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나팔재앙이 끝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먼저 1절에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힘센 천사’는 5:2에도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앞 장의 ‘악한 네 천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입니다.
이 힘센 천사는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며, ‘그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또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구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표현으로 자주 언급됩니다(출 16:10, 신 1:33, 겔 1:4, 눅 21:27)
우리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실 때 구름이 가리웠으며(행1:9), 재림하실 때에도 구름타고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무지개’는 노아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해 같음’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의미합니다(마 17:2, 계 1:16).
‘발이 불기둥 같음’은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의미합니다(계 1:15).
그러므로 힘센 천사에 대한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합당한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기실 때 사명에 합당한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사명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잠시 강림하는 천사를 위해 차고 넘치도록 권능을 부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3:9에서 성도들을 동역자라고 부르시고 함께 일하시겠다고 까지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말세의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명을 감당할 때 고통과 핍박이 있다고 해서 좌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분명하게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고난과 시험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영광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서 도망가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직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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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2절에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라고 말씀하는데 9절에 언급된 것처럼 이 ‘작은 두루마리’는 요한이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두루마리’는 천사의 손에 ‘펴 진 상태’로 들려져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두루마리의 내용이 ‘이미 계시되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11장부터 22장까지의 내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힘센 천사가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은 두루마리를 펴서 손에 들고 나타나는 장면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구름을 입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그 발이 불기둥 같은 천사가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은 두루마리를 펴들고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두루마리가 아니라 그냥 말로 선포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힘센 천사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강림하게 하신 것은, 힘센 천사가 선포하는 심판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명확한 근거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공의를 따라, 또 미리 충분히 예고하심을 통해 진행됩니다(호 12:10, 마 24:25).
분명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므로 초법적이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실 때 충분한 경고와 함께 분명한 근거와 기준을 두고 행하십니다.
인간의 악함이 하늘에 닿고, 연약한자들의 울부짖음이 땅에 가득하여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하시고, 또 명확한 기준과 근거에 의해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시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오늘 요한계시록에 계시되어 있는 것처럼 충분히 예고하시고, 분명한 기준에 의하여 공의롭게 시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놓인 행위의 책에 기록 된 내용과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에게 영생과 영벌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기록되고 선포된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늘 힘써야 할 것입니다.
.
이어서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천사가 딛고 선 ‘바다와 땅’은 ‘온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처럼 온 세계를 딛고 있는 것은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관련된 것임을 뜻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센 천사가 선포하는 최후 심판 계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나 어느 한 나라의 멸망처럼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전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위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로부터, 아래로는 땅 깊은 곳에까지 모든 피조물에까지 미칩니다.
이 세상의 어느 곳, 어느 지위에 있어도 모든 피조물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준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하며 이 세상을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잘 알지 못 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 심판에서 자신은 예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기 생각에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나 부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한 행위가, 아니면 권세나 부가 자신들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복음을 전해도 잘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엄정한 사실이듯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 역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엄정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6:15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유인을 구분하지 않고 임합니다.
노아 대홍수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하나님의 심판을 예비한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믿지 않는다고 심판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고 먼저는 자신이 그 날을 대비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경고하여 그들도 우리와 함께 그 날을 대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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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에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힘센 천사가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친 것은 아마도 요한을 비롯한 세계 만민들에게 자신이 들고 있는 작은 책에 대해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힘센 천사가 외칠 때, 그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뢰’는 일반적인 천둥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계 4:5; 8:5).
그리고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따라서 ‘일곱 우뢰’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곧 천사의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일곱 우레 소리를 들은 요한은 그것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은 일곱 우레가 단순한 천둥소리가 아니라 요한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곱 우레 소리를 기록하려는 요한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기서 ‘인봉하다’라는 말은 원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두루마리를 말아 초를 녹여 붓고 그 위에 도장을 찍어 관계자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안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만든 철저한 보안 조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고 명하신 것은, 일곱 우레 소리로 들려진 계시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분명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요한이 들은 사실을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요한의 기록을 막으신 것일까요?
이는 일곱 우레를 통해 선포된 말씀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환상 중에 낙원에 이끌려가서 들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과 같은 종류의 말이기에 그 기록을 막으신 것입니다.(고후 12:4)
하나님의 계시가 이처럼 비밀로 남겨지게 된 것은 그 계시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신비하고 초월적인 내용으로서, 함부로 해석하다가는 곡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라는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경륜 가운데는 때가 차기 전까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야 할 심오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 전부를 보이시지 않고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신앙성장과 보존을 위해 때로 감추시기도 하시고 드러내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는데 충분한 정보를 이미 성경을 통해 제공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에게 충분한 계시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에 대한 것이 전부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인간을 잘 알기에 인간이 인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까지 계시하여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식과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자부심으로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그릇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유로 인간이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또 인간 구원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여 두시고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알려주셔서 성경에 기록된 부분 외의 것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알려 주시지 않은 부분을 굳이 알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행동으로 이단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 보이신 부분을 이해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짧은 인생으로는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 하신 곳까지만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나팔재앙이 끝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먼저 1절에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힘센 천사’는 5:2에도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앞 장의 ‘악한 네 천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입니다.
이 힘센 천사는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며, ‘그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또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구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표현으로 자주 언급됩니다(출 16:10, 신 1:33, 겔 1:4, 눅 21:27)
우리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실 때 구름이 가리웠으며(행1:9), 재림하실 때에도 구름타고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무지개’는 노아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해 같음’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의미합니다(마 17:2, 계 1:16).
‘발이 불기둥 같음’은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의미합니다(계 1:15).
그러므로 힘센 천사에 대한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합당한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기실 때 사명에 합당한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사명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잠시 강림하는 천사를 위해 차고 넘치도록 권능을 부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3:9에서 성도들을 동역자라고 부르시고 함께 일하시겠다고 까지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말세의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명을 감당할 때 고통과 핍박이 있다고 해서 좌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분명하게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고난과 시험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영광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서 도망가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직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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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2절에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라고 말씀하는데 9절에 언급된 것처럼 이 ‘작은 두루마리’는 요한이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두루마리’는 천사의 손에 ‘펴 진 상태’로 들려져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두루마리의 내용이 ‘이미 계시되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11장부터 22장까지의 내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힘센 천사가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은 두루마리를 펴서 손에 들고 나타나는 장면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구름을 입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그 발이 불기둥 같은 천사가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은 두루마리를 펴들고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두루마리가 아니라 그냥 말로 선포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힘센 천사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강림하게 하신 것은, 힘센 천사가 선포하는 심판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명확한 근거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공의를 따라, 또 미리 충분히 예고하심을 통해 진행됩니다(호 12:10, 마 24:25).
분명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므로 초법적이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실 때 충분한 경고와 함께 분명한 근거와 기준을 두고 행하십니다.
인간의 악함이 하늘에 닿고, 연약한자들의 울부짖음이 땅에 가득하여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하시고, 또 명확한 기준과 근거에 의해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시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오늘 요한계시록에 계시되어 있는 것처럼 충분히 예고하시고, 분명한 기준에 의하여 공의롭게 시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놓인 행위의 책에 기록 된 내용과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에게 영생과 영벌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기록되고 선포된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늘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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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천사가 딛고 선 ‘바다와 땅’은 ‘온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처럼 온 세계를 딛고 있는 것은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관련된 것임을 뜻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센 천사가 선포하는 최후 심판 계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나 어느 한 나라의 멸망처럼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전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위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로부터, 아래로는 땅 깊은 곳에까지 모든 피조물에까지 미칩니다.
이 세상의 어느 곳, 어느 지위에 있어도 모든 피조물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준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하며 이 세상을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잘 알지 못 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 심판에서 자신은 예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기 생각에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나 부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한 행위가, 아니면 권세나 부가 자신들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복음을 전해도 잘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엄정한 사실이듯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 역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엄정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6:15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유인을 구분하지 않고 임합니다.
노아 대홍수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하나님의 심판을 예비한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믿지 않는다고 심판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고 먼저는 자신이 그 날을 대비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경고하여 그들도 우리와 함께 그 날을 대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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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에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힘센 천사가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친 것은 아마도 요한을 비롯한 세계 만민들에게 자신이 들고 있는 작은 책에 대해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힘센 천사가 외칠 때, 그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뢰’는 일반적인 천둥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계 4:5; 8:5).
그리고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따라서 ‘일곱 우뢰’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곧 천사의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일곱 우레 소리를 들은 요한은 그것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은 일곱 우레가 단순한 천둥소리가 아니라 요한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곱 우레 소리를 기록하려는 요한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기서 ‘인봉하다’라는 말은 원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두루마리를 말아 초를 녹여 붓고 그 위에 도장을 찍어 관계자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안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만든 철저한 보안 조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고 명하신 것은, 일곱 우레 소리로 들려진 계시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분명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요한이 들은 사실을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요한의 기록을 막으신 것일까요?
이는 일곱 우레를 통해 선포된 말씀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환상 중에 낙원에 이끌려가서 들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과 같은 종류의 말이기에 그 기록을 막으신 것입니다.(고후 12:4)
하나님의 계시가 이처럼 비밀로 남겨지게 된 것은 그 계시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신비하고 초월적인 내용으로서, 함부로 해석하다가는 곡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라는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경륜 가운데는 때가 차기 전까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야 할 심오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 전부를 보이시지 않고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신앙성장과 보존을 위해 때로 감추시기도 하시고 드러내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는데 충분한 정보를 이미 성경을 통해 제공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에게 충분한 계시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에 대한 것이 전부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인간을 잘 알기에 인간이 인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까지 계시하여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식과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자부심으로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그릇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유로 인간이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또 인간 구원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여 두시고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알려주셔서 성경에 기록된 부분 외의 것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알려 주시지 않은 부분을 굳이 알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행동으로 이단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 보이신 부분을 이해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짧은 인생으로는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 하신 곳까지만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