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35. 교회와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계 12:1-6)

우인택 목사
2021-04-29
조회수 2794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의 핵심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지면의 대부분은 이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4:1-22:5).
특히,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하나의 크고 무서운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이전에 먼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무섭고도 끔찍한 대환란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연속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이전의 대환란은 4장-18장에, 예수님 재림 이후의 사건은 19장-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12장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란의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속한 12장부터는 예언의 내용에 있어서 조금 변화가 나타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본문의 내용이 장차 일어날 대재앙 중심의 말씀이었던 반면에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12장부터는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탄의 박해와 그러한 박해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 중간 중간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12장부터를 ‘요한계시록 2부’라고 칭하고, 또 전반부에는 없는 이적에 대하여 계속 언급하고 있기에 12장부터를 ‘이적의 책’이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여기에서 ‘이적’이라는 단어는 ‘신호, 상징, 표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는 큰 이적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는 환상 가운데 한 여자가 보였습니다.
그 여자는 해를 옷 입고, 그녀의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녀는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썼습니다.
이 모습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해는 옷 입었다’는 것은 ‘완전한 영광’을, ‘달을 발 아래에 두었다’는 것은 ‘완전한 통치’를, ‘열두 별의 관을 썼다’는 것은 ‘완전한 승리와 영광’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 여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의 상징입니다.
이 여인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있으나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유하였듯 이 이 여인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라고 묘사합니다(벧전 2:9, 계 21:2, 9).
그러므로 여기서의 여자는 교회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보기에 세상에서의 교회는 영광스럽지도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조롱과 비난의 대상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핍박의 대상이었고 반역의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상황에 놓인 초대 교회성도들이 얼마나 위축되었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선한 삶을 사는데도 성도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멸시와 핍박과 죽음’뿐이니 그 심정들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이처럼 교회의 모습을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묘사하신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이 표현은 단순히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묘사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는 예수께서 주인되시는 지극히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사도 요한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교회가 탄생하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60:1-3에 예언된 내용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또 62:2-3에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손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교회를 간절히 소망할 때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고 멸시해도 믿음을 지키며 당당하게 교회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미워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저주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영광의 모습의 실체는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믿음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런데 2절 함께 읽습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여기서의 ‘아이’는 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곧 ‘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교회는 구약 선민 이스라엘 곧 구약 교회를 가리킵니다(행 7:38).
예수님께서 구약 교회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라는 말은 구약 선지자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환상은 구약의 교회 이야기를 통해 신약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상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고난의 시간들을 견뎠듯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교회들 또한
그러한 해산의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듯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산하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고통을 통과 해야만 ‘새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고통은 ‘교회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이 몫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박해로 인한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과 여러분들은 이 해산의 진통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아픔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배어 있습니까?
여러분, 성도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라면 마땅히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해산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거슬러 살기 위해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간절한 믿음의 간구가 우리의 삶속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삶에 동참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3. 그런데 이어지 말씀에 사도요한은 여자의 환상에 이어서 또 다른 환상을 보았습니다.
3-4절 함께 읽습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한 붉은 용이 보이는데, 이 용은 머리가 일곱 개이고 그 머리들마다 왕관을 썼고, 뿔도 열 개나 달렸습니다.
그리고 9절에 의하면 이 용의 정체는 ‘사탄’인데, 이 용은 ‘그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천사 일부를 미혹하여 타락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용은 여자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여자 앞에서 해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탄의 이러한 시도는 천지창조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에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 남자아이를 다 살해하려 한 것, 하만이 유대인을 다 죽이려 한 것 등은 모두 오늘 본문의 사탄의 계략과 동일한 것들이었습니다.
또 신약 시대에 헤롯이 두 살 아래 유아들을 학살한 것, 그리고 사탄이 직접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한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은 모두 여자가 낳은 아이를 죽이려 한 사탄의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탄의 시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성취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단의 그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5절 함께 읽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러분 여자가 낳은 아이가 하나님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갔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하나님의 인류 구속 계획을 방해하려 했던 사단의 계획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실패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역으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막으려고 했던 사탄의 종말의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살펴본 베드로후서의 말씀처럼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때가 이르지 않아 사탄이 여전히 세상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괴롭게 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지만 예수님 재림의 때가 오면 반드시 우리는 우리의 헌신의 대가를 보상받고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4. 그런데 여러분, 이 용의 모습은 5:6에 묘사된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5:6에 보면 예수께서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 또한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 열 뿔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이 예수님처럼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성경에서 일곱과 열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지식이나 통치권을 상징하며 뿔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용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과 결코 비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사탄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탄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모습을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위장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비슷한 능력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거짓된 복음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거짓 선생과 수많은 이단을 통해 교회의 위상을 깎아 내리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무서운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갖가지 종교와 철학과 사상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세상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하기에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사탄의 모습에 방심하고 사탄에 대한 경계를 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사탄에게 속아서 멸망으로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여기에 더하여 믿는 자들까지도 삼키려고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헤매고 있습니다(벧전 5:8).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결코 사탄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힘으로는 사탄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엡 6:11-17).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5. 이어지는 6절 함께 읽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서 ‘여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교회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광야로 도망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이이를 죽이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공격의 대상을 여자에게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사탄의 공격을 피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광야로 도망갑니다.
물론, 여기서 광야는 어느 특정한 장소라기보다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는 먹고 마실 것이 거의 없는 고난의 장소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밤에는 매서운 추위가 쉬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곳입니다.
또한 독사, 전갈, 각종 맹수들에게 완전하게 노출된 곳입니다.
지금 교회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이러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의 도피처로 삼으신 광야는 고난의 장소만은 아닙니다.
광야는 고난의 장소인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와 연단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각종 이적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는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피난처인 동시에 고통과 고난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수없이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광야에서 완벽한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여 주셨고 광야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무려 40년 동안이나 광야에 있었지만 주변 강대국들이 그들을 다시 노예로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노예 출신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자유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죄의 노예에서 의의 자녀로 변화되었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신 8: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 8:2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우리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아이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광야에 두시는 것은 성도들이 죄의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바른 지식을 소유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험난한 광야에 남겨 두시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주는 고난으로 인하여 좌절과 불평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광야를 사랑하고 나그네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광야인 것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예수님 재림의 그날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애굽이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했던 것처럼 사탄도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교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박해로 인한 광야의 삶은 성도들에게 있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성장하도록 연단의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 길을 신앙의 연단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성숙하고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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