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26. 일곱나팔 2 (계 9:1-4)

우인택 목사
2020-02-14
조회수 1764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1절에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앞부분인 6:13과 8:10에서도 요한은 하늘로부터 별이 떨어진 환상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별은 그 별들과는 다릅니다.
이 별은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것’으로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 있는 존재를 별로 표현하는 것은 유대 관습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떨어진 별’이 누구를 뜻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해석의 논쟁이 있는데, 크게 사탄이라는 주장과 천사라는 정반대되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사탄이라는 해석은 ‘떨어진 별’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이사야 14: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사탄)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라는 말씀이나,
누가복음 10:18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는 말씀을 염두에 둔 해석입니다.
천사라는 해석은 일반적으로 유대 묵시 문헌에서 떨어진다는 말과 내려왔다는 말이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20:1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는 ‘하나님의 천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계시록처럼 상징으로 가득한 묵시의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 어느 한 가지 주장만을 고집하는 독단적인 자세보다는 보다는 유연하고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그러함에도 한 가지 견해를 선택한다면 이어지는 내용이 사탄이라는 주장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목적이 무엇이냐를 염두에 둔다면 이 별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 보다는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가 이미 몇 번이나 강조했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은 각각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점점 가중되는 재앙이 연속되는 순서로 전개되다가 일곱째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중간 계시가 있고, 마지막 일곱째에서는 연이어 다음의 재앙이 시작되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일곱 인의 재앙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섯째 인을 떼셨을 때 그 배경은 하늘 제단과 그 아래 있는 순교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6:9-11).
그런데 일곱 나팔 재앙에서 다섯째 나팔을 불자 그 배경이 하늘에서 땅으로, 무저갱의 환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곱 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들은 서로 구조는 같되 그 배경과 무대, 내용은 하늘과 땅, 이렇게 서로 정반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무엇 때문에 하늘과 땅을 교차시키며 마지막 심판의 때를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요한은 우리 성도들이 하늘의 모습과 지옥의 모습을 동시에 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늘의 모습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무저갱과 지옥의 모습을 통해 믿음을 다시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지옥과 사탄의 세력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지옥이 없다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 구태여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그 끔찍한 십자가를 지셔야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는 동시에, 그 반대편에는 분명 사탄과 지옥의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며, 매일 매일, 주어진 날 동안에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2절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라고 말씀합니다.
보통 ‘무저갱’은 ‘끝이 없는 깊은 곳, 죽은 자들이 거하는 음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롬 10:7), 요한계시록에서는 ‘사탄이나 그 휘하의 세력들이 갇힌 곳’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됩니다(계 11:7, 17:8, 20:1,3).
여기서의 ‘무저갱’이란 말 그대로 바닥이 없는 구덩이로서 ‘사탄과 그 세력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문을 열자 큰 연기가 나와 해와 공기가 어두워졌다는 것은 마치 화산이 폭발할 때 화산재와 연기가 나와 온 천지가 어둡게 되는 것처럼 곧이어 전개될 상황이 매우 불길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3절에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황충’이란 메뚜기를 의미하는데, 그러나 말 그대로 ‘메뚜기 떼’를 의미하는 것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메뚜기 떼들은 곡식이나 풀, 나무들을 먹어치우지만(욜 1:4, 암 7:1),  여기서의 황충은 사람을 해치는 존재이며, 또한 메뚜기 떼들은 왕이 없지만(잠 30:27), 11절에 이들에게는 분명 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임금이 파괴자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황충은 분명 사탄의 세력, 곧 악령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황충들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란 그것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임을 뜻합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받았다’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앞에서도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사탄의 세력들이 지닌 권세와 능력이 사람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6:4-8, 9:4-5).
사탄의 세력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들의 능력으로 활동하는 것 같으나 궁극적으로는 성도들을 구원하고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그 어느 책보다 더욱 명확하게 사탄의 정체를 밝혀줌으로써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이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악한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게 보이고 그 목표와 계획이 위대해 보인다 할지라도 이를 부러워하거나 따르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잠시 하나님의 뜻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다 결국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사탄의 세력이 아니라 오직 영원히 살아 계셔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따름으로써 잠시 땅에서는 환난을 받으나, 하늘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한마디로 7:1-3의 하나님의 종들이 아닌 사람들,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곧, 사탄의 세력이 이 땅에서 아무리 날뛴다 할지라도 진정한 성도들은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성도들이라고 하여 그 어느 재앙이나 고난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면 육체적으로는 성도이기 때문에 더 큰 재앙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요 15:18,19).
왜냐하면 사탄과 그의 세력들은 자기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기승을 부리며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도들의 보호와 안전을 성경이 확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탄에게는 성도들을 해할 권세가 없으며,
삶과 죽음의 모든 권세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마 10:28).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을 지켜 보호하시며(슥 2:5),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항상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시 121장).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1장에서 마지막 종말의 징조와 재앙들을 말씀하시며 동시에 성도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의 인침과 그로 인한 구원은 육체적 구원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영혼의 구원과 관계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록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성도이기에 세상 사람들에 비해 더 큰 고난을 당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육체적인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 당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당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탄의 세력은 비록 우리의 육체는 해할 수 있어도 우리의 영혼은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치심으로 우리에게 확정된 구원은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으로 이 땅에는 지금보다 더한 재앙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서 우리 성도들도 더 큰 고난과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 소유된 자들로서 이마에 거룩한 성령의 인이 있음을 확신할진대 이러한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확정되어 있음을 굳게 믿으며 항상 진리 안에 거하고 더 담대한 믿음으로 받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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