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세 종류의 흰쥐에게 각각 다른 환경에서 먹이를 주었다고 합니다. 첫 번 째는 쥐 한 마리 ‘혼자’ 먹이를 먹게 했고, 두 번째는 다섯 마리가 ‘서로 어울려’ 먹이를 먹게 했고, 세 번째는 ‘사람이 애정을 쏟으며’ 직접 먹이를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 번째 쥐는 6백일을 살았고, 두 번째 쥐는 7백일 살았는데, 세 번째 쥐는 자그마치 9백 50일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미물들도 외로우면 일찍 죽고 사랑을 받으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더욱 사랑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보약보다도 더 큰 효력을 지닌 최고의 보약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사랑으로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하시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12장~14장 사이에 기록된 세 개의 예언가운데 ‘첫 번째 예언의 후반부’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의 말씀이 ‘하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탄이 이 땅에 내려와서 교회를 박해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면, 오늘 말씀은 사탄이 아무리 심하게 교회를 박해해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자 이제 그 무리들이 바다 모래위에 모였다고 말씀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지금 이 구절은, 초대교회 당시 세상의 극심한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박해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탄은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여 더 이상 하늘에 머물지 못하고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전쟁에서 패한 중심에는 여자가 낳은 아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는 사탄의 원수였고, 그래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박해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내막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결코 자기의 것을 박해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박해는 오직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만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20). 성도가 박해를 받는 이유는 예수님께 속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들이 선하게 사는데도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속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만일 여러분들이 의롭고 선하게 사는데도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속했음을 증명하는 ‘예수의 흔적’ ‘스티그마’를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그리고 성경은 로마서 8:1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또 디모데후서 3:12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요한복음 16:33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만일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이 어리석고 연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자이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일시적일뿐, 우리는 반드시 역전하여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일서 5:4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우리가 이미 상고한 7:9에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승리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여러분들을 예표합니다(요일 5:4-5). 그러므로 여러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의 고난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37의 말씀처럼 여러분 앞에 있는 고난들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완전한 승리자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는 그날을 맞이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여러분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만큼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5:10-12).
2.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탄의 박해로부터 어떻게 보호하시고 양육하는지를 비유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의 독수리 날개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합니다(출 9:4, 신 32:11-12) 그리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광야에서 더욱 깊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먹을 것이 없고, 거주할 곳도 없고, 적들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하는 곳임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장소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거함으로써 그들에게 묻어있던 타락한 세상문명과 죄의 잔재들을 완전하게 털어낼 수 있었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생존 할 수 없는 환경인 광야에서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사탄의 통치권을 벗어나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광야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나그네’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모든 낙을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절제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분명히 광야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에 이러한 광야에서의 삶의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7년 환난 기간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짧지 않은 고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 광야는 ‘고난의 장소인 동시에 은혜의 장소’ 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땅의 삶을 사실 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심으로 맡으신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과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비결을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께로부터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광야는 어디입니까? 흔히 이 세상을 광야에 비유하는데, 그러나 오늘 본문의 광야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곳으로, 애굽이나 바벨론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는 부적합한 곳입니다. 이 세상은 오직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이 예비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광야는 특정한 어떤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겪어야 할 나그네의 삶, 죄악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 거기에 속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그리하여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을 상징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피난처인 광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성도들을 위한 피난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우리의 피난처는 사람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성도들을 위한 피난처인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비하신 광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광야 길이 험난하지만 그 길을 사랑하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양육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이유와 여유와 평강’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3. 그런데 15절에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물을 강같이 토하여 떠내려가게 한다’는 표현은 ‘거대한 홍수에 모든 것이 떠내려가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것은 거대한 힘으로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사탄의 공격을 상징합니다(시 18:4, 시 32:6-7, 사 43:2). 그렇다면 여기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물’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문화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문화를 통해서 성도들을 삼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과 돈과 명예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현대의 모습은 사탄이 흘려보낸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홍해의 위협 앞에서 그 백성을 지키셨듯이, 홍수같이 범람하는 사탄의 공세 속에서도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성경에서의 ‘땅’은 ‘하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사탄의 거처’ 혹은 ‘악한 사람이 거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땅이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도와서 구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땅에도 계시고, 하늘의 주인이신 동시에 땅의 주인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환난과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성도를 박해하던 땅도 오히려 교회를 지키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을 변화시켜서라도 우리 성도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오직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사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넘어뜨리려고 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닙니다. 17절함께 읽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은 자,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사탄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참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사탄은 여러분들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집결해야 할 만큼 강한 존재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한 사람의 가치를 알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사탄이 두려워하는 참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탄은 어찌하든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와 풍조를 다 동원해서 우리 성도들의 삶을 경건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모략을 꾸미고 박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모두 이러한 사탄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아서 성령의 권능과 예수의 흔적, 곧 경건한 삶으로 사탄을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세 종류의 흰쥐에게 각각 다른 환경에서 먹이를 주었다고 합니다.
첫 번 째는 쥐 한 마리 ‘혼자’ 먹이를 먹게 했고, 두 번째는 다섯 마리가 ‘서로 어울려’ 먹이를 먹게 했고, 세 번째는 ‘사람이 애정을 쏟으며’ 직접 먹이를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 번째 쥐는 6백일을 살았고, 두 번째 쥐는 7백일 살았는데, 세 번째 쥐는 자그마치 9백 50일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미물들도 외로우면 일찍 죽고 사랑을 받으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더욱 사랑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보약보다도 더 큰 효력을 지닌 최고의 보약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사랑으로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하시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12장~14장 사이에 기록된 세 개의 예언가운데 ‘첫 번째 예언의 후반부’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의 말씀이 ‘하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탄이 이 땅에 내려와서 교회를 박해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면, 오늘 말씀은 사탄이 아무리 심하게 교회를 박해해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자 이제 그 무리들이 바다 모래위에 모였다고 말씀합니다.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지금 이 구절은, 초대교회 당시 세상의 극심한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박해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탄은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여 더 이상 하늘에 머물지 못하고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전쟁에서 패한 중심에는 여자가 낳은 아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는 사탄의 원수였고, 그래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박해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내막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결코 자기의 것을 박해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박해는 오직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만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20).
성도가 박해를 받는 이유는 예수님께 속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들이 선하게 사는데도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속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만일 여러분들이 의롭고 선하게 사는데도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속했음을 증명하는 ‘예수의 흔적’ ‘스티그마’를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그리고 성경은 로마서 8:1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또 디모데후서 3:12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요한복음 16:33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만일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이 어리석고 연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자이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일시적일뿐, 우리는 반드시 역전하여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일서 5:4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우리가 이미 상고한 7:9에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승리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여러분들을 예표합니다(요일 5:4-5).
그러므로 여러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의 고난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37의 말씀처럼 여러분 앞에 있는 고난들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완전한 승리자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는 그날을 맞이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여러분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만큼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5:10-12).
2.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탄의 박해로부터 어떻게 보호하시고 양육하는지를 비유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의 독수리 날개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합니다(출 9:4, 신 32:11-12)
그리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광야에서 더욱 깊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먹을 것이 없고, 거주할 곳도 없고, 적들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하는 곳임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장소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거함으로써 그들에게 묻어있던 타락한 세상문명과 죄의 잔재들을 완전하게 털어낼 수 있었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생존 할 수 없는 환경인 광야에서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사탄의 통치권을 벗어나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광야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나그네’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모든 낙을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절제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분명히 광야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에 이러한 광야에서의 삶의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7년 환난 기간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짧지 않은 고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 광야는 ‘고난의 장소인 동시에 은혜의 장소’ 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땅의 삶을 사실 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심으로 맡으신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과 사명을 온전히 이루는 비결을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께로부터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광야는 어디입니까?
흔히 이 세상을 광야에 비유하는데, 그러나 오늘 본문의 광야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곳으로, 애굽이나 바벨론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는 부적합한 곳입니다.
이 세상은 오직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이 예비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광야는 특정한 어떤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겪어야 할 나그네의 삶, 죄악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 거기에 속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그리하여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을 상징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피난처인 광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성도들을 위한 피난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우리의 피난처는 사람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성도들을 위한 피난처인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비하신 광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광야 길이 험난하지만 그 길을 사랑하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양육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이유와 여유와 평강’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3. 그런데 15절에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물을 강같이 토하여 떠내려가게 한다’는 표현은 ‘거대한 홍수에 모든 것이 떠내려가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것은 거대한 힘으로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사탄의 공격을 상징합니다(시 18:4, 시 32:6-7, 사 43:2).
그렇다면 여기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물’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문화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문화를 통해서 성도들을 삼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과 돈과 명예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현대의 모습은 사탄이 흘려보낸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홍해의 위협 앞에서 그 백성을 지키셨듯이, 홍수같이 범람하는 사탄의 공세 속에서도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16절 함께 읽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성경에서의 ‘땅’은 ‘하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사탄의 거처’ 혹은 ‘악한 사람이 거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땅이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도와서 구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땅에도 계시고, 하늘의 주인이신 동시에 땅의 주인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환난과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성도를 박해하던 땅도 오히려 교회를 지키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을 변화시켜서라도 우리 성도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오직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사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넘어뜨리려고 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닙니다. 17절함께 읽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은 자,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사탄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참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사탄은 여러분들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집결해야 할 만큼 강한 존재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한 사람의 가치를 알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사탄이 두려워하는 참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탄은 어찌하든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와 풍조를 다 동원해서 우리 성도들의 삶을 경건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모략을 꾸미고 박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모두 이러한 사탄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아서 성령의 권능과 예수의 흔적, 곧 경건한 삶으로 사탄을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