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6. 성도가 소유하고 있는 기쁨과 평강 (빌 4:4-7)

우인택 목사
2025-05-07
조회수 642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쁨과 평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1. 먼저 4절 함께 읽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은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이 짧은 편지 속에 기쁨에 대한 표현이 무려 17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기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인생에는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일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더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아픔이 우리 인생을 짓누릅니다. 각종 실패, 인간관계의 어려움, 질병,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억울한 일 등을 수시로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말씀은 감정을 제어하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있어 기쁨은 명령이자 동시에 당연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주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주 안에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 8:1-2).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슬픔과 두려움의 근원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이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마치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신 예수님께서, 빚을 탕감해 주실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일평생 동행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기쁨의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아 이 기쁨을 몰랐지만,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고 살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용서는 복음 중의 복음이요, 감사 중의 감사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러하기에 “주 안에서 살고 있다”라는 이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산 가장 강력한 증인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의 생애만큼 이러한 믿음의 삶, 기쁨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삶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그가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어찌 보면 그가 처한 현실은 도저히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무죄한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립보서 곳곳에 자신은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 18, 2:17-18, 4:10).

바울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로마서 8:18에 자신이 당하는 이 고난들은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고’ 영광의 상급을 주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계 21:4). 그가 가진 기쁨은 환경과 여건을 이겨내는 내적으로 충만한 기쁨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울이 가졌던 이 기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구원의 기쁨, 위로의 기쁨, 상급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본받아, 지금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내적으로 충만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소망을 더욱 분명하게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우리가 이미 살펴본 1:28 이하의 말씀에,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대적하는 자’로부터 오는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빌립보 교회가 복음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권면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형편이 좋을 때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지면 자기도 모르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빌립보 성도들 역시,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라는 말이 예수님의 뜻인 줄을 알면서도, 대적하는 자를 앞에 두고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관용 ἐπιεικής 에피에이케스의 뜻을 정확히 알 때는 더욱 그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관용이란 불의한 일이나 역경을 당해도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이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깝다는 말은 예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은 우리가 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동기를 부여해 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에게 환난을 끼치는 자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은 우리에게는 영광으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살후 1:5-9). 그러므로 대적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환난을 겪고 있었던 빌립보 성도들에게 있어서 바울의 이 권면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죄인들을 구원해야 할 긴박함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이 심판당하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면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관용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롬 12:14-21).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릴 때만이 모든 이에게 관용을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방식대로 원수를 직접 갚거나 원망하거나, 그들과 똑같이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롬 12:19). 그런 태도는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를 길이 참으며 기다리며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관용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성도들이 소유할 참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 재림의 소망을 품고 힘을 다하여 관용을 베풀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악한 마귀의 모든 간계도 물리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롬 12:20). 여러분 모두 관용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6-7절 함께 읽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염려의 원인과 해결책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을 때 염려가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선한 염려를 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염려든, 부정적인 염려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것을 주목할 때 염려가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찾아올 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염려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마태복음 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있어서 염려하는 것은 합당한 태도가 아니라는 예수님의 일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며, 우리 개개인의 필요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마 7:9-11, 마 6:8).

여러분, 어린 자녀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는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하찮은 새와 들꽃도 돌보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마 6:26-30). 하물며 자녀인 우리를 돌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실망시키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막연히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까지라도 아낌없이 주신 분이심을 잊었기 때문입니다(롬 8:32).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고 맡기시기 바랍니다(벧전 5:7).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늘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을 기억함으로 항상 기뻐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소망을 붙들고 세상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도록 오직 기도와 간구로 주 안에 거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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