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8절 함께 읽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의 ‘끝으로 λοιπόν’라는 말을 3:1에도 사용한 후 자신이 꼭 전달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끝으로 라는 말도 ‘마지막으로’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교훈한 말씀을 강조하며, 덧붙여서 새로운 교훈을 주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2-3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화해를 권면했고, 4-5절에서는 구원의 기쁨과 성도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관용에 대하여, 6-7절에서는 감사의 기도와 평강에 대하여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대하여 교훈을 하기 전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소유해야 할 8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게 행하라고 말씀하는데, 과연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들은 이 권면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여기에 기록된 덕목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교훈과 비슷합니다. 바울은 8절에 나열한 교훈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덕목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본받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그러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은 것같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본받고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실상 이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무엇에든지’라는 단서 조항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요구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교육학자나 철학자들은 이러한 덕목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교육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육의 질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더욱 이러한 덕목에서 점점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리 높은 도덕적인 교육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항상 의롭고 참되고 칭찬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로마서 3:10-15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이것이 바로 숨김없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어떻게 무엇에든지 참되게 살며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이 권면은 말 그대로 원칙론적으로 주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요구를 이룰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얼마든지 가능함을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인간으로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도 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부패한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이자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바울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윤리의 삶도 살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 가운데 있어서 육체의 소욕의 지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꾸준히 성령을 의지할 때, 육체의 소욕의 지배에서 벗어나 보다 온전하게 절대적인 윤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의지해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무엇에든지 참된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신학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끊임없는 성화의 과정을 통해 죄에서 점점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화를 부단히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더욱 성령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에스겔 36:27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성화 되어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8절에서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소유해야 할 8가지 덕목을 제시한 바울은 그 실제적인 모델로서 자신을 언급합니다. 자신을 모델로 제시하며 바울 자신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훈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말 그대로 자신이 ‘배우고 받고 듣고 본’대로 살았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랬기에 바울을 통해 디모데, 디도, 빌레몬 등의 휼륭한 목회자들과 누가, 에바브로디도, 루디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의 휼륭한 선교사들이 배출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산 바울이었기에 3:17에서도 자신 있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중에도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불평하지 않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향해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으며, 고난 중에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서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본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의 본입니다. 우리들도 진실한 믿음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평강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제2, 제3의 바울이 되셔서 후배 신앙인들에게 복된 교훈의 말씀을 남길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가졌던 진실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성경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바울처럼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평강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꽤 많은 성경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부족해서 “목사님, 또 배우고 싶어요, 전 배우는 것이 너무나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머리로 많이 배운다 해도 실제로는 내가 행하는 만큼만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말씀을 배웠으면 받기보다는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고, 말씀대로 사는 자신이 얼마만큼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배우기만 하고 말만 많은 사람은 머리만 복잡해지고, 판단하기에 바빠서 정작 그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는 신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무디 선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성경을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고 하나님이 의심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때는 성경을 잠시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배운 대로 실천할 때 성경 말씀을 가장 잘 배울 수 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로 인해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를 메라는 말은 ‘예수님처럼 행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행할 때 우리 삶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배운 대로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로 인해 세상에서 얻지 못할 평강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면 무슨 일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게 살 수 있음을 오늘 분명하게 깨닫고, 믿고, 결단합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대로 참되게 행함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늘 체험하고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8절 함께 읽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의 ‘끝으로 λοιπόν’라는 말을 3:1에도 사용한 후 자신이 꼭 전달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끝으로 라는 말도 ‘마지막으로’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교훈한 말씀을 강조하며, 덧붙여서 새로운 교훈을 주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2-3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화해를 권면했고, 4-5절에서는 구원의 기쁨과 성도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관용에 대하여, 6-7절에서는 감사의 기도와 평강에 대하여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대하여 교훈을 하기 전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소유해야 할 8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게 행하라고 말씀하는데, 과연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들은 이 권면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여기에 기록된 덕목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교훈과 비슷합니다. 바울은 8절에 나열한 교훈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덕목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본받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그러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은 것같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본받고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실상 이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무엇에든지’라는 단서 조항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요구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교육학자나 철학자들은 이러한 덕목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교육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육의 질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더욱 이러한 덕목에서 점점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리 높은 도덕적인 교육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항상 의롭고 참되고 칭찬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로마서 3:10-15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이것이 바로 숨김없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어떻게 무엇에든지 참되게 살며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이 권면은 말 그대로 원칙론적으로 주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요구를 이룰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얼마든지 가능함을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인간으로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도 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부패한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이자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바울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윤리의 삶도 살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 가운데 있어서 육체의 소욕의 지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꾸준히 성령을 의지할 때, 육체의 소욕의 지배에서 벗어나 보다 온전하게 절대적인 윤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의지해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무엇에든지 참된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신학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끊임없는 성화의 과정을 통해 죄에서 점점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화를 부단히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더욱 성령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에스겔 36:27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성화 되어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8절에서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소유해야 할 8가지 덕목을 제시한 바울은 그 실제적인 모델로서 자신을 언급합니다. 자신을 모델로 제시하며 바울 자신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훈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말 그대로 자신이 ‘배우고 받고 듣고 본’대로 살았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랬기에 바울을 통해 디모데, 디도, 빌레몬 등의 휼륭한 목회자들과 누가, 에바브로디도, 루디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의 휼륭한 선교사들이 배출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산 바울이었기에 3:17에서도 자신 있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중에도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불평하지 않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향해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으며, 고난 중에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서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본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의 본입니다. 우리들도 진실한 믿음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평강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제2, 제3의 바울이 되셔서 후배 신앙인들에게 복된 교훈의 말씀을 남길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3.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가졌던 진실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성경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바울처럼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평강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꽤 많은 성경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부족해서 “목사님, 또 배우고 싶어요, 전 배우는 것이 너무나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머리로 많이 배운다 해도 실제로는 내가 행하는 만큼만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말씀을 배웠으면 받기보다는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고, 말씀대로 사는 자신이 얼마만큼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배우기만 하고 말만 많은 사람은 머리만 복잡해지고, 판단하기에 바빠서 정작 그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는 신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무디 선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성경을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고 하나님이 의심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때는 성경을 잠시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배운 대로 실천할 때 성경 말씀을 가장 잘 배울 수 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로 인해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를 메라는 말은 ‘예수님처럼 행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행할 때 우리 삶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배운 대로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로 인해 세상에서 얻지 못할 평강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면 무슨 일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순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게 살 수 있음을 오늘 분명하게 깨닫고, 믿고, 결단합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대로 참되게 행함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늘 체험하고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