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요한계시록의 핵심내용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묵시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어느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한 번의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대 환난’과 그 이후의 ‘흰 보좌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로 이어지는 연속적 사건입니다.
이중에서 예수님 재림 이전의 대 환난은 4-18장 사이에, 재림 이후의 사건은 19-22장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은 아직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대 환란’ 중에 있을 재앙에 대한 묵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요한계시록 7장은 여섯 번째 재앙이 일어난 후, 일곱 번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있을 것에 대한 말씀으로 6:17의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기록한 일종의 삽입구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인 ‘대 환난’에서 “누가 능히 서리요” 이 말씀은 곧, 그 환난을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느냐? 누가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말씀인데 그들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7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이러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1-8까지 땅의 관점에서, 하나는 9-17절까지 하늘의 관점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이단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그 유명한 ‘십사만 사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먼저 1절에 여섯째 인 재앙의 환상 후에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여기서 ‘땅의 네 모퉁이’란 ‘온 땅’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은 누가 읽어도 바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므로 땅의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란 온 땅에 임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렘 49:36-38).
그러므로 땅의 네 모퉁이에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잠시 멈추도록 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잠시 심판을 멈추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2-3절에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미리 인을 쳐서 구별하여 보호하기 위하여 잠시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 땅을 심판하시기 전에 우리 성도들의 이마에 인을 치심으로써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사전조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 12장에 죽음의 천사를 통해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재앙을 면할 수 있게 하신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항상 성도들을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사랑을 다 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성경 여러 곳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실례로 하나님께서는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미리 방주를 준비하게 하심으로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창 6장).
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의인 롯을 건져주셨습니다(창 19장).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장차 있을 불심판(벧후 3:7-10)에서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리 인치는 조치를 취하신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자는 영웅호걸도 아니고 백만장자나 인기 스타도 아닌 바로 우리성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성도들이야말로 역사의 중심임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땅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성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성도들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큼은 우리 성도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항상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진정 불쌍한 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세상 사람들임을 기억하며 그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한 마음으로 입을 열어 그들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참 성도됨’ 입니다.
2절에 한 천사가 성도들의 이마에 표를 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해 돋는 데’란 동쪽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많은 이단들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장차 메시야는 동방의 나라인 한국에서 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유독 우리나라에 재림예수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해 둬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보호를 위한 모든 은혜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만 옴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3절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들이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볼 때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종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인’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인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들과 ‘사탄의 인’을 맞은 자들 사이에는 마지막까지 영적 전쟁이 있을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본다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같은 부르심을 받은 종들이요, 에베소서 6장에서도 말씀하는 것과 같이 사탄과 싸우기 위해 같은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서로를 구분하며 누가 크냐는 등의 문제로 다투는 자들이 아니라 오직 같은 부르심을 받은 형제자매들입니다.
서로 합력하여 악한 세력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며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오직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 줄 사람은 하나님의 군사로 같은 부르심을 받은 믿음의 형제자매들밖에 없음을 기억하면서 더욱 큰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사도요한은 천사의 인을 맞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모두 십사만 사천이라 하였고 그 뒤에 각 지파의 이름과 인 맞은 자의 수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실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의 숫자라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이미 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여서 원래의 지파 개념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베드로전서 등의 신약성경에는 이 열두지파에 대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있으며(롬 2:29, 갈 3:7,29, 벧전 2:9), 심지어 야고보서에는 우리성도들을 직접 열두 지파라고 부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약 1:1).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과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숫자인 십사만 사천의 의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로 상징되는 수의 곱에 완전수 1000을 곱한 수로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성도들이 신약의 성도들과 함께 온전한 구원을 기다린다는 히브리서 11장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 의미가 더욱 확실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 맞은 십사만 사천이란 9절에 언급된 온 땅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각 지파의 수인데 사실 구약 성경을 보면 각 지파의 인구는 항상 변동하였고, 그 수가 모든 지파마다 달랐습니다(민 1, 26장).
그러므로 5절 이하에 각 지 파의 수가 모두 똑같이 일만 이천이라는 사실은 그 숫자가 실제 지파의 수에 기초하여 배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온 세상의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있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완전 숫자인 열두 지파와 그의 배수로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시는 사랑에는 어느 성도 할 것 없이 모두 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신분이나 계층, 인종,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십니다.
심지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순교자의 수가 차기 까지 참고 인내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계 6:11)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 기준으로 누구는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편협하고 유치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교만해지거나 그렇지 못하다고 낙심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각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며 몸에서는 약한 지체가 더 큰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처럼 인간이 보기에 연약한 성도가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고전 12:12-27).
우리는 다만 어느 곳이든, 어떤 사람이 있든 그곳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롬 11:5)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5-8절까지를 보면 구원받은 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나오는데 단 지파가 빠져 있고 대신 요셉과 그 아들인 므낫세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모세는 마지막 유언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는 자는 결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신 29:18-21).
이는 요한계시록에도 반복되어 있는데(21:8; 22:15) 단 지파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기업을 차지하는 데에 실패 했을 뿐 아니라(삿 1:34) 북쪽 라이스로 가서 우상숭배에 빠졌고(삿 18:14-31) 이는 이후 북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왕상 12:28-30).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천국을 향한 길에 올랐다고 해서 그 자체로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사탄의 공격과 방해는 더욱 심해짐을 알고 어찌하든지 믿음을 지키고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단지파와 같이 믿음의 파선자가 되어 받은 축복마저 잃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딤전 1:19,20)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칭찬과 함께 더 큰 축복과 영광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딤후 4:7, 8).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요한계시록의 핵심내용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묵시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어느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한 번의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대 환난’과 그 이후의 ‘흰 보좌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로 이어지는 연속적 사건입니다.
이중에서 예수님 재림 이전의 대 환난은 4-18장 사이에, 재림 이후의 사건은 19-22장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은 아직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대 환란’ 중에 있을 재앙에 대한 묵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요한계시록 7장은 여섯 번째 재앙이 일어난 후, 일곱 번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있을 것에 대한 말씀으로 6:17의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기록한 일종의 삽입구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인 ‘대 환난’에서 “누가 능히 서리요” 이 말씀은 곧, 그 환난을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느냐? 누가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말씀인데 그들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7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이러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1-8까지 땅의 관점에서, 하나는 9-17절까지 하늘의 관점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이단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그 유명한 ‘십사만 사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먼저 1절에 여섯째 인 재앙의 환상 후에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여기서 ‘땅의 네 모퉁이’란 ‘온 땅’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은 누가 읽어도 바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므로 땅의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란 온 땅에 임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렘 49:36-38).
그러므로 땅의 네 모퉁이에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잠시 멈추도록 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잠시 심판을 멈추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2-3절에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미리 인을 쳐서 구별하여 보호하기 위하여 잠시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 땅을 심판하시기 전에 우리 성도들의 이마에 인을 치심으로써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사전조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 12장에 죽음의 천사를 통해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재앙을 면할 수 있게 하신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항상 성도들을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사랑을 다 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성경 여러 곳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실례로 하나님께서는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미리 방주를 준비하게 하심으로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창 6장).
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의인 롯을 건져주셨습니다(창 19장).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장차 있을 불심판(벧후 3:7-10)에서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리 인치는 조치를 취하신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자는 영웅호걸도 아니고 백만장자나 인기 스타도 아닌 바로 우리성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성도들이야말로 역사의 중심임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땅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성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성도들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큼은 우리 성도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항상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진정 불쌍한 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세상 사람들임을 기억하며 그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한 마음으로 입을 열어 그들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참 성도됨’ 입니다.
2절에 한 천사가 성도들의 이마에 표를 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해 돋는 데’란 동쪽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많은 이단들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장차 메시야는 동방의 나라인 한국에서 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유독 우리나라에 재림예수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해 둬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보호를 위한 모든 은혜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만 옴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3절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들이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볼 때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종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인’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인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들과 ‘사탄의 인’을 맞은 자들 사이에는 마지막까지 영적 전쟁이 있을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본다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같은 부르심을 받은 종들이요, 에베소서 6장에서도 말씀하는 것과 같이 사탄과 싸우기 위해 같은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서로를 구분하며 누가 크냐는 등의 문제로 다투는 자들이 아니라 오직 같은 부르심을 받은 형제자매들입니다.
서로 합력하여 악한 세력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며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오직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 줄 사람은 하나님의 군사로 같은 부르심을 받은 믿음의 형제자매들밖에 없음을 기억하면서 더욱 큰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사도요한은 천사의 인을 맞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모두 십사만 사천이라 하였고 그 뒤에 각 지파의 이름과 인 맞은 자의 수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실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의 숫자라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이미 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여서 원래의 지파 개념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베드로전서 등의 신약성경에는 이 열두지파에 대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있으며(롬 2:29, 갈 3:7,29, 벧전 2:9), 심지어 야고보서에는 우리성도들을 직접 열두 지파라고 부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약 1:1).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과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숫자인 십사만 사천의 의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로 상징되는 수의 곱에 완전수 1000을 곱한 수로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성도들이 신약의 성도들과 함께 온전한 구원을 기다린다는 히브리서 11장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 의미가 더욱 확실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 맞은 십사만 사천이란 9절에 언급된 온 땅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각 지파의 수인데 사실 구약 성경을 보면 각 지파의 인구는 항상 변동하였고, 그 수가 모든 지파마다 달랐습니다(민 1, 26장).
그러므로 5절 이하에 각 지 파의 수가 모두 똑같이 일만 이천이라는 사실은 그 숫자가 실제 지파의 수에 기초하여 배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온 세상의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있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완전 숫자인 열두 지파와 그의 배수로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시는 사랑에는 어느 성도 할 것 없이 모두 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신분이나 계층, 인종,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십니다.
심지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순교자의 수가 차기 까지 참고 인내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계 6:11)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 기준으로 누구는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편협하고 유치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교만해지거나 그렇지 못하다고 낙심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각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며 몸에서는 약한 지체가 더 큰 사랑과 보호를 받는 것처럼 인간이 보기에 연약한 성도가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고전 12:12-27).
우리는 다만 어느 곳이든, 어떤 사람이 있든 그곳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롬 11:5)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5-8절까지를 보면 구원받은 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나오는데 단 지파가 빠져 있고 대신 요셉과 그 아들인 므낫세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모세는 마지막 유언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는 자는 결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신 29:18-21).
이는 요한계시록에도 반복되어 있는데(21:8; 22:15) 단 지파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기업을 차지하는 데에 실패 했을 뿐 아니라(삿 1:34) 북쪽 라이스로 가서 우상숭배에 빠졌고(삿 18:14-31) 이는 이후 북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왕상 12:28-30).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천국을 향한 길에 올랐다고 해서 그 자체로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사탄의 공격과 방해는 더욱 심해짐을 알고 어찌하든지 믿음을 지키고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단지파와 같이 믿음의 파선자가 되어 받은 축복마저 잃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딤전 1:19,20)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칭찬과 함께 더 큰 축복과 영광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딤후 4: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