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오늘 본문은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과 사도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삶의 자세에 대한 고백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에서의 ‘그러므로’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고 낮아지심을 통해 지극히 높아지셨으므로’ 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고 낮아지심을 통해 지극히 높아지셨으므로 너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잘못 읽게 되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배치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원을 받기 위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하기에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그 구원을 잘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은혜로 받은 구원이 그 능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성숙을 위해 계속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으로 사는 것이 되겠습니까? 머리에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에는 실천 없는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믿고 떨지만, 그 믿음을 실천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면서, 머리에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신앙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항상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인간의 노력에 필요한 듯한 인상을 주는 12절의 말씀이 결코 그러한 의미가 아님을 분명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일을 할 힘도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나,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한 의지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근원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갈 만한 힘도 의지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곧 성령께서 도우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행이 우리의 자랑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로를 자기의 공로로 삼는 것은 악한 일이며 교만한 일임을 알아,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로 그렇게 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며 겸손하게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14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과 시비가 우리 가운데에서 사라지고 하나 됨과 구원의 기쁨이 있게 됩니다. 원망과 시비의 시작은 다 자기주장 때문입니다. 이기적으로 행하고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공로를 오직 하나님께만 올려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겸손하게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원망과 시비가 없는 우리 교회로 세워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관련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혼합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함’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어그러지고 비틀어진 이 세상 가운데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해야만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16절 함께 읽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함이라’라고 말씀하는데, 목회자의 자랑거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유일한 소망이요, 자랑거리입니다. 목회자들은 이 자랑거리를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힘을 씁니다.
지금도 농어촌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은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교회 목회자 중에도 그런 형편의 목회자들이 허다합니다. 그분들이 그렇게까지 헌신하는 것은 바울처럼 오직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의 수고에 자랑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회자들도 마음에 힘을 얻어 더욱 목회에 전력하고 즐겁게 성도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교회 또한 부흥될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기쁨은 곧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수고에 자랑거리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장차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현세에서도 범사에 잘 되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17-18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기가 설령 순교를 당할지라도 자신은 기쁨으로 감당할 것이니 너희도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전제’란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으로 피 흘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순교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제사 의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진정으로 흠이 없고 순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삶을 온전히 섭리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러한 바울의 신앙고백을 바라보며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이 자신을 전제로 드릴 수 있음을 기뻐했듯이 저희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는 흠이 없고 순전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 때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셔서 한 생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순절을 지나는 이때 더욱 겸손하고 순전한 믿음을 소유하기에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오늘 본문은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과 사도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삶의 자세에 대한 고백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에서의 ‘그러므로’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고 낮아지심을 통해 지극히 높아지셨으므로’ 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고 낮아지심을 통해 지극히 높아지셨으므로 너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잘못 읽게 되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배치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원을 받기 위해 겸손하고 선한 행위를 하기에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그 구원을 잘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은혜로 받은 구원이 그 능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성숙을 위해 계속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으로 사는 것이 되겠습니까? 머리에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에는 실천 없는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믿고 떨지만, 그 믿음을 실천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면서, 머리에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신앙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항상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인간의 노력에 필요한 듯한 인상을 주는 12절의 말씀이 결코 그러한 의미가 아님을 분명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일을 할 힘도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나,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한 의지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근원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갈 만한 힘도 의지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곧 성령께서 도우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행이 우리의 자랑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로를 자기의 공로로 삼는 것은 악한 일이며 교만한 일임을 알아,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로 그렇게 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며 겸손하게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14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과 시비가 우리 가운데에서 사라지고 하나 됨과 구원의 기쁨이 있게 됩니다. 원망과 시비의 시작은 다 자기주장 때문입니다. 이기적으로 행하고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공로를 오직 하나님께만 올려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겸손하게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원망과 시비가 없는 우리 교회로 세워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15절 함께 읽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관련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혼합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함’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어그러지고 비틀어진 이 세상 가운데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해야만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16절 함께 읽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함이라’라고 말씀하는데, 목회자의 자랑거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유일한 소망이요, 자랑거리입니다. 목회자들은 이 자랑거리를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힘을 씁니다.
지금도 농어촌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은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교회 목회자 중에도 그런 형편의 목회자들이 허다합니다. 그분들이 그렇게까지 헌신하는 것은 바울처럼 오직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의 수고에 자랑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회자들도 마음에 힘을 얻어 더욱 목회에 전력하고 즐겁게 성도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교회 또한 부흥될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기쁨은 곧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수고에 자랑거리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장차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현세에서도 범사에 잘 되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17-18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기가 설령 순교를 당할지라도 자신은 기쁨으로 감당할 것이니 너희도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전제’란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으로 피 흘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순교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제사 의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진정으로 흠이 없고 순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삶을 온전히 섭리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러한 바울의 신앙고백을 바라보며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이 자신을 전제로 드릴 수 있음을 기뻐했듯이 저희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는 흠이 없고 순전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 때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셔서 한 생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순절을 지나는 이때 더욱 겸손하고 순전한 믿음을 소유하기에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