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을 열었고, 그곳에서 황충들이 나와서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않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황충과 그들이 한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5절에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탄의 세력인 황충이 가진 능력의 한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본문에서 사탄의 세력들이 지닌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권세의 한계 또한 불신자들에게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거기다 5절에 그들은 불신자들에 대해서마저도 고통스럽게 할 수는 있지만 죽일 능력은 없습니다.
물론 이후 여섯째 나팔을 보면 결박에서 풀려난 네 천사로 상징되는 그들에게 죽이는 권세까지 부여되게 되지만, 이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이며 그 한계 또한 인류 삼분의 일로 제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에서 사탄의 세력이 지닌 능력들은 그것이 제아무리 크게 보여도 실상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현실에 적용한다면 사탄의 세력들이 불신자들에게 주어 사용하는 돈과 권력 등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능력을 자랑하고, 황금만능이라 하여 돈만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고 자랑하여도 그 능력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능력들은 다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성령의 권능에는 생명력이 있기에 그 능력이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서 받은 능력, 곧 성령의 은사를 금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고(갈 5:22,23), 예수님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차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4:12).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고 황금만능을 부르짖어도 그것에는 생명력이 없어 때가 되면 반드시 없어질 것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무한한 능력은 하늘에서 오는 성령의 능력,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임을 알아 오직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십자가와 복음만을 자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황충들이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자들을 괴롭게 할 권세만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괴롭게 하다’라는 말은 진실을 알기 위해 고통을 가하는 '고문'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에는 매우 극심한 고통을 나타날 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계 11:10, 14:10, 18:7, 20:10).
그러므로 인 맞지 않은 자들이 황충들에게 당하는 괴롭힘은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은 매우 강한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이러한 의미를 더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그날에는 괴롭힘을 받는 자들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고통 받는 이들은 돈과 권력을 사랑하여 그것을 위해 자신의 양심과 정직을 팔고, 복음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4:8).
그들은 왕처럼 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을 따라갔지만 실상은 왕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포로가 되어 그 결말에는 그 세력에 의해 큰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들을 섬기는 무당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 무당들의 마지막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섬기던 그 신에 의해 비참하게 끝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마귀를 섬기는 자들의 최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화려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탄을 따르는 자는 그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자유롭게 보여도 실상은 사탄의 종과 포로들에 불과하며 그들의 결국은 멸망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 성도들은 잠시 이 땅에서 종과 같은 삶을 살아갈 지라도 실상은 참 자유인이며 장차 하나님나라의 왕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지혜로운 자들이 되셔서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복음을 따르고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써 비록 이 땅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함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사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7-10절에 황충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황충은 이미 언급한 바대로 자연 그대로의 메뚜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니기에 사도요한은 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무려 아홉 번이나 ‘같다’ 혹은 ‘비슷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 전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7-10절 함께읽겠습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 대체적으로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들은 군마, 사자 이빨, 철 갑옷, 전갈 독침 등의 표현을 통해 그 성격이 매우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치명적인 독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 같은 관, 사람 얼굴, 여자의 머리털 같은 어떤 지성이나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저갱에서 올라 온 황충은 매우 무섭게 생겼을 뿐 아니라 위장술 또한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황충들로 상징되는 이러한 사탄의 세력이 인간에게 접근할 때는 전투 마, 사자 이빨, 철 갑옷, 전갈 독침 등의 무서운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금 같은 관, 사람 얼굴, 여자의 머리털 같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말 또한 매우 달콤하고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기꾼, 또는 이단들처럼 사탄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은 항상 처음에는 매우 달콤하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고후 11:14,15).
그러하기에 지각과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과 말에 쉽게 현혹되어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는 그들의 이빨과 발톱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함정과 궤계에 속지 않기 위해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볼 줄 아는 영적 분별력과 어떠한 사탄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믿음으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만이 사탄의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종말의 때에 우리 영혼은 물론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사탄의 유혹과 함정에 넘어가는 세상의 많은 영혼들을 구해내는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 그들의 우두머리의 정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여기서 ‘아바돈’이란 ‘파괴, 멸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고, ‘아볼루온’이란 ‘파괴자, 살인자’를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이란 ‘무저갱의 사자, 사탄’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사탄은 ‘대적자, 참소자’라는 이름답게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을 참소하여 대적하는 동시에 직접적인 공격을 통해 성도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탄의 부하들을 가리켜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 10:8).
그렇다면 여러분, 드디어 사탄이 전면에 등장한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전체적인 말씀의 맥락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앞서 사도요한은 이전의 일곱 인과 네 나팔 재앙을 통해 장차 있을 엄청난 환경파괴를 예언했습니다(8:7-12).
또한 다섯째 나팔을 불기 전에는 독수리 환상을 통해 이와 비교되지 않을 더 큰 재앙이 있을 것을 예고했습니다(8:13).
그리고 바로 이어 다섯째 나팔을 통해 그 더 큰 재앙이 오늘 본문의 ‘사탄의 황충 재앙’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땅이나 바다, 강 등의 환경파괴가 아무리 두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사탄과 그 휘하의 세력에 의한 인간 영혼의 파괴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마 16:26) 그 생명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환경이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파괴되어 있다면 실상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있더라도 우리의 영혼이 온전하다면 소망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구약 할 것 없이 무엇보다도 부패한 영혼에 대하여 경계하고 또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신 29:18; 히 12:15).
그런데도 오늘 세상 사람들은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영혼이 파괴되는 것에는 무감각합니다.
그래서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그토록 열심히 법을 만들고 육신의 건강을 위해 환경오염을 막으려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영혼을 구원하고 깨끗하게 할 복음의 진리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영혼의 신령한 복보다는 육신의 것을 더 큰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눈앞의 것만 보는 자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이며 이는 우리의 영원한 삶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 한 것은 바로 우리 마음과 영혼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고 마음의 쓴 뿌리와 독초를 제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과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 환경까지도 정결하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을 열었고, 그곳에서 황충들이 나와서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않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황충과 그들이 한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5절에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탄의 세력인 황충이 가진 능력의 한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본문에서 사탄의 세력들이 지닌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권세의 한계 또한 불신자들에게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거기다 5절에 그들은 불신자들에 대해서마저도 고통스럽게 할 수는 있지만 죽일 능력은 없습니다.
물론 이후 여섯째 나팔을 보면 결박에서 풀려난 네 천사로 상징되는 그들에게 죽이는 권세까지 부여되게 되지만, 이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것이며 그 한계 또한 인류 삼분의 일로 제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에서 사탄의 세력이 지닌 능력들은 그것이 제아무리 크게 보여도 실상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현실에 적용한다면 사탄의 세력들이 불신자들에게 주어 사용하는 돈과 권력 등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능력을 자랑하고, 황금만능이라 하여 돈만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고 자랑하여도 그 능력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능력들은 다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성령의 권능에는 생명력이 있기에 그 능력이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서 받은 능력, 곧 성령의 은사를 금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고(갈 5:22,23), 예수님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차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4:12).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고 황금만능을 부르짖어도 그것에는 생명력이 없어 때가 되면 반드시 없어질 것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무한한 능력은 하늘에서 오는 성령의 능력,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임을 알아 오직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십자가와 복음만을 자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황충들이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자들을 괴롭게 할 권세만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괴롭게 하다’라는 말은 진실을 알기 위해 고통을 가하는 '고문'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에는 매우 극심한 고통을 나타날 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계 11:10, 14:10, 18:7, 20:10).
그러므로 인 맞지 않은 자들이 황충들에게 당하는 괴롭힘은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은 매우 강한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이러한 의미를 더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그날에는 괴롭힘을 받는 자들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고통 받는 이들은 돈과 권력을 사랑하여 그것을 위해 자신의 양심과 정직을 팔고, 복음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4:8).
그들은 왕처럼 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을 따라갔지만 실상은 왕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포로가 되어 그 결말에는 그 세력에 의해 큰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들을 섬기는 무당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 무당들의 마지막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섬기던 그 신에 의해 비참하게 끝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마귀를 섬기는 자들의 최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화려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탄을 따르는 자는 그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자유롭게 보여도 실상은 사탄의 종과 포로들에 불과하며 그들의 결국은 멸망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 성도들은 잠시 이 땅에서 종과 같은 삶을 살아갈 지라도 실상은 참 자유인이며 장차 하나님나라의 왕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지혜로운 자들이 되셔서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복음을 따르고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써 비록 이 땅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함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사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7-10절에 황충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황충은 이미 언급한 바대로 자연 그대로의 메뚜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니기에 사도요한은 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무려 아홉 번이나 ‘같다’ 혹은 ‘비슷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 전체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7-10절 함께읽겠습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 대체적으로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들은 군마, 사자 이빨, 철 갑옷, 전갈 독침 등의 표현을 통해 그 성격이 매우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치명적인 독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 같은 관, 사람 얼굴, 여자의 머리털 같은 어떤 지성이나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저갱에서 올라 온 황충은 매우 무섭게 생겼을 뿐 아니라 위장술 또한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황충들로 상징되는 이러한 사탄의 세력이 인간에게 접근할 때는 전투 마, 사자 이빨, 철 갑옷, 전갈 독침 등의 무서운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금 같은 관, 사람 얼굴, 여자의 머리털 같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말 또한 매우 달콤하고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기꾼, 또는 이단들처럼 사탄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은 항상 처음에는 매우 달콤하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고후 11:14,15).
그러하기에 지각과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과 말에 쉽게 현혹되어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는 그들의 이빨과 발톱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함정과 궤계에 속지 않기 위해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볼 줄 아는 영적 분별력과 어떠한 사탄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믿음으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만이 사탄의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종말의 때에 우리 영혼은 물론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사탄의 유혹과 함정에 넘어가는 세상의 많은 영혼들을 구해내는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 그들의 우두머리의 정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여기서 ‘아바돈’이란 ‘파괴, 멸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고, ‘아볼루온’이란 ‘파괴자, 살인자’를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이란 ‘무저갱의 사자, 사탄’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사탄은 ‘대적자, 참소자’라는 이름답게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을 참소하여 대적하는 동시에 직접적인 공격을 통해 성도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탄의 부하들을 가리켜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 10:8).
그렇다면 여러분, 드디어 사탄이 전면에 등장한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전체적인 말씀의 맥락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앞서 사도요한은 이전의 일곱 인과 네 나팔 재앙을 통해 장차 있을 엄청난 환경파괴를 예언했습니다(8:7-12).
또한 다섯째 나팔을 불기 전에는 독수리 환상을 통해 이와 비교되지 않을 더 큰 재앙이 있을 것을 예고했습니다(8:13).
그리고 바로 이어 다섯째 나팔을 통해 그 더 큰 재앙이 오늘 본문의 ‘사탄의 황충 재앙’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땅이나 바다, 강 등의 환경파괴가 아무리 두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사탄과 그 휘하의 세력에 의한 인간 영혼의 파괴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마 16:26) 그 생명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환경이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파괴되어 있다면 실상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있더라도 우리의 영혼이 온전하다면 소망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구약 할 것 없이 무엇보다도 부패한 영혼에 대하여 경계하고 또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신 29:18; 히 12:15).
그런데도 오늘 세상 사람들은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영혼이 파괴되는 것에는 무감각합니다.
그래서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그토록 열심히 법을 만들고 육신의 건강을 위해 환경오염을 막으려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영혼을 구원하고 깨끗하게 할 복음의 진리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영혼의 신령한 복보다는 육신의 것을 더 큰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눈앞의 것만 보는 자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이며 이는 우리의 영원한 삶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 한 것은 바로 우리 마음과 영혼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고 마음의 쓴 뿌리와 독초를 제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과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 환경까지도 정결하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