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39.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계 13:11-18)

우인택 목사
2021-05-28
조회수 2873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오늘 본문은 12장에서부터 14장까지에 기록된 세 개의 묵시 가운데 두 번째 묵시의 후반부입니다.

사도요한은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이 사탄으로부터 강력한 권세를 받아 온 세상을 지배하고 성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하고 있는 환상을 보고 난 직후에,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이 첫째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첫째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성도들을 다 죽이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짐승의 표 ‘육백육십육’에 대한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둘째 짐승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1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둘째 짐승의 모습은 첫째 짐승의 모습과 다르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뿔이 열 개이고 머리고 일곱 개인 반면, 둘째 짐승은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처럼 강하고 무서운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어린 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너무나도 여리고 선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외모는 분명히 예수님의 모습인데 “용처럼 말을 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용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째 짐승은 겉모습은 어린양과 같이 순결해 보이지만 사실은 거짓의 아비 사탄마귀를 닮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씀입니다(요 8:44).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실체는 성도들을 삼키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는 ‘악한 늑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와 땅속에서 올라온 이 두 짐승의 환상은 곧 사탄은 세상의 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수단까지 총동원해서 교회 안팎에서 동시에 성도들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때로는 극심하게 박해하고 때로는 교묘하게 미혹하는 자임을 뜻합니다.
첫째 짐승이 세상의 권력을 쥔 로마황제와 같은 교회 박해자를 의미한다면, 둘째 짐승은 성도의 믿음을 왜곡하는 거짓 선생, 거짓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표범이나 곰, 사자처럼 잔인하고 사나운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이러한 어린 양과 같은 외모를 보고 경계를 풀 때 본색을 드러내어 성도들을 미혹하고 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계략에 대하여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사기꾼들 중에는 ‘호감형’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탄은 우리 성도들을 망하게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박해해서 안 되면 유혹하고, 유혹해서 안되면 예수님의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라도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이러한 양면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서 둘째 짐승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이 둘째 짐승의 정체에 대하여 19:20에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일차적인 목표는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모든 사람들이 짐승, 곧 사탄을 경배하게 만들어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용과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의 등장은 곧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흉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이들에게 맞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과 교회사에 기록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단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 모습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교리’를 명확하게 세워 이단들을 대처했습니다.
그를 통해 그들의 잘못된 교리와 그들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혀내고 그들을 교회에서 몰아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명확한 성경적인 대처 방안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그들의 주장을 무마시키고 그들을 교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참 선지자’인 것처럼 가장합니다.
또, 자신만이 깨달았다는 성경지식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며, 자신만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라는 본문의 말씀처럼 병을 고치고 기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겉모습만으로는 정체를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일서 4:1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으로 영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답을 말씀드리기 전에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13-14절 읽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여기서 큰 이적을 행하는 자는 둘째 짐승, 곧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을 행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큰 이적’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갖은 술수를 통해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음을 분명하게 보았고 충분히 그들의 수법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최고의 과학과 문명과 지식을 소유한 이 시대에까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의 미혹에 걸려들고 있는 것을 보면 사탄의 미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밀하고 교묘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미혹에 쉽게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의 지식으로는 사탄의 미혹을 결코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데 어떻게 세상의 지식으로 사탄의 미혹을 분별해 낼 수 있겠습니까?
광명한 천사, 어린양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고린도전서 2:1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만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것을 분명하게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말씀은 둘째 짐승의 최종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15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라는 말은 곧 거짓 선지자에게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생명을 줄 만큼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이 거짓 선지자가 ‘생명을 창조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능은 짐승의 배후인 사탄조차도 가지지 못한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상에게 생명을 주어 우상이 말하게 한다’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마치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눈을 속여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그들도 복화술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여 우상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그 속임수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고 판단할 틈을 주지 않고 속전속결로 우상을 위대한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치 마술사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분산시켜 눈속임를 완벽하게 숨기는 것처럼, 사람들의 분별력을 완전히 마비시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속아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사탄은 현대의 문명을 이용해서 지금도 드러나지 않게 사람들의 분별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온갖 인터넷 게임과 미디어들을 이용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잔인한 폭력과 음란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게 하고, 각종 철학과 사상을 이용하여 기독교 세계관을 비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바꾸어 버리고, 오늘 본문의 짐승처럼 하나님이 아닌 자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두도록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경고를 받아들여 이 싸움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바로 이 일을 맡기시기 위함입니다.

16-17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어떤 특정한 계층만 짐승과 우상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과 모든 신분의 사람들이 다 짐승과 우상을 숭배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음으로써 자신이 짐승에게 속한 자인 것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인침을 받아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과 똑같습니다(7:3).

그리고 이 표에 대하여 18절에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짐승의 표를 외형적인 표식, 또는 어떤 문자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헬라어 알파벳에는 각각 고유의 숫자가 부여되어 있는데, ‘666’은 짐승의 이름 알파벳 수의 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름의 알파벳 수의 합이 ‘666’에 해당하는 자로서 ‘네로 황제’와 ‘히틀러’ 등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기도 했고, 또, 현대에 와서는 ‘컴퓨터 바코드’처럼 몸에 문신처럼, 또는 마이크로칩의 형태로 ‘666’을 몸속에 넣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교회를 촛대로, 또 사탄을 용으로,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를 짐승으로, 그리고 숫자들도 다 상징적인 기간이나 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다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유독 ‘666’만을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했겠느냐?” 하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이마’나 ‘오른손’, ‘육백육십육’은 모두 다 상징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마’는 ‘사람의 마음’을 ‘오른손’은 ‘사람의 행위’를 뜻합니다.
이마나 오른손에 짐승의 표인 ‘666’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행위가 사탄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는 것 역시 그의 마음과 행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6’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인 ‘7’에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완전한 숫자로 ‘완전에 도전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볼 때 ‘6’이 세 번 반복된 ‘666’은 불완전한 사탄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지위를 노리고 도전하는 세력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숫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666’인 사탄이 아무리 강한 능력으로 도전한다 할지라도 ‘777’이신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으며, 그가 비록 일시적으로 성도들을 박해 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박해 할 수는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 장인 14:9에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의로 짐승의 표를 받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의로 멸망의 ‘666’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표를 받은 사람과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구분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리지를 심판의 날이 올 때 까지 그냥 두어라 그때에 불사르리라”(마 13:24-30)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 각각의 우리로 들이듯이, 하나님과 사탄에게 속한 자를 구분하여 각각의 처소인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탄의 세력이 위협하고 미혹해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들은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예수님과 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큰 이적을 행하는가 하면 갖은 속임수로 성도들을 미혹하거나 핍박하려들 것입니다. 이때에 거짓 선지자들의 흉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행위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귀와 눈을 열어 주옵소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031) 378-5491   joycs1@nate.com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저작권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