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데,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버렸던 세상을 다시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욕심을 따라 살고 있으니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화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인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그렇게 세상을 따라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가 하나님께 버림 받겠다” 생각하고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회개를 촉구하며 잘못된 것을 개혁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세상의 것들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것을 개혁하려고 하니 기존 부패한 세력들에게 얼마나 많은 반발을 샀겠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쫓겨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드릴 곳이 없어서 그들을 따르던 몇몇 성도들과 함께 산과 계곡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예를 살펴보면, 프랑스에서 ‘위그노’라 불리던 신교도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자 산 속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교회가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잡으러 올까봐 한 사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양산을 쓰고 있다가 군대가 오면 양산을 접어서 신호를 보내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양산을 펴고 산꼭대기에서 망을 보고, 또 한사람은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다가 양산이 접히면 모두 다 흩어지고 했습니다.
여러분, 대단한 열정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신앙의 열매로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개혁자들이 맺은 신앙의 열매인 우리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속화 되고 있다면 중세교회가 그러했듯이 그 교회는 멀지 않아 타락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심판받는 사람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이처럼 요한계시록을 상고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실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실수에 빠진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입으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돌아올 것 같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까지 이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서 장차 일어날 모든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인 일곱째 대접 재앙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1. 먼저, 17절에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일곱째 재앙이 어디에 부어졌습니까? 땅이 아니라 ‘공중’입니다. 공중은 사탄의 권세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엡 2:2).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사탄의 본거지에 쏟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되었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탄의 본거지에 재앙을 부으심으로 사탄에 대한 심판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시는 동시에 사탄에 속한 악의 세력에 대한 응징을 마무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당할 사탄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이 멸망당할 때 그들도 함께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을 대적한 제국들은 다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자기 영혼의 주권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에게 주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들의 죗값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러한 악의 세력의 멸망은 그와 동시에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성도들의 승리를 뜻합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시대의 ‘악의 멸망’은 ‘새로운 의의 시대’를 여는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벽에 상고하는 여호수아서에서의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도 가나안 땅의 악이 제거되고 ‘새로운 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곱째 대접 재앙을 통한 악의 세력의 멸망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희망이 됩니다.
물론, 악이 멸망하는 것도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공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을 멸망시키시고 동시에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 주실 것이며, 또 우리 성도들을 악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구원해 내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악이 멸망하는 순간을 두려움과 절망의 눈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순결한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장차 구원의 반열에 속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성경에서 ‘번개와 우렛소리와 지진’은 대체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깊어질수록 그 강도가 보다 심화되고 구체화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 심판이 선포되는 모습에 대하여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재앙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악의 세력, 사탄에 속한 자들입니다. 처음에 ‘일곱 인’으로 시작된 재앙이 ‘일곱 나팔 재앙’을 거쳐 ‘일곱 대접 재앙’이 다 부어지기까지 그들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자 내려지는 재앙이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이 재앙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은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재앙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과연 그러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리고 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승천하시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진 후에야 재림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까?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죄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승천하시고 이 땅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만 재림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한데, 우리 성도들이 죄인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본다든지 그들이 심판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예수님 보시기에 과연 그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희생을 헛된 희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고 있는지,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을 바르게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영혼을 구원해 내지 못하고 멸망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지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은 당연히 심판당해야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악에 빠진 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온 힘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고,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하신 것은 바로 이를 위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은 우리들이 악인들의 심판을 보며 신나하며, 나는 구원받았으니 감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혼이 멸망 당하니 너희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을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들이 사탄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만 말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들을 건져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여기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력을 대표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권력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권력이 파괴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대다수의 성도들은 오늘 본문의 바벨론을 ‘로마제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로마를 바벨론으로 불렀고(벧전 5:13) 사도 요한도 로마를 염두에 두고 바벨론에 대하여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벨론을 로마로만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로마제국은 이미 멸망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계시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본 바벨론은 과거에도 있었고 오늘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나타나 세상을 미혹할 세상의 악한 권력의 총칭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던 로마가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세상의 악한 권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 멸망당하는 이유는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기억’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가끔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영원불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잊어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사 46:9-10).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지만, 심지어 골방에서 기도한 것,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 선행까지도 다 기억하시는 분이시지만, 그와 동시에 악인들의 모든 악행도, 그들의 악한 마음까지도 다 아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악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당합니다. 결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21절 함께 읽습니다.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하나님을 비방하니’ 여러분, 좀 섬떡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재앙을 당했으면, 이제 회개할 만도 한데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재앙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사탄의 미혹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을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탄의 미혹에서 건져낸다면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온갖 심판이 임하는데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것이 사탄의 미혹에 빠진 자들의 모습인데, 복음으로 그 영혼을 구원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다(눅 19:10). 그래서 ‘한 영혼이 구원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눅 15:7).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마지막 심판을 상고하면서, 내가 손을 내밀어 건져낼 한 영혼은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깊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저희들에게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멸망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잃어버린 양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멸망에서 건져내는 복음의 일꾼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데,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버렸던 세상을 다시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욕심을 따라 살고 있으니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화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인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그렇게 세상을 따라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가 하나님께 버림 받겠다” 생각하고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회개를 촉구하며 잘못된 것을 개혁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세상의 것들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것을 개혁하려고 하니 기존 부패한 세력들에게 얼마나 많은 반발을 샀겠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쫓겨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드릴 곳이 없어서 그들을 따르던 몇몇 성도들과 함께 산과 계곡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예를 살펴보면, 프랑스에서 ‘위그노’라 불리던 신교도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자 산 속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교회가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잡으러 올까봐 한 사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양산을 쓰고 있다가 군대가 오면 양산을 접어서 신호를 보내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양산을 펴고 산꼭대기에서 망을 보고, 또 한사람은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다가 양산이 접히면 모두 다 흩어지고 했습니다.
여러분, 대단한 열정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신앙의 열매로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개혁자들이 맺은 신앙의 열매인 우리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속화 되고 있다면 중세교회가 그러했듯이 그 교회는 멀지 않아 타락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심판받는 사람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이처럼 요한계시록을 상고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실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실수에 빠진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입으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돌아올 것 같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까지 이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서 장차 일어날 모든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인 일곱째 대접 재앙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1. 먼저, 17절에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일곱째 재앙이 어디에 부어졌습니까?
땅이 아니라 ‘공중’입니다.
공중은 사탄의 권세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엡 2:2).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사탄의 본거지에 쏟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되었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탄의 본거지에 재앙을 부으심으로 사탄에 대한 심판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시는 동시에 사탄에 속한 악의 세력에 대한 응징을 마무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당할 사탄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이 멸망당할 때 그들도 함께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을 대적한 제국들은 다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자기 영혼의 주권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에게 주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들의 죗값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러한 악의 세력의 멸망은 그와 동시에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성도들의 승리를 뜻합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시대의 ‘악의 멸망’은 ‘새로운 의의 시대’를 여는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벽에 상고하는 여호수아서에서의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도 가나안 땅의 악이 제거되고 ‘새로운 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곱째 대접 재앙을 통한 악의 세력의 멸망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희망이 됩니다.
물론, 악이 멸망하는 것도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공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을 멸망시키시고 동시에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 주실 것이며, 또 우리 성도들을 악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구원해 내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악이 멸망하는 순간을 두려움과 절망의 눈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순결한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장차 구원의 반열에 속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성경에서 ‘번개와 우렛소리와 지진’은 대체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깊어질수록 그 강도가 보다 심화되고 구체화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 심판이 선포되는 모습에 대하여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재앙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악의 세력, 사탄에 속한 자들입니다.
처음에 ‘일곱 인’으로 시작된 재앙이 ‘일곱 나팔 재앙’을 거쳐 ‘일곱 대접 재앙’이 다 부어지기까지 그들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자 내려지는 재앙이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이 재앙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은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재앙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과연 그러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리고 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승천하시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진 후에야 재림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까?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죄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승천하시고 이 땅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만 재림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한데, 우리 성도들이 죄인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본다든지 그들이 심판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예수님 보시기에 과연 그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희생을 헛된 희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고 있는지,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을 바르게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영혼을 구원해 내지 못하고 멸망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지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은 당연히 심판당해야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악에 빠진 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온 힘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고,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하신 것은 바로 이를 위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은 우리들이 악인들의 심판을 보며 신나하며, 나는 구원받았으니 감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혼이 멸망 당하니 너희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을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들이 사탄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만 말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들을 건져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여기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력을 대표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권력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권력이 파괴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대다수의 성도들은 오늘 본문의 바벨론을 ‘로마제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로마를 바벨론으로 불렀고(벧전 5:13) 사도 요한도 로마를 염두에 두고 바벨론에 대하여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벨론을 로마로만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로마제국은 이미 멸망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계시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본 바벨론은 과거에도 있었고 오늘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나타나 세상을 미혹할 세상의 악한 권력의 총칭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던 로마가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세상의 악한 권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 멸망당하는 이유는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기억’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가끔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영원불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잊어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사 46:9-10).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지만, 심지어 골방에서 기도한 것,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 선행까지도 다 기억하시는 분이시지만, 그와 동시에 악인들의 모든 악행도, 그들의 악한 마음까지도 다 아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악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당합니다.
결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21절 함께 읽습니다.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하나님을 비방하니’ 여러분, 좀 섬떡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재앙을 당했으면, 이제 회개할 만도 한데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재앙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사탄의 미혹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을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탄의 미혹에서 건져낸다면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온갖 심판이 임하는데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것이 사탄의 미혹에 빠진 자들의 모습인데, 복음으로 그 영혼을 구원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다(눅 19:10).
그래서 ‘한 영혼이 구원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눅 15:7).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마지막 심판을 상고하면서, 내가 손을 내밀어 건져낼 한 영혼은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깊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저희들에게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멸망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로 잃어버린 양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멸망에서 건져내는 복음의 일꾼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