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오늘로서 요한계시록 30번째 말씀인데, 코로나19로 인해 9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제가 요한계시록을 처음 시작할 때 말씀 제목을 ‘복의 선언’이라고 정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심판의 책으로 이해하는데, 정작 자세히 읽어보면 심판이 아니라 7가지 복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책이 될 것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그 심판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심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에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이 믿는 우리들에게는 복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한계시록에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많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대하기가 두려운 책'인 것도 사실입니다.
앞부분의 설교를 듣지 못하신 분들은 우리 홈페이지에 1장부터 설교문이 올려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그리고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 예언이 계속되어 지는데,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이 끝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 먼저, 4절에서 바다와 땅을 동시에 밟고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말했던 힘쎈 천사가 이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며 말하기를, 7절 함께 읽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은 마지막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잠시 후에 있을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함을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확인해 나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언약하신 것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늦어지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정하신 뜻에 따라 그 목적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확신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마음대로 판단하고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함께 구약성경 하박국 2:3을 읽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리고 신약성경 베드로후서 3:8-10도 읽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이 계시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가장 적당한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할 때에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시간에 이 세상의 종말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특히, 내 때에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방종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허락하신 관용의 시간을 도리어 심판의 기회가 되게 하는 자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2.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6절과 마지막 부분과 7절 마지막 부분에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는데 여러분은 이 선포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이 예언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까?
막힌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과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체되지 않고 오리라는 이 말씀에 두려움과 떨림을 느낍니까?
이 말씀에 대한 반응이 어떠한가에 따라 나의 신앙이 어떠한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선포되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극심한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예수님이 속히 재림하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기도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였고(계 6:10), 그분들의 인사는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분들에게 있어 '지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이 말씀은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는 이 최후심판에 대한 선포는 두려움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세상 소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그들에게 이 힘센 천사의 경고의 소리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천둥소리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의 포도주는 그들의 피처럼 보였고, 불의로 쌓아 놓은 재물은 그들의 족쇄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소리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만일, 두려움을 느끼신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속히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아무 느낌이 없으시다면 미지근해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소식이 기쁨과 위로의 소식으로 느껴지신다면,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리며 조금만 더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 일곱째 나팔 소리가 들려올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선한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3.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방법은 참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능력이 모자라신 것도 아니고 지혜가 부족하신 것도 아닌데 일곱 인을 떼시고, 일곱 나팔을 부시고, 그리고 이제 곧 일곱 대접을 부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고 어렵게 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번 엄하게 경고하시고 심판을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순차적인 절차를 밟으시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인간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는 일곱째 나팔로 찾아올 일곱 대접 재앙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 대접 한 대접 재앙이 더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계 16:9, 11).
재앙의 대상인 그들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우상에게 경배하며, 성도와 선지자들을 핍박한 자들임에도 그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류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기에 우리들은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고, 주일에 주셨던 말씀처럼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꼭 구원 받아야 하는 자가 구원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4. 9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여기서 ‘먹어 버리라’라는 말은 ‘완전히 삼켜버리라’는 강한 의미가 내포된 말입니다.
그리고 10절에 요한은 천사의 지시대로 책을 갖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책을 삼키라는 말은 진짜로 그 책을 막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천사의 경고대로 요한의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썼습니다.
‘책이 입에 달았다’는 말은 계시를 받은 요한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들에게는 큰 기쁨과 승리의 소리이기에 이보다 즐거운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씀합니다(시 19:10).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면서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고백했습니다(겔 3:3).
그러나 요한의 입에서 달았던 책은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한이 받아먹은 말씀이 11장 이후에 전개될 종말의 참혹한 대재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가 온 땅에 가득하고(계 14:20), 세상이 천재지변으로 요동하며(벧후 3:10), 전쟁과 기근, 전염병과 미움이 가득한 내용을 보고 요한의 마음은 근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입에 꿀이 단 것처럼 매우 기쁜 것인 반면에,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참혹한 재앙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이 환난의 시기를 고난과 고통 없이 지나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환난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재앙의 쓴맛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 없이 오직 멸망 받을 자들과 장차 구원의 소망을 품은 우리들이 겪는 고난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달고도 쓰고, 쓰고도 달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떠한 맛을 느낍니까?
5. 11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며 연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되, 이 계시의 말씀을 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지킴으로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계 1:3).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신 계시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에 힘쓰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최후의 종말을 잘 준비함으로 대종말의 때에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오늘로서 요한계시록 30번째 말씀인데, 코로나19로 인해 9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제가 요한계시록을 처음 시작할 때 말씀 제목을 ‘복의 선언’이라고 정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심판의 책으로 이해하는데, 정작 자세히 읽어보면 심판이 아니라 7가지 복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책이 될 것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그 심판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심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에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이 믿는 우리들에게는 복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한계시록에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많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대하기가 두려운 책'인 것도 사실입니다.
앞부분의 설교를 듣지 못하신 분들은 우리 홈페이지에 1장부터 설교문이 올려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그리고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 예언이 계속되어 지는데,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이 끝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 먼저, 4절에서 바다와 땅을 동시에 밟고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말했던 힘쎈 천사가 이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며 말하기를, 7절 함께 읽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은 마지막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잠시 후에 있을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함을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확인해 나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언약하신 것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늦어지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정하신 뜻에 따라 그 목적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확신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마음대로 판단하고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함께 구약성경 하박국 2:3을 읽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리고 신약성경 베드로후서 3:8-10도 읽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이 계시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가장 적당한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할 때에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시간에 이 세상의 종말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특히, 내 때에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방종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허락하신 관용의 시간을 도리어 심판의 기회가 되게 하는 자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2.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6절과 마지막 부분과 7절 마지막 부분에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는데 여러분은 이 선포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이 예언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까?
막힌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과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체되지 않고 오리라는 이 말씀에 두려움과 떨림을 느낍니까?
이 말씀에 대한 반응이 어떠한가에 따라 나의 신앙이 어떠한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선포되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극심한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예수님이 속히 재림하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기도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였고(계 6:10), 그분들의 인사는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분들에게 있어 '지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이 말씀은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는 이 최후심판에 대한 선포는 두려움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세상 소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그들에게 이 힘센 천사의 경고의 소리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천둥소리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의 포도주는 그들의 피처럼 보였고, 불의로 쌓아 놓은 재물은 그들의 족쇄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소리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만일, 두려움을 느끼신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속히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아무 느낌이 없으시다면 미지근해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소식이 기쁨과 위로의 소식으로 느껴지신다면,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리며 조금만 더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 일곱째 나팔 소리가 들려올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선한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3.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방법은 참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능력이 모자라신 것도 아니고 지혜가 부족하신 것도 아닌데 일곱 인을 떼시고, 일곱 나팔을 부시고, 그리고 이제 곧 일곱 대접을 부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고 어렵게 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번 엄하게 경고하시고 심판을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순차적인 절차를 밟으시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인간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는 일곱째 나팔로 찾아올 일곱 대접 재앙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 대접 한 대접 재앙이 더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계 16:9, 11).
재앙의 대상인 그들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우상에게 경배하며, 성도와 선지자들을 핍박한 자들임에도 그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류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기에 우리들은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고, 주일에 주셨던 말씀처럼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꼭 구원 받아야 하는 자가 구원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4. 9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여기서 ‘먹어 버리라’라는 말은 ‘완전히 삼켜버리라’는 강한 의미가 내포된 말입니다.
그리고 10절에 요한은 천사의 지시대로 책을 갖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책을 삼키라는 말은 진짜로 그 책을 막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천사의 경고대로 요한의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썼습니다.
‘책이 입에 달았다’는 말은 계시를 받은 요한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들에게는 큰 기쁨과 승리의 소리이기에 이보다 즐거운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씀합니다(시 19:10).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면서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고백했습니다(겔 3:3).
그러나 요한의 입에서 달았던 책은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한이 받아먹은 말씀이 11장 이후에 전개될 종말의 참혹한 대재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가 온 땅에 가득하고(계 14:20), 세상이 천재지변으로 요동하며(벧후 3:10), 전쟁과 기근, 전염병과 미움이 가득한 내용을 보고 요한의 마음은 근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입에 꿀이 단 것처럼 매우 기쁜 것인 반면에,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참혹한 재앙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이 환난의 시기를 고난과 고통 없이 지나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환난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재앙의 쓴맛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 없이 오직 멸망 받을 자들과 장차 구원의 소망을 품은 우리들이 겪는 고난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달고도 쓰고, 쓰고도 달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떠한 맛을 느낍니까?
5. 11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며 연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되, 이 계시의 말씀을 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지킴으로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계 1:3).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신 계시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에 힘쓰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최후의 종말을 잘 준비함으로 대종말의 때에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