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오늘 본문은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내가 당한 일’이란 감옥에 갇힌 일입니다. 바울은 주후 61-63년까지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던 바울의 투옥은 누가 보아도 선교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일임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를 돕던 빌립보 성도들은 이 일을 매우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그들에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바울의 투옥은 복음 전파에 큰 장애였습니다. 최대의 악재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13절 이하에, 이 고난으로 인해 오히려 복음이 더욱 빠르게 로마 전역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전의 역사는 바울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와 복음은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도들 외에 모든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오히려 복음이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함으로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파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이 막으면 차서 넘치는 것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로마 제국이 마침내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 뜻을 바르게 믿고 전한다면 복음은 진리이므로 반드시 전해지게 됨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하여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변명과 핑곗거리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환경도 초월하여 전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오직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달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여기에서 ‘매임’이라는 말은 ‘쇠사슬을 차고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바울은 황제 앞에서 열리는 재판을 기다리며 셋집에서 감옥처럼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온종일 순번에 따라 바뀌는 근위대 병사와 함께 약 2년간 쇠사슬로 매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때를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근위대 병사가 자신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으니 병사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힘들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해야 했으나, 투옥된 이후에는 그를 지키는 간수들은 물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빌립보서 4:22에서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가이사 집 사람’이란 황제를 모시는 궁전의 신하를 가리킵니다. 이는 복음이 근위대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의 신하들에게도 전해지고, 또 그들 중에 믿는 자가 생겨났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위기를 도리어 기회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붙들고 나아갈 때, 주위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롬 8:28).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처지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과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도 바울처럼 극한 위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멋진 기회로 만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바라보며 인내하며 선한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그런데 바울은 15절에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전합니다. 그리고 17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투기와 분쟁은 마귀의 일인데, 이러한 것에 매여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자들이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결코 자기의 유익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전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복음 증거의 사명을 주신 것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8절에서 그러한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결과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므로 자신은 그것조차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고백은 복음을 사랑하는 바울의 진정한 마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것이 합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바울은 영혼 구원 차원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단언하건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그릇된 일입니다.
만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면 교회에 당파가 생기게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회가 몇몇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버리고, 또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전도한 사람을 본받기 때문에 그의 신앙이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과정은 더욱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전한 복음만이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16절에, 그들과 달리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15절 하반 절에 언급된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옥에 갇힌 일을 로마를 복음화하기 위한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역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고 열정을 다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요?
먼저는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순수한 동기란 예수님의 심장을 지닌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모르고 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를 생각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려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궁핍한 상황에 있다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기를 희생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이 전달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을 때,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앙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도 사람이라” 하며 오직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열정을 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자신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자기를 감추어야 합니다. 전달자의 입장으로 겸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구원받은 성도이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이 전도입니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을 전도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이웃 앞에 겸손히 ‘그저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전도하는 것이 성도로서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에 기초한 복음 전도만이 영혼 구원의 결실을 거두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동기가 되어, 사랑에 기초하여, 사랑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는 동력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대해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로마 제국을 복음화하는 기초를 쌓았습니다. 저희도 바울의 자세를 본받아 주어진 상황이나 형편을 핑계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모든 것을 넘어서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하고 능력있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오늘 본문은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내가 당한 일’이란 감옥에 갇힌 일입니다. 바울은 주후 61-63년까지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던 바울의 투옥은 누가 보아도 선교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일임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를 돕던 빌립보 성도들은 이 일을 매우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그들에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바울의 투옥은 복음 전파에 큰 장애였습니다. 최대의 악재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13절 이하에, 이 고난으로 인해 오히려 복음이 더욱 빠르게 로마 전역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전의 역사는 바울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와 복음은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도들 외에 모든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오히려 복음이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함으로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파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이 막으면 차서 넘치는 것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로마 제국이 마침내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 뜻을 바르게 믿고 전한다면 복음은 진리이므로 반드시 전해지게 됨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하여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변명과 핑곗거리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환경도 초월하여 전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오직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달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여기에서 ‘매임’이라는 말은 ‘쇠사슬을 차고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바울은 황제 앞에서 열리는 재판을 기다리며 셋집에서 감옥처럼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온종일 순번에 따라 바뀌는 근위대 병사와 함께 약 2년간 쇠사슬로 매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때를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근위대 병사가 자신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으니 병사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힘들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해야 했으나, 투옥된 이후에는 그를 지키는 간수들은 물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빌립보서 4:22에서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가이사 집 사람’이란 황제를 모시는 궁전의 신하를 가리킵니다. 이는 복음이 근위대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의 신하들에게도 전해지고, 또 그들 중에 믿는 자가 생겨났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위기를 도리어 기회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붙들고 나아갈 때, 주위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롬 8:28).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처지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과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도 바울처럼 극한 위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멋진 기회로 만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바라보며 인내하며 선한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그런데 바울은 15절에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전합니다. 그리고 17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투기와 분쟁은 마귀의 일인데, 이러한 것에 매여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자들이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결코 자기의 유익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전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복음 증거의 사명을 주신 것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8절에서 그러한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결과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므로 자신은 그것조차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고백은 복음을 사랑하는 바울의 진정한 마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것이 합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바울은 영혼 구원 차원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단언하건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그릇된 일입니다.
만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면 교회에 당파가 생기게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회가 몇몇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버리고, 또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전도한 사람을 본받기 때문에 그의 신앙이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과정은 더욱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전한 복음만이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16절에, 그들과 달리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15절 하반 절에 언급된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옥에 갇힌 일을 로마를 복음화하기 위한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역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고 열정을 다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요?
먼저는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순수한 동기란 예수님의 심장을 지닌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모르고 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를 생각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려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궁핍한 상황에 있다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기를 희생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이 전달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을 때,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앙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도 사람이라” 하며 오직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열정을 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자신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자기를 감추어야 합니다. 전달자의 입장으로 겸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구원받은 성도이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이 전도입니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을 전도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이웃 앞에 겸손히 ‘그저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전도하는 것이 성도로서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에 기초한 복음 전도만이 영혼 구원의 결실을 거두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동기가 되어, 사랑에 기초하여, 사랑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는 동력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대해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로마 제국을 복음화하는 기초를 쌓았습니다. 저희도 바울의 자세를 본받아 주어진 상황이나 형편을 핑계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모든 것을 넘어서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하고 능력있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