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33. 사명이 있는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계 11:7-13)

우인택 목사
2020-12-14
조회수 1920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삼년 반 동안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권능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실한 교회들과 신실한 성도들, 곧 두 증인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여기에서 짐승이 올라온 무저갱은 9:1-3에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열은 곳입니다.
그때에 황충이 땅 위에 나와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했었는데, 이제 그곳에서 짐승이 올라온 것입니다.
1. 7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런데 성령의 권능으로 강력하게 회개를 외치던 두 증인이 느닷없이 짐승과 싸우다가 죽임을 당한다는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누구든지 대적하는 자를 삼켜버리는 불을 가진 두 증인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죽임을 당한 것은, 마치 이 짐승이 하나님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살펴보면 두 증인의 죽음에 앞서서 전제되는 시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입니다.
이는 이 두 증인이 짐승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순교 당하게 된 것은 그들이 맡은 사명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결국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러나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스스로 체포되시고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처럼, 또,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결국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러나 때가 되자 로마에서 순교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교회가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절대로 망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음을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1:25-26).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사명을 마친 후에 교회가 당하는 죽음은 교회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말씀 선포사역이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교회의 복음전도 사명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할 그 때에 그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회개하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이 끝나는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이어서 8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두 증인들의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큰 성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매우 비참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6:3에 사람이 죽은 후에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한 죄악의 도시로 도덕적인 타락을 상징합니다(창 19:24, 마 10:15).
그리고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박해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재앙을 받았던 나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박해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큰 성은 ‘성도들을 박해하는 타락한 세상’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요한 당시 큰 성에 해당되던 로마는 말 할 수 없는 도덕적 타락과 동시에 성도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던 도시였습니다(계 18:24).
로마와 소돔과 애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란 점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세의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만큼 죄악으로 부패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의 함정으로 밀어 넣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영안을 열고 지금의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악합니다(창 8:21).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무신론과 풍요의 과학을 부르짖으며 성도들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대우를 받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세워 놓은 얄팍한 논리에 넘어가서 그들의 어리석은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영적으로 바른 성도라면 분명하게 세상이 썩고 부패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또한 썩고 부패한 그들을 살리는 복음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연민은 가지지만 미련은 품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참 성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탄의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영의 눈으로 세상을 바로 봄으로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소돔과 애굽 같은 곳임을 잊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9절 함께 읽습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 증인과 싸워서 이긴 짐승의 권세가 온 세상에 하늘을 찌를 듯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에서 불이 나와 대적하는 자들을 삼켜버리는 권능을 가진 두 증인을 꺾어버렸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대단한 위세도 ‘사흘 반 동안을 보며’, 곧 아주 짧은 기간 동안밖에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께서 사흘 후에 다시 부활하셨듯이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길가에 방치되어 있던 두 증인도 사흘 반 후에 다시 부활함으로써 짐승의 승리가 거짓된 것임을 알려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말세에 있을 사탄의 승리는 최후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불꽃이 사그라질 때 가장 환한 빛을 내듯이 사탄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일 뿐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대적의 손에 곤란을 겪고 계십니까?
너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17-18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들은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대가를 꼭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잘 이기고 견딘 성도는 영원한 천국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계 21:7).
사탄의 승리는 짧은 꿈과 같이 지나가는 반면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세세 무궁토록 영원할 것입니다.
 
4. 10절 함께 읽습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증인의 죽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세상이 성도들을 향해 어떤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죽음을 기뻐하여 그것을 즐거워하고 더 나아가 혼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서로 예물을 보내 그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교회가 세상을 괴롭게 했기 때문에 그 죽음을 이렇게까지 즐거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성도를 싫어합니다.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복음은 거리끼는 것이고 거치는 돌과 같은 것이기에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요 15:18).
그래서 신실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평안히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에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악한 세상을 평안히 살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성도로서의 사명에 대해 얼마나 신실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 성도의 존재는 세상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성도라는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구별되고 거룩한 삶은,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14-16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과 타협하려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 증거하는 일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을 포기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하기에 세상과 타협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동화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 그들도 우리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해 선택된 하나님의 구원의 동역자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5. 그러하기에 교회는 죽임을 당하지만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나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됩니다.
11절 함께 읽습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리고 이 부활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기 위한 부활입니다.
12절 함께 읽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여러분, 세상의 권세들에 의해 약해지고 억압받는 교회로 인해 가슴이 아프십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해 이웃에게 무시당하는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항상 고통과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수많은 환난과 박해가 교회를 짓밟고 성도를 억압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더러는 매를 맞고, 더러는 고향을 떠나야 했고, 더러는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교회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더욱 많아지고, 2020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3%, 약 25억 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오늘 두 증인처럼 교회가 그 사명을 다 마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교회는 주어진 사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패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사실, 성도들에게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이 세상보다는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든 싫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므로 마냥 세상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13절).
그래서 우리 성도는 바른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똑바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더욱더 천국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말세를 사는 성도가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길, 승리의 길을 걷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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