상인들과 같이 사탄이 주는 이기적인 소유욕에 빠져서 살고 있는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12-13절에 기록된 땅의 상인들이 취급하는 상품들 중에는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품목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들’입니다. 물론, 사도 요한 당시에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상인들의 매매 품목에 들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의 영혼을 매매’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섬뜩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임박하게 되면 인간의 존귀함이 박탈당하고 생명 경시의 풍조가 극에 달하게 됨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그런데 17절에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자기 몸과 영혼까지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1)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 돌이키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의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여러분,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세상의 부를 탐하지 말고 하늘에 부를 쌓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마 6:19, 2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6)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수록 인간의 존귀함이 박탈당하고 생명 경시의 풍조가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7중반부-19절에 바벨론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세 번째 부류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땅의 상인들의 상품을 바벨론으로 실어 나르는 선장과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애통함을 나타내기 위해 19절에 보시면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렸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수치나 슬픔이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던 유대인들의 상징적인 행동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의 두 부류처럼 이들의 애통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애통의 이유 또한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자신들의 수입의 원천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동반자였던 바벨론의 멸망이 슬퍼서 애통해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 때문에 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애통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애통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애통은 이타적인 애통입니다. 진정한 애통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아주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얻습니다. 첫째는 이 땅에서 아무리 강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일순간에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썩어질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악인들의 기초는 거짓과 이기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입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배반하고 등을 돌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1. 지금 이 시대에 사탄의 꾐에 넘어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바벨론에 충성하고 또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누구 입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2. 지금 이시대에 바벨론을 통해 불의한 방법으로 수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는 재벌들이 있습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3. 지금 이시대에 재벌들을 도우면서 그들과 함께 불의한 방법으로 세상의 풍요를 누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탄의 하수인인 음녀 바벨론에 기생하며 자신의 권력과 부와 삶을 누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저희들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그러한 자들을 분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을 멸망에서 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오늘 본문은 일곱째 대접 재앙에 의하여 파괴된 세상 문명의 상징인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세 부류의 세상 기득권자들의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9-10절에 기록된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던 땅의 왕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바벨론에 충성하고 또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했던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둘째 부류는 11-17절 전반부에 기록된 바벨론을 통해 부를 축적한 땅의 상인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보호와 혜택 아래서 불의한 방법으로큰 부를 축적해 왔던 재벌들을 상징합니다.
셋째 부류는 17절 후반부-19절에 기록된 바다에서 일하는 선장들과 선원, 그리고 선객들입니다.
이들은 땅의 상인들을 도우면서 그들과 함께 세상의 풍요를 누리던 세상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세 부류가 부르는 애가는 서로 다르면서도 세 가지의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벨론이 멸망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이 없어진 것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벨론이 받은 심판이 자기들에게도 미칠까 염려하여 멀리 서서 애가를 불렀다는 것입니다(10, 15, 17절).
셋째는 견고하고 화려했던 바벨론이 순식간에 갑자기 멸망한 사실로 인하여 놀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9절에,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땅의 왕들이 가슴을 치며 울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땅의 왕들은 음녀 바벨론의 그늘 아래서 권세를 잡고 그녀와 함께 음행과 우상숭배와 사치를 일삼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슴을 치며 울고 슬퍼한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음녀의 죄에 동참했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지난 잘못을 후회하면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슬픔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리고 즐겨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의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권력자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까요?
조금 더 잘 살겠다고 범죄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세상에서 잘 먹고 오래 살고 싶어 합니까?
그들에게는 이 땅의 삶 이외의 다른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땅의 왕을 상징하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던 로마 사람들이 얼마만큼 퇴폐와 향락과 사치에 빠졌는가 하면 이들을 풍자하는 글 중에는 “현대에 사는 우리는 로마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향락에 있어서 어린 애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지금 이 시대 최고의 화려한 사치는 로마 사람들의 사치와 비교하면 가난뱅이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원로원 의원이 너무 값싼 집에 살거나 시종을 적게 데리고 마차를 타고 다니면 그 신분을 잃었다”는 기록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불행, 복과 저주의 기준은 오직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물질의 기반을 잃었으니 땅을 치며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일 그들에게 이 땅의 소망 이외의 다른 소망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만일 이 땅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에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 확신했다면 이 땅의 모든 것을 가차없이 버리고서라도 천국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돈과 물질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갖고 있었던 그들이 택한 것은 오직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녀 바벨론과 함께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가진 소망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돈이나 세상 지식이나 세상 권력은 아닙니까?
또, 지금 여러분이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친구, 이웃, 가족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돈입니까?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입니까?
오늘, 여러분의 소망과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돌아 보시되, 오늘 본문의 사람들과 같은 멸망당할 것에 그것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 있다면, 그 관계를 예수님 안에서의 소망과 관계로 변화시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17절 전반부에 바벨론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두 번째 부류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땅의 상인들로서 바벨론의 보호 아래서 큰 부를 축적해 왔던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과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들이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11절에 그들이 눈물 흘리는 이유에 대하여 더 이상 그들의 상품을 사줄 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바벨론의 멸망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상품을 구매해 줄 고객이 사라졌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의 실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익이 사라질 때 가장 안타까워하고 슬퍼합니다.
입으로는 정의, 공의, 사랑, 구제를 외치지만 실상은 모두가 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 이익의 중심에는 반드시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선행조차도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귀가 인간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소유욕은 오직 마귀가 주는 악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소유욕에 빠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남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의 실수를 은근히 좋아하게 되고, 그의 기쁨은 오직 자기 소유가 많아지는 것과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타인의 큰 고난보다 자신의 작은 아픔을 더 괴로워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이들 땅의 상인들과 같이 사탄이 주는 이기적인 소유욕에 빠져서 살고 있는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12-13절에 기록된 땅의 상인들이 취급하는 상품들 중에는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품목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들’입니다.
물론, 사도 요한 당시에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상인들의 매매 품목에 들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의 영혼을 매매’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섬뜩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임박하게 되면 인간의 존귀함이 박탈당하고 생명 경시의 풍조가 극에 달하게 됨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그런데 17절에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자기 몸과 영혼까지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1)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 돌이키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의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여러분,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세상의 부를 탐하지 말고 하늘에 부를 쌓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마 6:19, 2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6)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수록 인간의 존귀함이 박탈당하고 생명 경시의 풍조가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7중반부-19절에 바벨론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세 번째 부류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땅의 상인들의 상품을 바벨론으로 실어 나르는 선장과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애통함을 나타내기 위해 19절에 보시면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렸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수치나 슬픔이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던 유대인들의 상징적인 행동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의 두 부류처럼 이들의 애통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애통의 이유 또한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자신들의 수입의 원천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동반자였던 바벨론의 멸망이 슬퍼서 애통해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 때문에 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애통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애통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애통은 이타적인 애통입니다.
진정한 애통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아주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얻습니다.
첫째는 이 땅에서 아무리 강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일순간에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썩어질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악인들의 기초는 거짓과 이기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입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배반하고 등을 돌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1. 지금 이 시대에 사탄의 꾐에 넘어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바벨론에 충성하고 또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누구 입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2. 지금 이시대에 바벨론을 통해 불의한 방법으로 수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는 재벌들이 있습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3. 지금 이시대에 재벌들을 도우면서 그들과 함께 불의한 방법으로 세상의 풍요를 누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탄의 하수인인 음녀 바벨론에 기생하며 자신의 권력과 부와 삶을 누리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저희들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그러한 자들을 분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을 멸망에서 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