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큰 계명 두 가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 사랑은 ‘예배’로 표현되고, 이웃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곧 예배와 섬김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사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예배는 잘 드리는데 섬길 줄은 모릅니다. 또 어떤 분은 섬기는 일은 잘하는데 예배에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모두 예배도, 섬김도 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예배와 섬김은 각각 다른 일이 아니라 긴밀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이웃을 잘 섬길 수 있는 동력이 되기에,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예배를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아바드’라고 하는데 ‘섬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도 ‘섬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서비스’라 하는데 이 역시 ‘섬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웃사랑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섬김을 이웃을 섬기는 것을 통해 증명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인 예배는 원인이고 이웃사랑인 섬김은 예배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린다 해도 이웃을 섬길 줄 모르면 바른 예배자라 할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열심히 섬긴다고 해도 예배에 소홀히 하면 그 섬김도 바른 섬김이 되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바로, 가정 공동체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섬김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공동체를 만드셨는데 그곳이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가장 기본적인 교회공동체이기에 가정이 올바르게,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먼저는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녀 간에 그 관계의 기초로서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가정이 화평해지고,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동탄영락교회 목사로서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우리 성도님들의 온 가족들이 주일이면 다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비전을 품음으로, 서로 대화가 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가정공동체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두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실 때 무엇보다도 특별히 이를 위해 간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일곱 인의 재앙’이고(6장), 2단계는 ‘일곱 나팔의 재앙’(8-9장), 마지막으로 3단계는 ‘일곱 대접의 재앙’(16장)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17-18장에서는 '큰 음녀'로 상징되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는데, 오늘 본문이 속한 17장에서는 큰 음녀인 바벨론의 영적, 도덕적, 정신적인 타락에 대하여 다루고 있고, 이어지는 18장에서는 큰 그녀의 정치적인 멸망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를 잠시 멈추고 추가로 기록된 계시인데, 이렇게 중간에 새로운 하나의 계시가 추가된 형식으로 기록된 계시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모두 일곱 개가 있습니다(7:1-17, 10:1-11, 11:1-13, 12:1-17, 13:1-18, 14:1-20, 17:1-18:24).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계시에 해당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큰 음녀가 어떻게 열국을 음란으로 부패시킬 것인지, 또 그가 마침내 어떻게 멸망을 당할 것인지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속이는 꾀와 그 치밀한 계획 등을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사도 요한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의 하나로부터 ‘이리로 오라’는 부름을 받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부름을 받는 장면은 모두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모두 다 중요한 계시를 강조할 때였습니다(4:1, 17:1, 21:9).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의 부름은 큰 음녀로 상징되는 장차 멸망 받을 사탄의 세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구원받을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기 위한 부름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심판받을 사탄의 정체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절에 의하면 여기서의 ‘큰 음녀’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설명하기를 큰 음녀는‘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에서 ‘많은 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물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부요한 국가들은 큰 강을 끼고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도시들은 주로 큰 강이나 바다 주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강과 바다는 외세의 침입을 막아주는 ‘천연의 방어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말은 물질적으로는 큰 풍요를 누리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큰 음녀로 상징되는 사탄의 세력은 이 땅에서 큰 풍요와 큰 권세를 누리는 존재이자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이 세상의 모든 풍요와 권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위시한 사탄의 세력들은 자기 밑에 들어오면 큰 풍요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미혹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그것에 더하여 음란과 쾌락과 술취함을 제공합니다. 그러하기에 낚시 미끼를 문 물고기가 결코 탈출할 수 없듯이 그들의 미혹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가하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을 당하고도 회개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그들의 미혹에 중독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이러한 미혹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온 세상이 큰 음녀의 미혹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거리는 모두가 음란하고, 음침하고, 생각을 넘어서는 폭력과 육체적인 자극과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영혼이 없이 육체만 살아 움직이며 살과 피를 탐하는 ‘좀비’를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인격은 사라지고 폭력과 육체적인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여러분, 저는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은연중에 자신이 처한 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들이 지금 이러한 삶을 살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나간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절실하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필요한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니 복음을 가장한 적그리스도를 복음인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숭고한 요한계시록 의 내용이 바로 그러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 에베소서 6:12에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요한계시록을 통해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에게 속아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다시 불러일으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큰 음녀에게 미혹을 당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큰 음녀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여기에서의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에 대한 힌트를 4절에서 찾게 됩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큰 음녀의 손에는 금잔이 들려 있었고 그 잔 안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의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것’들을 상징합니다. 음녀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빠져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죄짓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품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창 8:12).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당시뿐만 아니라 이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죄에 빠져 흥청거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추한 탐욕에 미혹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음행의 포도주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물질에 대한 탐욕, 이성에 대한 음욕, 세상 권력에 대한 욕망, 타인에 대한 이기심 같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음녀가 주는 포도주는 지금은 달콤하고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음료이지만 조만간 심판과 저주로 변하게 될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18:3). 여러분, 우리는 큰 음녀의 포도주를 거부하지 못해 실패한 교회와 성도들을 수많은 역사의 사례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나에게 다가와 미혹하는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인지 스스로를 살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지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기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붉은 빛 짐승’은 우리가 앞서 살펴 본 11:7에 의하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두 증인을 죽인 존재입니다. 또한 이 짐승은 13:1-10에 의하면 붉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성도들을 폭행하고 억압하고 죽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탄 여자는 4절에 의하면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3절에 나타난 모습은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이 매우 사납고 무섭게 생긴 짐승을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음녀는 매혹적인 힘을, 짐승은 폭력적인 힘을, 그리고 이 둘이 힘을 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들을 따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죽이며, 교회를 핍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폭력과 억압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예수님을 미혹했던 것처럼 성도를 타락시키기 위해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을 들고 미혹하기도 합니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질병을 줌으로써 괴롭히기도 하고, 건강을 줌으로써 폭력과 음란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4절의 음녀가 입고 있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요한계시록이 기록 되던 당시에는 존귀와 부를 상징하는 옷으로 이런 옷은 매우 높은 위치의 권력자들이나 큰 부자들만 입을 수 있던 매우 비싼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값비싼 옷을 입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쥐어짜는 악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19장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등장하는 여인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19장). 세마포 옷은 제사장들의 옷이자 천사들의 옷입니다(레 6:10, 계 15:6). 그리고 이 세마포 옷은 어린 양에 피가 뿌려진 옷으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이 두 옷 중 어느 것을 입고 계십니까? 세상의 존귀와 부와 권세를 사모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거하는 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 성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 땅의 것들을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신랑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베드로전서 3:3-4에서 말씀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옳은 행실로 광채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 신부로 부르심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자신의 삶의 매무새를 돌아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다함께 5절을 읽습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음녀의 이마에는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라는 비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창녀들이 이마에 띠를 띠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름이 무엇인지 주인이 누구인지 호주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글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예들의 소유를 주장하기 위해 이마나 얼굴에 불로 도장을 찍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마에 어떤 이름을 받느냐는 그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표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비유해서 성경에는 이마나 손등에 표를 받고, 화인을 맞고 하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계 20:4).
그리고 이렇게 소속을 증명하는 표는 지금 이 시대에는 우리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고후 3:3).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마음에 어떤 표시를 가지고 있습니까?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한번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해 주는 표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에 새겨질 주인의 이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살펴본 대로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음녀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권세있는 모습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여 멸망의 길로 이끌고자 할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여 나아감으로써 구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강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을 의지하고 또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덧입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말세의 때를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사탄이 고난과 박해로 우리 성도들을 괴롭게만 하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그에 못지않게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와 부와 명예와 권세를 주면서 우리들을 미혹하는 자임을 오늘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미혹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장차 우리들에게 주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저희들로 삼아 주옵소서.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큰 계명 두 가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 사랑은 ‘예배’로 표현되고, 이웃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곧 예배와 섬김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사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예배는 잘 드리는데 섬길 줄은 모릅니다.
또 어떤 분은 섬기는 일은 잘하는데 예배에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모두 예배도, 섬김도 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예배와 섬김은 각각 다른 일이 아니라 긴밀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이웃을 잘 섬길 수 있는 동력이 되기에,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예배를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아바드’라고 하는데 ‘섬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도 ‘섬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서비스’라 하는데 이 역시 ‘섬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웃사랑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섬김을 이웃을 섬기는 것을 통해 증명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인 예배는 원인이고 이웃사랑인 섬김은 예배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린다 해도 이웃을 섬길 줄 모르면 바른 예배자라 할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열심히 섬긴다고 해도 예배에 소홀히 하면 그 섬김도 바른 섬김이 되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바로, 가정 공동체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섬김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공동체를 만드셨는데 그곳이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가장 기본적인 교회공동체이기에 가정이 올바르게,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먼저는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녀 간에 그 관계의 기초로서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가정이 화평해지고,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동탄영락교회 목사로서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우리 성도님들의 온 가족들이 주일이면 다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비전을 품음으로, 서로 대화가 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가정공동체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두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실 때 무엇보다도 특별히 이를 위해 간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일곱 인의 재앙’이고(6장), 2단계는 ‘일곱 나팔의 재앙’(8-9장), 마지막으로 3단계는 ‘일곱 대접의 재앙’(16장)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17-18장에서는 '큰 음녀'로 상징되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는데, 오늘 본문이 속한 17장에서는 큰 음녀인 바벨론의 영적, 도덕적, 정신적인 타락에 대하여 다루고 있고, 이어지는 18장에서는 큰 그녀의 정치적인 멸망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를 잠시 멈추고 추가로 기록된 계시인데, 이렇게 중간에 새로운 하나의 계시가 추가된 형식으로 기록된 계시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모두 일곱 개가 있습니다(7:1-17, 10:1-11, 11:1-13, 12:1-17, 13:1-18, 14:1-20, 17:1-18:24).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계시에 해당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큰 음녀가 어떻게 열국을 음란으로 부패시킬 것인지, 또 그가 마침내
어떻게 멸망을 당할 것인지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속이는 꾀와 그 치밀한 계획 등을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사도 요한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의 하나로부터 ‘이리로 오라’는 부름을 받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부름을 받는 장면은 모두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모두 다 중요한 계시를 강조할 때였습니다(4:1, 17:1, 21:9).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의 부름은 큰 음녀로 상징되는 장차 멸망 받을 사탄의 세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구원받을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기 위한 부름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심판받을 사탄의 정체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절에 의하면 여기서의 ‘큰 음녀’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설명하기를 큰 음녀는‘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에서 ‘많은 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물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부요한 국가들은 큰 강을 끼고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도시들은 주로 큰 강이나 바다 주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강과 바다는 외세의 침입을 막아주는 ‘천연의 방어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말은 물질적으로는 큰 풍요를 누리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큰 음녀로 상징되는 사탄의 세력은 이 땅에서 큰 풍요와 큰 권세를 누리는 존재이자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이 세상의 모든 풍요와 권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위시한 사탄의 세력들은 자기 밑에 들어오면 큰 풍요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미혹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그것에 더하여 음란과 쾌락과 술취함을 제공합니다.
그러하기에 낚시 미끼를 문 물고기가 결코 탈출할 수 없듯이 그들의 미혹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가하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을 당하고도 회개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그들의 미혹에 중독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이러한 미혹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온 세상이 큰 음녀의 미혹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거리는 모두가 음란하고, 음침하고, 생각을 넘어서는 폭력과 육체적인 자극과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영혼이 없이 육체만 살아 움직이며 살과 피를 탐하는 ‘좀비’를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인격은 사라지고 폭력과 육체적인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여러분, 저는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은연중에 자신이 처한 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들이 지금 이러한 삶을 살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나간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절실하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필요한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니 복음을 가장한 적그리스도를 복음인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숭고한 요한계시록 의 내용이 바로 그러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 에베소서 6:12에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요한계시록을 통해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에게 속아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다시 불러일으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큰 음녀에게 미혹을 당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큰 음녀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여기에서의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에 대한 힌트를 4절에서 찾게 됩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큰 음녀의 손에는 금잔이 들려 있었고 그 잔 안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의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것’들을 상징합니다.
음녀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빠져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죄짓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품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창 8:12).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당시뿐만 아니라 이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죄에 빠져 흥청거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추한 탐욕에 미혹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음행의 포도주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물질에 대한 탐욕, 이성에 대한 음욕, 세상 권력에 대한 욕망, 타인에 대한 이기심 같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음녀가 주는 포도주는 지금은 달콤하고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음료이지만 조만간 심판과 저주로 변하게 될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18:3).
여러분, 우리는 큰 음녀의 포도주를 거부하지 못해 실패한 교회와 성도들을 수많은 역사의 사례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나에게 다가와 미혹하는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인지 스스로를 살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지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기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붉은 빛 짐승’은 우리가 앞서 살펴 본 11:7에 의하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두 증인을 죽인 존재입니다.
또한 이 짐승은 13:1-10에 의하면 붉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성도들을 폭행하고 억압하고 죽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탄 여자는 4절에 의하면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3절에 나타난 모습은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이 매우 사납고 무섭게 생긴 짐승을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음녀는 매혹적인 힘을, 짐승은 폭력적인 힘을, 그리고 이 둘이 힘을 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들을 따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죽이며, 교회를 핍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폭력과 억압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예수님을 미혹했던 것처럼
성도를 타락시키기 위해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을 들고 미혹하기도 합니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질병을 줌으로써 괴롭히기도 하고, 건강을 줌으로써 폭력과 음란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4절의 음녀가 입고 있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요한계시록이 기록 되던 당시에는 존귀와 부를 상징하는 옷으로 이런 옷은 매우 높은 위치의 권력자들이나 큰 부자들만 입을 수 있던 매우 비싼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값비싼 옷을 입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쥐어짜는 악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19장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등장하는 여인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19장).
세마포 옷은 제사장들의 옷이자 천사들의 옷입니다(레 6:10, 계 15:6).
그리고 이 세마포 옷은 어린 양에 피가 뿌려진 옷으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이 두 옷 중 어느 것을 입고 계십니까?
세상의 존귀와 부와 권세를 사모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거하는 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 성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 땅의 것들을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옳은 행실로 광채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 신부로 부르심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성도는 신랑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베드로전서 3:3-4에서 말씀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오늘, 자신의 삶의 매무새를 돌아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다함께 5절을 읽습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음녀의 이마에는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라는 비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창녀들이 이마에 띠를 띠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름이 무엇인지 주인이 누구인지 호주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글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예들의 소유를 주장하기 위해 이마나 얼굴에 불로 도장을 찍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마에 어떤 이름을 받느냐는 그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표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비유해서 성경에는 이마나 손등에 표를 받고, 화인을 맞고 하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계 20:4).
그리고 이렇게 소속을 증명하는 표는 지금 이 시대에는 우리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고후 3:3).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마음에 어떤 표시를 가지고 있습니까?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한번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해 주는 표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에 새겨질 주인의 이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살펴본 대로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음녀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권세있는 모습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여 멸망의 길로 이끌고자 할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여 나아감으로써 구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강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을 의지하고 또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덧입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말세의 때를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사탄이 고난과 박해로 우리 성도들을 괴롭게만 하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그에 못지않게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와 부와 명예와 권세를 주면서 우리들을 미혹하는 자임을 오늘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미혹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장차 우리들에게 주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저희들로 삼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