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오늘 본문은 성도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자랑이 풍성하려면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는 말은
1) ‘시민답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어떤 생활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고, 불신자들은 이성으로 삽니다. 하지만 성도는 믿음으로 삽니다(롬 1:17). 믿음으로 사는 것은 복음, 곧 예수님의 언약과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사는 것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생활 방식입니다.
2)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소망 중에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불행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고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19절). 특히, 바울은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소망 중에 사는 삶입니다.
3)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사랑으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랑을 잃으면 하나님을 잃는 것이고, 예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잃는 것이고, 구원을 잃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왜 마귀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사탄은 본래 찬양하는 천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 마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서 그 사랑을 빼앗아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게 하려고 항상 우는 사자처럼 기회를 살핍니다. 이를 늘 기억하여 무엇에든지 사랑으로 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사명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조차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12-14절).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 때 그 삶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인 것을 알아 오늘 기도하실 때, 과연 나 자신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어서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1)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는 이유는 교회의 생명력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좋고 양적으로 풍성해도 한번 이단 사상에 물들면 교회의 생명력은 끝나고 맙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의 생명은 복음의 순수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고 유지하느냐에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를 위시한 초대교회들은 이단들로부터 끝없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의 미혹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초대교회가 이러한 이단 사상의 도전이 두려워 일부라도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단 사상들의 공격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냈기에 교회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이단 사상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몇몇의 신학자나 목회자의 힘과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양들은 사나운 짐승을 만나면 떼를 지어 뭉칩니다. 이것이 양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입니다. 아무리 사나운 짐승일지라도 무리를 짓고 있는 양 떼는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양 떼가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단 사상의 침투를 막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협력해야 합니다.
2)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곧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고 고난과 박해를 이겨내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을 이루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장차 누가 구원받을지 잘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는 분명한 구원의 증거들이 있는데, 그러한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씀합니다.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구원에 합당한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이단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받은 성도의 확실한 증거임을 늘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9절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불의한 세상에서 그들과 동화되지 않고 의로우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19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세상은 탐욕에 빠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원수지간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고난에 빠뜨립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고 있기에 그들이 함부로 교회를 박해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음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예수님을 믿으려면 큰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말세가 가까워지면 반드시 세상이 교회를 크게 박해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마 24:9-10).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잘 기억함으로써 항상 고난받을 자세와 각오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참된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징계는 자녀된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받지 않는 성도는 없습니다. 어떤 성도이든 하나님께 징계받을 만한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로, 또는 건강으로, 또는 사람으로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징계는 성도를 의롭게 하는 방편이 됩니다. 성도를 더욱 사랑스럽고 거룩하게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성도라면 누구나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는 것은 고난은 성도가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요, 장차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려고 요령을 피우거나, 또 고난을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고난은 오히려 우리 성도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내로써 극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잘 지켜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계승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저희가 믿음의 삶을 살 때 다가오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여 고난을 통해 오히려 믿음의 진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오늘 본문은 성도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자랑이 풍성하려면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는 말은
1) ‘시민답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어떤 생활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고, 불신자들은 이성으로 삽니다. 하지만 성도는 믿음으로 삽니다(롬 1:17). 믿음으로 사는 것은 복음, 곧 예수님의 언약과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사는 것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생활 방식입니다.
2)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소망 중에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불행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고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19절). 특히, 바울은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소망 중에 사는 삶입니다.
3)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사랑으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랑을 잃으면 하나님을 잃는 것이고, 예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잃는 것이고, 구원을 잃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왜 마귀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사탄은 본래 찬양하는 천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 마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서 그 사랑을 빼앗아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게 하려고 항상 우는 사자처럼 기회를 살핍니다. 이를 늘 기억하여 무엇에든지 사랑으로 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사명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조차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12-14절).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 때 그 삶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인 것을 알아 오늘 기도하실 때, 과연 나 자신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어서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1)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는 이유는 교회의 생명력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좋고 양적으로 풍성해도 한번 이단 사상에 물들면 교회의 생명력은 끝나고 맙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의 생명은 복음의 순수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고 유지하느냐에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를 위시한 초대교회들은 이단들로부터 끝없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의 미혹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초대교회가 이러한 이단 사상의 도전이 두려워 일부라도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단 사상들의 공격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냈기에 교회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이단 사상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몇몇의 신학자나 목회자의 힘과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양들은 사나운 짐승을 만나면 떼를 지어 뭉칩니다. 이것이 양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입니다. 아무리 사나운 짐승일지라도 무리를 짓고 있는 양 떼는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양 떼가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단 사상의 침투를 막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협력해야 합니다.
2)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곧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고 고난과 박해를 이겨내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을 이루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장차 누가 구원받을지 잘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는 분명한 구원의 증거들이 있는데, 그러한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씀합니다.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구원에 합당한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이단으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받은 성도의 확실한 증거임을 늘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9절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불의한 세상에서 그들과 동화되지 않고 의로우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19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세상은 탐욕에 빠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원수지간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고난에 빠뜨립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고 있기에 그들이 함부로 교회를 박해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음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예수님을 믿으려면 큰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말세가 가까워지면 반드시 세상이 교회를 크게 박해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마 24:9-10).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잘 기억함으로써 항상 고난받을 자세와 각오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참된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징계는 자녀된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받지 않는 성도는 없습니다. 어떤 성도이든 하나님께 징계받을 만한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로, 또는 건강으로, 또는 사람으로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징계는 성도를 의롭게 하는 방편이 됩니다. 성도를 더욱 사랑스럽고 거룩하게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성도라면 누구나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는 것은 고난은 성도가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요, 장차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려고 요령을 피우거나, 또 고난을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고난은 오히려 우리 성도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내로써 극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복음의 순수성을 잘 지켜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계승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저희가 믿음의 삶을 살 때 다가오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여 고난을 통해 오히려 믿음의 진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