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지금 빌립보서를 상고하고 있는데, 첫 번째 시간에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성도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늘 서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항상 간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세 번째 시간에는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애틋한 마음의 고백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7절에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라고 고백합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라는 말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늘 힘썼음을 의미합니다. 또, 8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두 구절의 고백은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빌립보 성도들처럼 이런 사랑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하여 7절 중반절에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매임’이나 ‘변명함’이나 ‘확정함’이라는 말은 모두 법률적인 용어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었고, 법정에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임을 지혜롭게 전했습니다(골 4:18, 행 26:29).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은 이러한 바울을 도왔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데마 등 많은 사람들이 바울 곁을 떠나갔지만, 빌립보 성도들만큼은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딤후 4:10). 이로 인해 바울이 더욱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성도와 성도 사이에는 서로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감사하고, 함께 기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도 서로 그리워하며 사모하게 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에 은혜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도록 만드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제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성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만이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예수님께 사랑받고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동고동락, 함께하는 신실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9절 이하의 말씀에는, 빌립보 성도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9절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물질이 많고 성도의 수가 많은 것보다, 사랑이 많아야 예수님의 생명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12에 말세가 되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이 예고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랑이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질 제일주의 풍조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풍조 안에서 섬김과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세상 풍조가 교회에까지 영향을 주어 교회 안에서조차 섬김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사랑이 풍성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은 교회의 생명이요 권능입니다. 사랑을 잃은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잃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4-5절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교회의 푯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매우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2가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먼저 “지식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일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성도 사이의 아름다운 교제가 더욱 풍성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총명’이란 악한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뜻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무엇을 택할지를 온전히 분별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성도 사이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려면 먼저는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분별력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총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선악을 구별하며 성도로서 합당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또한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은혜의 주역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이란 ‘최선의 선’을 가리키고 ‘분별’한다는 말은 ‘시험하여 증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희가 최선의 선을 행하기 위해 시험하여 분별하기를 원하고”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진실’하기를 바랐습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라는 말은 ‘밝은 태양 빛으로 시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두운 방에 있으면 점과 흠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 햇빛에 비추어 보면 점과 흠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의 점과 흠을 발견하려면 성도는 예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써 예수님의 거룩한 빛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허물을 찾고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예수님 재림의 날에 허물없는 성도로서 예수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허물 있는 성도는 어떤 성도입니까? 비성경적인 요소를 지닌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단의 교리를 받아들인 성도, 또 사랑이 없는 성도, 인본주의적인 성도, 형식적으로 행하는 성도, 행할 것을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을 것을 행하는 성도들이 바로 허물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과연 허물없는 성도가 몇 명이나 될까요?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최선의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지녀야 하고, 예수님의 거룩한 말씀의 빛에 늘 자신의 삶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흠 없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흠이 없는 성도가 되려면 성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한두 가지 흠은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도 스스로는 자기의 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연단을 하십니다. 성도는 연단을 통해 자기의 흠을 발견하고, 점점 더 흠 없는 성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연단하실 때 원망,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그 연단을 잘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흠 없는 성도’는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별력과 자기성찰, 그리고 이를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를 기억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의 교제를 한 것처럼 저희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이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지금 빌립보서를 상고하고 있는데, 첫 번째 시간에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성도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늘 서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항상 간구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세 번째 시간에는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애틋한 마음의 고백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7절에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라고 고백합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라는 말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늘 힘썼음을 의미합니다. 또, 8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두 구절의 고백은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빌립보 성도들처럼 이런 사랑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하여 7절 중반절에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매임’이나 ‘변명함’이나 ‘확정함’이라는 말은 모두 법률적인 용어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었고, 법정에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임을 지혜롭게 전했습니다(골 4:18, 행 26:29).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은 이러한 바울을 도왔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데마 등 많은 사람들이 바울 곁을 떠나갔지만, 빌립보 성도들만큼은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딤후 4:10). 이로 인해 바울이 더욱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성도와 성도 사이에는 서로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감사하고, 함께 기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도 서로 그리워하며 사모하게 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에 은혜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도록 만드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제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성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만이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예수님께 사랑받고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동고동락, 함께하는 신실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9절 이하의 말씀에는, 빌립보 성도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9절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물질이 많고 성도의 수가 많은 것보다, 사랑이 많아야 예수님의 생명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12에 말세가 되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이 예고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랑이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질 제일주의 풍조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풍조 안에서 섬김과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세상 풍조가 교회에까지 영향을 주어 교회 안에서조차 섬김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사랑이 풍성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은 교회의 생명이요 권능입니다. 사랑을 잃은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잃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4-5절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교회의 푯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매우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2가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먼저 “지식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일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성도 사이의 아름다운 교제가 더욱 풍성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총명’이란 악한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뜻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무엇을 택할지를 온전히 분별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성도 사이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려면 먼저는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분별력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총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선악을 구별하며 성도로서 합당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또한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은혜의 주역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이란 ‘최선의 선’을 가리키고 ‘분별’한다는 말은 ‘시험하여 증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희가 최선의 선을 행하기 위해 시험하여 분별하기를 원하고”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진실’하기를 바랐습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라는 말은 ‘밝은 태양 빛으로 시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두운 방에 있으면 점과 흠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 햇빛에 비추어 보면 점과 흠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의 점과 흠을 발견하려면 성도는 예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써 예수님의 거룩한 빛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허물을 찾고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예수님 재림의 날에 허물없는 성도로서 예수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허물 있는 성도는 어떤 성도입니까? 비성경적인 요소를 지닌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단의 교리를 받아들인 성도, 또 사랑이 없는 성도, 인본주의적인 성도, 형식적으로 행하는 성도, 행할 것을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을 것을 행하는 성도들이 바로 허물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과연 허물없는 성도가 몇 명이나 될까요?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최선의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지녀야 하고, 예수님의 거룩한 말씀의 빛에 늘 자신의 삶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흠 없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흠이 없는 성도가 되려면 성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한두 가지 흠은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도 스스로는 자기의 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연단을 하십니다. 성도는 연단을 통해 자기의 흠을 발견하고, 점점 더 흠 없는 성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연단하실 때 원망,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그 연단을 잘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흠 없는 성도’는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별력과 자기성찰, 그리고 이를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를 기억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의 교제를 한 것처럼 저희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이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