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28. 일곱 나팔 4 (계 9:13-21)

우인택 목사
2020-02-14
조회수 1609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17.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8.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19.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지난주에 다섯 번째 나팔이 불자 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지고 그 별이 무저갱을 열자 그곳에서 황충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했는데 그들의 왕의 이름은 ‘아바돈’이요, ‘아볼루온’이었는데 그의 실체는 ‘사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13절에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의 ‘하나님 앞에 있는 금 제단’은 8:3에도 등장하는데 그곳에는 이 금제단에 대하여  성도의 기도를 모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금 제단의 네 뿔에서 난 음성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4-15절에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의 ‘큰 강 유브라데’는 이스라엘과 그 주요 적들의 경계를 의미하는데, 적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에는 반드시 이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말은 이스라엘에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뜻이고 그들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 삼분의 일이 죽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결박당한 네 천사가 놓였는데, 이들에 의해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표현으로 보아 결박에서 풀려난 이 네 천사는 분명 선한 천사들이 아니라 '사탄에 속한 악한 천사'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요인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씀하는데, 여러분, 성도들 중에서 과연 악한 천사를 풀어놓아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할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 우리 성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악인들이 회개하고 이 세상에 공의와 평화가 선포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기에 이러한 재앙과 혼란 앞에서 무척 당황하며 설마 이것이 자신이 드린 기도의 응답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세상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에, 왜 이렇게 응답하신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 모든 일은 공의와 평화를 간구하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임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높고 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사 55:8,9)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현실이 기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당황하고 불평하거나 잠시 응답이 늦어진다고 해서 섣불리 하나님의 거절이라고 결론내리며 낙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되, 하늘 문을 열고 닫으시는 것은 물론(약 5:17,18) 심지어 사탄까지 움직이시며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흔들림 없이 기도를 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살전 5:17).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다만 우리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은 모두가 다 결국에는 가장 선한 결과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행복하겠고,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어떤 형편에 있던지 늘 불안하고 자신의 삶에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복하게 사시든지 아니면 하나님보다 환경과 처지를 믿고 의지함으로 늘 불안하고 불만에 싸여 사시든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좋은 편을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16절에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결박에서 풀려난 네 천사가 부리는 마병대의 수가 이만만이라는 것은 2억 명을 뜻합니다.
옛날 가장 큰 군사의 숫자를 백만 대군이라고 했으니까 2억 명이면 ‘백만 대군이 이백 개’ 모인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도요한의 표현을 다른 말로 하면 이 군대를 이길 자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들의 마병대의 숫자가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심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7-19절에 마병대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여기서 불과 연기와 유황은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장면을 연상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이 여섯번째 나팔재앙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매우 처절하고도 비극적인 심판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인류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이러한 잔인한 방법으로 심판하시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너무하신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없이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판을 하시기 전에 먼저 일곱인 재앙을 통해 충분히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섯 나팔 재앙이 있기 전에 충분히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고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과 예수님 이시라는 것도 밝히셨으며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자 그 규모를 확대하시되 그것도 삼분의 일로 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심판하시되 결정적인 순간 전까지 끊임없이 이 땅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계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모든 심판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계속해서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하나님은 원수된 우리를 위해 기꺼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으실 정도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딤전 2:4).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재앙과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잔인하심을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일지라도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끝없이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죄인들이 미워서 고통을 주려고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심판을 통해 죄인들이 악에서 돌아서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악한 자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분노와 적개심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을 위해 밤새 부르짖었던 사무엘이나(삼상 15:11),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했던 모세(출 32:11-13), 그리고 예수님을 거절하는 동족을 위해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했던 사도바울(롬 9:1-3)과 같이 끝없는 사랑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20-21절에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여섯 나팔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 모든 재앙을 겪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이전의 죄악을 계속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 가운데 가장 먼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 후에 살인이나 복술, 음행이나 도둑질과 같은 죄악을 나열함으로써 그 무엇보다 우상숭배의 죄악이 더욱 심각하고 무서운 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죄보다 우상숭배가 더 심각하고 무서운 죄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십계명의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을 어기는 죄이자, 모든 죄의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들을 섬긴다는 것 자체가 주인을 배신하고 피조물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사탄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가장 심각하고 무거운 죄인 것 만큼이나 또, 가장 어리석은 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섬기는 우상은 그것을 아무리 공을 들여 정교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20절의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사 45:20).
아니 그것들은 숭배하는 자들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이 돌보고 수리해 주어야 하는 인간의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사 46: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사람들은 가장 지혜로운 척하면서도 이러한 우상을 섬기고, 그 마음속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겉으로 세상의 법과 질서에 저촉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므로 자신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는 것이며,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기가 만든 우상을 마치 자신을 구원할 존재인 양 여기며 숭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무거우며 가증한 죄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겔 8장).
그리하여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따름으로써 진정한 구원을 얻고, 도덕적인 면에서도 온전한 의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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