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은 성도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앞부분에서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는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고 교훈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겸손의 본으로 예수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교회 안에 사랑과 평안과 구원의 은혜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면 예수님께서 사신 삶을 배우고,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온유와 겸손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겸손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겸손입니까? 이어지는 6절에 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지니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속성과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란 증거는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1) 우선,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45절에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려내는 창조적인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열두 살 된 회당장의 딸과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 그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려내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이렇게 다시 살려내시는 분은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3) 또한, 죄를 사해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4) 또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바다에게 명령하심으로 폭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5) 또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성경은 로마서 9:5에서 예수님을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디도서 2:13에서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한 어조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창조주요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자존심과 영광을 유보하시고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지사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죄인된 우리 인간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또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곧 겸손의 극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겸손이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이라고 해서 남 앞에서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신이 힘과 권세가 있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권세를 선용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겸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겸손의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바로 알고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7절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간되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예수님의 성육신’이라고 칭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육체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는 ‘가현설’을 주장하며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성경의 증거이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는 없으시되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행 중에 피곤함을 느끼셨습니다(요 3:6).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셨으며, 마음의 번민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셨고, 사랑하는 자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으며, 불의를 보고는 근심하며 노하기도 하셨습니다(마 26:38-39, 요 11:35, 막 3:5). 또한,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진 인간이셨기에 가지신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셨기에 우리의 아픔과 질고를 이해하실 수 있었으며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시고 위로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 나시고 인간의 한계를 지니셨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신 예수님과 우리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래 그의 혈통을 타고난 인간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24). 그것은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는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죄도, 죄성도 없는 순수한 인간이자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러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고, 또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14, 요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단이 분명합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직접 겪으신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연약함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8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9-11절에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이것은 곧 높아짐의 극치입니다. 이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최고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예수님의 높임에 대하여 말씀할 때, ‘이러므로’라는 부사로 시작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높아짐을 위한 나름대로의 많은 비결이 있지만, 우리 성도들의 비결은 ‘이러므로’라는 말에 있습니다. ‘이러므로’란 무엇입니까? 6-8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아지셨습니다. 이것이 높아짐의 참 비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줄곧 낮아지기를 요구하셨고, 또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질 것이라고 교훈하셨습니다(눅 14:11).
사람들은 대개 높아지기 위해 자기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과시합니다. 없어도 있는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약해도 강한 체합니다. 또 섬기기보다는 섬김받으려 하고, 또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높아짐은 겸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를 낮출 때 비로소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짐과 높아짐의 원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주 안에서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높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사심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룸과 동시에 예수님의 영광에도 함께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사순절을 지나는 이때 저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 모두,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과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을 본받음으로 이 사순절을 겸손하게 지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은 성도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앞부분에서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는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고 교훈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겸손의 본으로 예수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교회 안에 사랑과 평안과 구원의 은혜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면 예수님께서 사신 삶을 배우고,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온유와 겸손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겸손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겸손입니까? 이어지는 6절에 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지니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속성과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란 증거는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1) 우선,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45절에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려내는 창조적인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열두 살 된 회당장의 딸과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 그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려내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이렇게 다시 살려내시는 분은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3) 또한, 죄를 사해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4) 또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바다에게 명령하심으로 폭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5) 또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성경은 로마서 9:5에서 예수님을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디도서 2:13에서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한 어조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창조주요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자존심과 영광을 유보하시고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지사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죄인된 우리 인간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또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곧 겸손의 극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겸손이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이라고 해서 남 앞에서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신이 힘과 권세가 있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권세를 선용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겸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겸손의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바로 알고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7절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간되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예수님의 성육신’이라고 칭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육체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는 ‘가현설’을 주장하며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성경의 증거이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는 없으시되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행 중에 피곤함을 느끼셨습니다(요 3:6).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셨으며, 마음의 번민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셨고, 사랑하는 자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으며, 불의를 보고는 근심하며 노하기도 하셨습니다(마 26:38-39, 요 11:35, 막 3:5). 또한,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진 인간이셨기에 가지신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셨기에 우리의 아픔과 질고를 이해하실 수 있었으며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시고 위로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 나시고 인간의 한계를 지니셨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신 예수님과 우리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래 그의 혈통을 타고난 인간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24). 그것은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는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죄도, 죄성도 없는 순수한 인간이자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러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고, 또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14, 요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단이 분명합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직접 겪으신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연약함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8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9-11절에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이것은 곧 높아짐의 극치입니다. 이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최고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예수님의 높임에 대하여 말씀할 때, ‘이러므로’라는 부사로 시작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높아짐을 위한 나름대로의 많은 비결이 있지만, 우리 성도들의 비결은 ‘이러므로’라는 말에 있습니다. ‘이러므로’란 무엇입니까? 6-8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아지셨습니다. 이것이 높아짐의 참 비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줄곧 낮아지기를 요구하셨고, 또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질 것이라고 교훈하셨습니다(눅 14:11).
사람들은 대개 높아지기 위해 자기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과시합니다. 없어도 있는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약해도 강한 체합니다. 또 섬기기보다는 섬김받으려 하고, 또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높아짐은 겸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를 낮출 때 비로소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짐과 높아짐의 원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주 안에서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높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사심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룸과 동시에 예수님의 영광에도 함께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사순절을 지나는 이때 저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 모두,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과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을 본받음으로 이 사순절을 겸손하게 지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