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이 말씀은 문맥상 3장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3:20에서부터 시작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소망과 확신 위에 굳게 설 것에 대한 권고의 마무리로 성도들은 장차 예수님 재림의 날에 영광의 형체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 소망을 갖고 주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매우 길게 빌립보 성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더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호칭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여기에서 ‘이와 같이’라는 표현은 ‘내가 너희에게 권면한 것 같이’ 또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로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라’라는 표현은 ‘확고히 서라’ ‘지속하라’ ‘버티라’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좀 더 풀어서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경건하고 정직하게 계속해서 굳게 서 있으라”라는 의미가 됩니다. 마치 파수꾼이 졸린 잠을 멀리하고 깨어 있듯이, 마라톤 경주를 할 때 우승하기를 원한다면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것을 이겨내고 끝까지 경주를 해야 하듯이 인내로서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오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이 권면을 여러분을 향한 권면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예수님의 언약을 의지하여 굳세게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권면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의 성도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권면은 그들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갈등하고 있었고, 그 일이 교회 전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로 바울의 선교를 헌신적으로 도와줌으로써 크게 칭찬받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던, 모범적이었던 빌립보 교회에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증언을 통해 인간의 한계,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교회라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교회 안에는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처럼 완전한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이 존재할 수 없기에 구원받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허물 많은 불완전한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한 몸이면서도 전혀 다른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모든 공동체가 그러하듯이 교회에서도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교회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서로의 이해충돌과 의견대립과 분쟁이 일어나고, 심하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히 세상 공동체들과는 구별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들의 모임임과 동시에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문제를 겪을 때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비록 교회에 흠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말씀은 완전한 교회를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많은 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믿고 도우셨던 것처럼, 비록 교회에 많은 흠이 있더라도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친히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하셨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교회를 세우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뿐만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는 얼마나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까? 분열과 사도권에의 도전, 음행, 법정소송, 우상숭배, 무질서한 은사 사용 등, 마치 모든 문제의 집합장소 같은 느낌마저 드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 교회를 바로잡으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회에 비록 문제가 많더라도, 인간관계로 힘이 들더라도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떠나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참고 기도하면서 선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 성도들도 주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심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그것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분쟁을 이기고 교회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임을 믿는 성도의 신앙고백이 됩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는 사도 바울의 이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라는 이 고백은 바울 자신이 직접 체험한 ‘동역의 원리’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의 ‘멍에’란 밭을 갈 때 쟁기 등을 연결하여 소의 어깨에 고정하는 기구입니다. 그리고 이 멍에는 한 마리의 소가 아니라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메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두 마리의 소가 멍에를 함께 메고 밭을 갈기 위해서는 서로가 보조를 정확하게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멍에를 멜 때 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인내가 필요했고, 때로는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아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소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각각의 소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도 척척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멍에를 같이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바울 곁에는 그처럼 멍에를 같이한 동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을 위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에 힘썼고, 인내로 서로를 대하며 고난과 고통을 함꼐 나누며 협력했습니다. 그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까지 바울과 하나가 되었습니다(롬 16:3-4). 의사 누가는 바울의 순교 직전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이 쓴 서신서에는 수십 명의 동역자 이름이 매우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에게 그러한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숱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교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 사역의 열매는 바울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성도들의 동역의 결과였습니다. 바울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그에게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결코 그와 같은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에게 음식을 제공 한 성도, 거처를 제공한 성도, 서신을 대필한 성도, 서신을 전달한 성도, 수감 중에 돌보아 준 성도,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준 성도, 함께 감옥에 갇힌 성도, 선교 여행에 직접 동참한 성도 등 그 동역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것은 누구든지 협력할 자세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떤 분야든지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섬기는 일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동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 마지막 부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동역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역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동역의 기쁨을 회복하고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바울의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동역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이 주 안에 있을 때에만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고, 동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교회는 언제든지 어려운 문제를 만날 수 있고, 분쟁이 있을 수 있지만, 함께 멍에를 멘 동역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한 동역을 통해 생명책이 이름이 기록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이 말씀은 문맥상 3장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3:20에서부터 시작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소망과 확신 위에 굳게 설 것에 대한 권고의 마무리로 성도들은 장차 예수님 재림의 날에 영광의 형체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 소망을 갖고 주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매우 길게 빌립보 성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더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호칭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여기에서 ‘이와 같이’라는 표현은 ‘내가 너희에게 권면한 것 같이’ 또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로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라’라는 표현은 ‘확고히 서라’ ‘지속하라’ ‘버티라’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좀 더 풀어서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경건하고 정직하게 계속해서 굳게 서 있으라”라는 의미가 됩니다. 마치 파수꾼이 졸린 잠을 멀리하고 깨어 있듯이, 마라톤 경주를 할 때 우승하기를 원한다면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것을 이겨내고 끝까지 경주를 해야 하듯이 인내로서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오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이 권면을 여러분을 향한 권면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성도로서 마땅한 삶을 예수님의 언약을 의지하여 굳세게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권면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의 성도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권면은 그들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갈등하고 있었고, 그 일이 교회 전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로 바울의 선교를 헌신적으로 도와줌으로써 크게 칭찬받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던, 모범적이었던 빌립보 교회에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증언을 통해 인간의 한계,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교회라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교회 안에는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처럼 완전한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이 존재할 수 없기에 구원받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허물 많은 불완전한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한 몸이면서도 전혀 다른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모든 공동체가 그러하듯이 교회에서도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교회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서로의 이해충돌과 의견대립과 분쟁이 일어나고, 심하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히 세상 공동체들과는 구별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들의 모임임과 동시에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문제를 겪을 때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비록 교회에 흠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말씀은 완전한 교회를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많은 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믿고 도우셨던 것처럼, 비록 교회에 많은 흠이 있더라도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친히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하셨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교회를 세우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뿐만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는 얼마나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까? 분열과 사도권에의 도전, 음행, 법정소송, 우상숭배, 무질서한 은사 사용 등, 마치 모든 문제의 집합장소 같은 느낌마저 드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 교회를 바로잡으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회에 비록 문제가 많더라도, 인간관계로 힘이 들더라도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떠나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참고 기도하면서 선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 성도들도 주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심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그것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분쟁을 이기고 교회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임을 믿는 성도의 신앙고백이 됩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는 사도 바울의 이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라는 이 고백은 바울 자신이 직접 체험한 ‘동역의 원리’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의 ‘멍에’란 밭을 갈 때 쟁기 등을 연결하여 소의 어깨에 고정하는 기구입니다. 그리고 이 멍에는 한 마리의 소가 아니라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메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두 마리의 소가 멍에를 함께 메고 밭을 갈기 위해서는 서로가 보조를 정확하게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멍에를 멜 때 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인내가 필요했고, 때로는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아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소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각각의 소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도 척척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멍에를 같이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바울 곁에는 그처럼 멍에를 같이한 동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을 위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에 힘썼고, 인내로 서로를 대하며 고난과 고통을 함꼐 나누며 협력했습니다. 그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까지 바울과 하나가 되었습니다(롬 16:3-4). 의사 누가는 바울의 순교 직전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이 쓴 서신서에는 수십 명의 동역자 이름이 매우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에게 그러한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숱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교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 사역의 열매는 바울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성도들의 동역의 결과였습니다. 바울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그에게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결코 그와 같은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에게 음식을 제공 한 성도, 거처를 제공한 성도, 서신을 대필한 성도, 서신을 전달한 성도, 수감 중에 돌보아 준 성도,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준 성도, 함께 감옥에 갇힌 성도, 선교 여행에 직접 동참한 성도 등 그 동역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것은 누구든지 협력할 자세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떤 분야든지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섬기는 일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동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 마지막 부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동역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역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동역의 기쁨을 회복하고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바울의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동역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이 주 안에 있을 때에만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고, 동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교회는 언제든지 어려운 문제를 만날 수 있고, 분쟁이 있을 수 있지만, 함께 멍에를 멘 동역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한 동역을 통해 생명책이 이름이 기록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