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은 빌립보 성도들의 바울에 대한 경제적인 후원은 바울 개인을 도운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었다는 바울의 고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4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바울은 13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지금껏 겪은 많은 고난의 일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빌립보 성도들이 준 도움의 손길은 자신에게 매우 큰 위로와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하였도다’라고 말하며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간증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은 생업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큰 교회를 시무하는 목회자 외에는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하여 기도를 하게 되는데, 가끔 기도와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어서 지난날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사건들과 그때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을 도왔던 일에 대하여 회상합니다.
15절 함께 읽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여기서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라는 표현은 사도행전 17장의 사건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바울은 빌립보에 교회를 개척한 후, 다음 선교지인 데살로니가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 베뢰아로 선교 장소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에서도 유대인들의 박해가 극심해서 할 수 없이 그곳을 급히 떠나 아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당시 자신을 끝까지 도운 교회는 빌립보뿐이었다고 그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7:15).
특히,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하면서 16-17절 함께 읽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를 도운 것은 바울 개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의 그러한 믿음의 헌신에 큰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자신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일꾼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돕는 것이고, 그러한 일을 할 때, 겉으로 볼 때는 희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부어지기에 오히려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가가 없이 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받는 것보다 베푸시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푸시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바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헌신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빌립보 성도들처럼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섬김과 헌신을 받은 사람은 분명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받은 섬김과 헌신을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도운 헌신과 섬김은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위한 헌신과 섬김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그 헌신과 섬김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희생 제물이 죄인을 구하듯이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동력이 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이 빌립보서를 받아 읽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 내용을 읽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칭찬받은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섬김과 헌신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드린 성도들도 함께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4:4에 아벨이 자기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그것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섬김과 헌신은 교회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하기에 교회를 섬기는 일에 소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가진 물질과 시간은 다른 곳에 더 쓸 것이 많을 것입니다. 또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 것도 많을 것입니다. 또 반드시 써야만 하는 긴박한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섬김과 헌신이 있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을 향한 축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이 말씀을 오해하여 “하나님의 갚으심을 믿으라”라고 하며 ‘많은 헌금’을 강요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헌금을 드린 후 “하나님, 이 말씀대로 더욱 후하게 돌려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채무자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채무자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값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의 고백의 열매로 드려져야 합니다(대상 29:14).
특히, 여기서 ‘너희 모든 쓸 것’이라는 말은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잘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필요는 기본적으로 물질과 더불어 인간관계 속에서의 필요와 영적인 필요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은 고난의 삶 속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고, 빌립보 성도들은 그러한 바울을 돕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함으로써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저희도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살펴보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은 빌립보 성도들의 바울에 대한 경제적인 후원은 바울 개인을 도운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었다는 바울의 고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4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바울은 13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지금껏 겪은 많은 고난의 일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빌립보 성도들이 준 도움의 손길은 자신에게 매우 큰 위로와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하였도다’라고 말하며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간증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은 생업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큰 교회를 시무하는 목회자 외에는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하여 기도를 하게 되는데, 가끔 기도와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어서 지난날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사건들과 그때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을 도왔던 일에 대하여 회상합니다.
15절 함께 읽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여기서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라는 표현은 사도행전 17장의 사건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바울은 빌립보에 교회를 개척한 후, 다음 선교지인 데살로니가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 베뢰아로 선교 장소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에서도 유대인들의 박해가 극심해서 할 수 없이 그곳을 급히 떠나 아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당시 자신을 끝까지 도운 교회는 빌립보뿐이었다고 그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7:15).
특히,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하면서 16-17절 함께 읽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를 도운 것은 바울 개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의 그러한 믿음의 헌신에 큰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자신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일꾼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돕는 것이고, 그러한 일을 할 때, 겉으로 볼 때는 희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부어지기에 오히려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가가 없이 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받는 것보다 베푸시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푸시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바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헌신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빌립보 성도들처럼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8절 함께 읽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섬김과 헌신을 받은 사람은 분명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받은 섬김과 헌신을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도운 헌신과 섬김은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위한 헌신과 섬김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그 헌신과 섬김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희생 제물이 죄인을 구하듯이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동력이 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이 빌립보서를 받아 읽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 내용을 읽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칭찬받은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섬김과 헌신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드린 성도들도 함께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4:4에 아벨이 자기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섬김과 헌신은 그것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섬김과 헌신은 교회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하기에 교회를 섬기는 일에 소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가진 물질과 시간은 다른 곳에 더 쓸 것이 많을 것입니다. 또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 것도 많을 것입니다. 또 반드시 써야만 하는 긴박한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섬김과 헌신이 있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을 향한 축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이 말씀을 오해하여 “하나님의 갚으심을 믿으라”라고 하며 ‘많은 헌금’을 강요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헌금을 드린 후 “하나님, 이 말씀대로 더욱 후하게 돌려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채무자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채무자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값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의 고백의 열매로 드려져야 합니다(대상 29:14).
특히, 여기서 ‘너희 모든 쓸 것’이라는 말은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잘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필요는 기본적으로 물질과 더불어 인간관계 속에서의 필요와 영적인 필요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은 고난의 삶 속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고, 빌립보 성도들은 그러한 바울을 돕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함으로써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저희도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살펴보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