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은 12-14장에 기록된 세 개의 묵시 가운데 ‘세 번째 묵시의 중반부’로 세 천사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하늘의 음성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특히, 제가 요한계시록을 시작할 때 요한계시록은 일곱개의 복이 선포되고 있는 복의 책이라고 말씀했는데, 1:3의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이은 두 번째 복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가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여러분, 여기에서 ‘세상에 전할 복음’을 가진 자는 누구입니까? 천사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직접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울 수는 있지만 직접 복음을 전할 사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오직 우리 성도에게만 부여된 사명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면 굳이 우리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다면 복음은 매우 쉽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온갖 기적을 일으키며 공중을 날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누가 감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손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천사가 아닌 연약한 우리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마 28:19-20).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동역자’가 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3:9). 그런데 그러한 복음 선포의 사명을 천사가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함께 7절 읽습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만들 때 물건 그 자체를 위해 무엇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기를 위해서 만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도록 창조하셨습니다(사 43:7). 여러분, 세상에 왜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까? 이러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짐승들처럼 육체적인 본능에 사로잡혀서 탐심과 탐욕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짐승들처럼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다가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다운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을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소리친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그것이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지게 되면 그것이 더 이상 만든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기’ 처리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벗어나서 다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악하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와 있으니 폐기처리, 곧 멸망 당하기 전에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임과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됩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그날을 준비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시험일자가 다가올수록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얻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줄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최후심판의 때를 의식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는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코람데오’, ‘마라나타’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서 둘째 천사가 계시 합니다. 8절 함께 읽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큰 성 바벨론’은 노아 홍수심판 후 하나님을 거역하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곳으로 훗날 바벨론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바벨론은 선민 이스라엘을 짓밟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바벨론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대명사로 여겼고, 초대교회 때에는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바벨론으로 칭했습니다(벧전 5:13). 그리고 바벨론을 ‘큰 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 성의 영향력이나 권세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누구든지 휩쓸릴 만큼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악의 상징인 소돔과 애굽,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조차도 ‘큰 성’ 곧 바벨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1:8).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에서의 바벨론은 어느 특정한 나라나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하나님 없는 권력과 인간중심의 문명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큰 성 바벨론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그것이 반드시 무너짐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곳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과 같은 세상이 여러분들을 박해할 때, 곧 다가올 그들의 멸망을 바라보며 인내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서 셋째 천사가 계시 합니다. 9-11절 함께 읽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짐승을 섬기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처하게 될 끔찍한 운명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탄 무리와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 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천사는 지금 왜 악인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요? 악인들이 이 글을 읽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불신자들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성도들입니다. 이 글은 성도들을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심판 경고를 읽는 것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 경고는 불신자들에게 하는 경고가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 하는 경고’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글의 첫 수신자들이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엄청난 박해와 우상숭배의 미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성도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곳 외에도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할 때마다 그것이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나를 위해 기록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이 모든 심판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심판이 됨을 늘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10절의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란 원액을 희석시키지 않은 포도주 원래의 독함이 그대로 있는 포도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극심할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마지막 때에 사탄을 숭배한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자비를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매우 극심한 것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좀 더 보충 설명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악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에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포도주 원액을 물로 희석시키듯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섞여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는 악인을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희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 때의 하나님의 진노에는 하나님의 진노 외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가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악인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이르기 전에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이 그들 앞에 놓이기 전에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힘써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받는 핍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 정부는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잡아다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와 겨루게 함으로써 사자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여서 어두움을 밝히는 횃불로도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핍박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고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 말씀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세상의 박해로 인하여 순교의 위기에 처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해 ‘죽음의 위협조차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고,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속담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같은 세상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자신들에게 만큼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잠 14:32). 성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은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요, 그 후에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세상보다는 천국이 더 좋으니 빨리 목숨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또 남겨두시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롬 14:8), 살든지 죽든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진정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믿음을 지킨 자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만, 하나님을 거부한 자는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를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굳게 붙드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은 12-14장에 기록된 세 개의 묵시 가운데 ‘세 번째 묵시의 중반부’로 세 천사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하늘의 음성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특히, 제가 요한계시록을 시작할 때 요한계시록은 일곱개의 복이 선포되고 있는 복의 책이라고 말씀했는데, 1:3의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이은 두 번째 복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가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여러분, 여기에서 ‘세상에 전할 복음’을 가진 자는 누구입니까?
천사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직접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울 수는 있지만 직접 복음을 전할 사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오직 우리 성도에게만 부여된 사명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면 굳이 우리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다면 복음은 매우 쉽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온갖 기적을 일으키며 공중을 날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누가 감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손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천사가 아닌 연약한 우리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마 28:19-20).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동역자’가 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3:9).
그런데 그러한 복음 선포의 사명을 천사가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함께 7절 읽습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만들 때 물건 그 자체를 위해 무엇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기를 위해서 만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도록 창조하셨습니다(사 43:7).
여러분, 세상에 왜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까?
이러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짐승들처럼 육체적인 본능에 사로잡혀서 탐심과 탐욕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짐승들처럼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다가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다운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을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소리친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그것이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지게 되면 그것이 더 이상 만든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기’ 처리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벗어나서 다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악하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와 있으니 폐기처리, 곧 멸망 당하기 전에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임과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됩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그날을 준비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시험일자가 다가올수록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얻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줄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최후심판의 때를 의식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는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코람데오’, ‘마라나타’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서 둘째 천사가 계시 합니다.
8절 함께 읽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큰 성 바벨론’은 노아 홍수심판 후 하나님을 거역하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곳으로 훗날 바벨론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바벨론은 선민 이스라엘을 짓밟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바벨론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대명사로 여겼고, 초대교회 때에는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바벨론으로 칭했습니다(벧전 5:13).
그리고 바벨론을 ‘큰 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 성의 영향력이나 권세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누구든지 휩쓸릴 만큼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악의 상징인 소돔과 애굽,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조차도 ‘큰 성’ 곧 바벨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1:8).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에서의 바벨론은 어느 특정한 나라나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하나님 없는 권력과 인간중심의 문명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큰 성 바벨론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그것이 반드시 무너짐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곳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과 같은 세상이 여러분들을 박해할 때, 곧 다가올 그들의 멸망을 바라보며 인내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서 셋째 천사가 계시 합니다.
9-11절 함께 읽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짐승을 섬기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처하게 될 끔찍한 운명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탄 무리와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 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천사는 지금 왜 악인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요?
악인들이 이 글을 읽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불신자들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성도들입니다.
이 글은 성도들을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심판 경고를 읽는 것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 경고는 불신자들에게 하는 경고가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 하는 경고’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글의 첫 수신자들이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엄청난 박해와 우상숭배의 미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성도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곳 외에도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할 때마다 그것이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나를 위해 기록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이 모든 심판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심판이 됨을 늘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10절의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란 원액을 희석시키지 않은 포도주 원래의 독함이 그대로 있는 포도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극심할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마지막 때에 사탄을 숭배한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자비를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매우 극심한 것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좀 더 보충 설명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악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에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포도주 원액을 물로 희석시키듯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섞여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는 악인을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희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 때의 하나님의 진노에는 하나님의 진노 외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가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악인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이르기 전에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이 그들 앞에 놓이기 전에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힘써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이어지는 12절 함께 읽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받는 핍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 정부는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잡아다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와 겨루게 함으로써 사자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여서 어두움을 밝히는 횃불로도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핍박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고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 말씀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세상의 박해로 인하여 순교의 위기에 처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해 ‘죽음의 위협조차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고,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속담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같은 세상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자신들에게 만큼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잠 14:32).
성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은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요, 그 후에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세상보다는 천국이 더 좋으니 빨리 목숨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살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또 남겨두시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롬 14:8),
살든지 죽든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음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진정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믿음을 지킨 자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만, 하나님을 거부한 자는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를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굳게 붙드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