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은 어떤 지식이나 사상, 기복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어느 구절이 있고, 마지막 때가 언제이고,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임하고, 그 징조는 무엇이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해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을 알고자하는 것은 게으르고 기회주의적인 자들의 편법일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는 거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는 삶이란, 이 사랑을 부모형제, 친척에게, 이웃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거룩한 삶,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믿음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또 무조건 믿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강요된 믿음에는 참 하나님의 사랑이 싹틀 수 없습니다. 사상이나 지식, 기복으로 받아들인 믿음은 고집과 집착과 과격한 폭력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때 가능하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째 대접 재앙에 관한 묵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여섯 번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서 사탄의 세력들이 그 길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결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새벽기도시간에 여호수아서를 상고하고 있는데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해변의 수많은 모래처럼 군대를 이룬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연합군을 형성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더 빨리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탄의 세력도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는 세상의 악을 상징하는 가나안 사람들처럼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멸망의 끝이 다가왔음을 보게 됩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 ‘므깃도’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므깃도는 구약시대에 약 200회 이상 하나님의 백성과 악의 세력이 전투를 치른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오늘,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아마겟돈 전쟁을 상고하면서 나는 과연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강으로서 그 길이가 자그마치 2,850km나 되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적들인 앗수르, 바벨론, 바사 같은 제국들이 이 강을 건너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 이 사건은 출애굽 때, 홍해바다가 갈라진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애굽을 탈출하던 이스라엘 앞을 막고 있던 홍해바다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애굽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오히려 이스라엘은 구원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애굽의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자 역전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강 유브라데 강이 말라서 사탄의 추종자들이 그 길을 통과하여 집결하게 됨으로, 이로써 마치 성도들이 막다른 길에 선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 전쟁으로 인해 성도들은 구원 받게 되고 사탄은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홍해바다와 유브라데 강은 ‘어떤 대적이 위협할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심’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 마지막 날에 ‘최후의 전쟁’이 있음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미리 준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전쟁은 언제 일어납니까?
우리는 그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곱 대접 재앙’의 말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바로 직전’에 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무서운 재앙들을 통해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환경오염, 자연파괴, 지진과 해일, 그리고 인간성 파괴 등은 아마겟돈 전쟁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슬기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이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대비하고 계십니까?
혹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는데, “설마 내 때에 오겠어?”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다니니까 안전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마지막 때의 준비는 교회와 믿음의 선배들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각각 개인이 해야 합니다.
성경은 로마서 13장에서 우리에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에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니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그 날과 그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더더욱 영적인 무장에 힘써야 합니다. 영적인 훈련에 부지런히 임해야 합니다(롬 12:11). 영적인 무장을 온전히 하는 성도만이 최후의 전쟁을 두려움 없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인내로써 환난의 모진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영적인 무장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3-14절 함께 읽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성경에서 ‘개구리’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 11:10). 그리고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하늘과 완전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은 악의 연합체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우두머리는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 셋이 함께 역사합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시는 것을 모방한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을 흉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사탄을 ‘거짓에 능한 자’라고 지칭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유혹합니다(마 4:6).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으로부터 경배를 받으려 합니다(눅 4:6-8).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악행이 극에 달해 심지어 하나님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미 마태복음 7:22-23에서 경고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15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또한,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13:3에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라고 말씀했습니다. 짐승이 예수님의 부활을 흉내 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4절에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흉내 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합니다.
그리고 13절의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라는 말씀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을 비슷하게 흉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탄의 술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흉내 냅니다. 예수님을 흉내 냅니다. 성령님을 흉내 냅니다. 사람들이 분간할 수 없도록 수많은 하나님 유사품, 짝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탄의 술책은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정교해 지고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점점 더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호세아 6:3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아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을 흉내 내는 악한 사탄의 간계를 모두 분별할 수 있습니다.
3.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아무도 모르게 온다는 뜻이기 보다는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살전 5:3).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군인이 적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항상 깨어 만전을 기하듯이, 그러한 자세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기에 항상 긴장하며, 또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기다림에 대하여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 비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혼인잔치를 앞두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었는데,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름이 들어있는 등불’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미리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신랑이 오지 않았기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할 기회가 아직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녀들은 기름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랑이 오기를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자 열 처녀는 모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는 등불을 켜고 신랑을 맞이해야 했는데, 아뿔싸,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나누어 줄 수 있는 기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기름을 사러 갔는데, 그사이에 그만 혼인잔치 연회장의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데, 그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의 재림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름은 믿음을 뜻하고, 기름을 나누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의 믿음, 부모나 가족의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구원 받게 됩니다.
둘째는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은 ‘예수님의 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을 ‘예수님으로 옷 입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갈 3:27).
그리고 이 ‘옷’은 우리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입고 나갈 예복이기도 합니다(계 19:7-8). 그러기에 성도는 항상 이 정결한 예복이 다시 죄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몸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 처녀가 다 졸고 잘 때 신랑이 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을 때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준비하지 않을 순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의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만이 예수님 재림의 그날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악이 집결하여 하여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흉내 내며 온갖 거짓으로 우리 성도들을 미혹할 터인데, 그들의 거짓을 분멸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도와주옵소서. 깨어있지 못하여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오직 믿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은 어떤 지식이나 사상, 기복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어느 구절이 있고, 마지막 때가 언제이고,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임하고, 그 징조는 무엇이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해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을 알고자하는 것은 게으르고 기회주의적인 자들의 편법일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는 거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는 삶이란, 이 사랑을 부모형제, 친척에게, 이웃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거룩한 삶,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믿음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또 무조건 믿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강요된 믿음에는 참 하나님의 사랑이 싹틀 수 없습니다.
사상이나 지식, 기복으로 받아들인 믿음은 고집과 집착과 과격한 폭력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때 가능하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째 대접 재앙에 관한 묵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여섯 번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물이 말라서 사탄의 세력들이 그 길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결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새벽기도시간에 여호수아서를 상고하고 있는데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해변의 수많은 모래처럼 군대를 이룬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연합군을 형성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더 빨리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탄의 세력도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는 세상의 악을 상징하는 가나안 사람들처럼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멸망의 끝이 다가왔음을 보게 됩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 ‘므깃도’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므깃도는 구약시대에 약 200회 이상 하나님의 백성과 악의 세력이 전투를 치른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오늘,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아마겟돈 전쟁을 상고하면서 나는 과연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강으로서 그 길이가 자그마치 2,850km나 되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적들인 앗수르, 바벨론, 바사 같은 제국들이 이 강을 건너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 이 사건은 출애굽 때, 홍해바다가 갈라진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애굽을 탈출하던 이스라엘 앞을 막고 있던 홍해바다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애굽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오히려 이스라엘은 구원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애굽의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자 역전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강 유브라데 강이 말라서 사탄의 추종자들이 그 길을 통과하여 집결하게 됨으로, 이로써 마치 성도들이 막다른 길에 선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 전쟁으로 인해 성도들은 구원 받게 되고 사탄은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홍해바다와 유브라데 강은 ‘어떤 대적이 위협할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심’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 마지막 날에 ‘최후의 전쟁’이 있음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미리 준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전쟁은 언제 일어납니까?
우리는 그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곱 대접 재앙’의 말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바로 직전’에 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무서운 재앙들을 통해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환경오염, 자연파괴, 지진과 해일, 그리고 인간성 파괴 등은 아마겟돈 전쟁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슬기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이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대비하고 계십니까?
혹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는데, “설마 내 때에 오겠어?”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다니니까 안전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마지막 때의 준비는 교회와 믿음의 선배들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각각 개인이 해야 합니다.
성경은 로마서 13장에서 우리에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에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니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그 날과 그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더더욱 영적인 무장에 힘써야 합니다.
영적인 훈련에 부지런히 임해야 합니다(롬 12:11).
영적인 무장을 온전히 하는 성도만이 최후의 전쟁을 두려움 없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인내로써 환난의 모진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영적인 무장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3-14절 함께 읽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성경에서 ‘개구리’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 11:10).
그리고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하늘과 완전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은 악의 연합체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우두머리는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 셋이 함께 역사합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시는 것을 모방한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을 흉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사탄을 ‘거짓에 능한 자’라고 지칭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거짓 일을 멀리하라”(출 23:7),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신다”(잠 6:16-19),
“거짓 증인은 패망한다”(잠 21:28).
“사탄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다”(요 8:44),
“사탄은 유혹하는 자다”(살전 3:5)
“사탄은 참소하는 자다”(계 12:10).
사탄의 정체가 이러하기에 사탄은 거짓말로 성도들을 공격하고 괴롭히고,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유혹합니다(마 4:6).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으로부터 경배를 받으려 합니다(눅 4:6-8).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악행이 극에 달해 심지어 하나님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미 마태복음 7:22-23에서 경고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15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또한,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13:3에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라고 말씀했습니다.
짐승이 예수님의 부활을 흉내 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4절에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흉내 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합니다.
그리고 13절의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라는 말씀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을 비슷하게 흉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탄의 술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흉내 냅니다.
예수님을 흉내 냅니다.
성령님을 흉내 냅니다.
사람들이 분간할 수 없도록 수많은 하나님 유사품, 짝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탄의 술책은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정교해 지고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점점 더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호세아 6:3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아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을 흉내 내는 악한 사탄의 간계를 모두 분별할 수 있습니다.
3.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아무도 모르게 온다는 뜻이기 보다는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살전 5:3).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군인이 적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항상 깨어 만전을 기하듯이, 그러한 자세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기에 항상 긴장하며, 또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기다림에 대하여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 비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혼인잔치를 앞두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었는데,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름이 들어있는 등불’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미리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신랑이 오지 않았기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할 기회가 아직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녀들은 기름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랑이 오기를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자 열 처녀는 모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는 등불을 켜고 신랑을 맞이해야 했는데, 아뿔싸,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나누어 줄 수 있는 기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기름을 사러 갔는데, 그사이에 그만 혼인잔치 연회장의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데, 그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의 재림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름은 믿음을 뜻하고, 기름을 나누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의 믿음, 부모나 가족의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구원 받게 됩니다.
둘째는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은 ‘예수님의 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을 ‘예수님으로 옷 입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갈 3:27).
그리고 이 ‘옷’은 우리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입고 나갈 예복이기도 합니다(계 19:7-8).
그러기에 성도는 항상 이 정결한 예복이 다시 죄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몸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 처녀가 다 졸고 잘 때 신랑이 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을 때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준비하지 않을 순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의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만이 예수님 재림의 그날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악이 집결하여 하여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흉내 내며 온갖 거짓으로 우리 성도들을 미혹할 터인데, 그들의 거짓을 분멸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도와주옵소서. 깨어있지 못하여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오직 믿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