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은 많은 비유와 사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성도들의 간절한 신앙의 소망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의 학문과 사상과 성품, 자라온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저자의 이러한 환경들에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신자들에 대하여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자세로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 인의 재앙이 끝나면서 시작된 일곱 나팔의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7절에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고 말씀하는데, ‘우박과 불’에 대한 묘사는 요엘 2:30 말씀과 출애굽 당시 애굽왕 바로가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거역하자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내렸던 일곱 번째 재앙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9:23-24입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특히 여기서 ‘우박’은 하늘에서 내리는 얼음 덩어리를 지칭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만 등장하고(계 11:19, 16:21),
구약성경에는 출9:23, 사28:2,17,30:30, 욥28:2-23, 단12:1 등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우리가 방금 읽은 출애굽기 말씀에는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고 말씀하며 그 피해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오늘 본문의 우박과 불덩이는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큰 피해를 입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6:8에 청황색 말과 그 탄자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인’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땅의 재앙의 범위가 ‘사분의 일’에서 ‘삼분의 일’로 늘어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 삼분의 일’만이 타버렸다는 것은 분명 ‘땅 사분의 일’이 황폐화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이 ‘제한된 심판’으로 선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멸망당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부분적인 심판을 계속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함을 이유로 이 땅을 단 한 번에 남김없이 모조리 불태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권리를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삼분의 일 만을 재앙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나머지 삼분의 이는 남겨두신 것에서 우리는 여전히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피 섞인 우박과 불’의 재앙을 많은 신학자들은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이나 기타 이상 기후로 인한 사막화 현상, 아니면 가공할 핵무기를 사용한 전쟁 등으로 땅이 황폐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이 의도하는 것은 그러한 재앙이 정확하게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죄중에 사는 인생의 결과가 이러한 심판을 불러오니 너희는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무서운 심판을 경고함으로써 그들도 죄에서 떠나 예수님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설령 이러한 재앙들이 무엇인지 안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알려고 하는 자들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어쩌면 요령껏 재앙을 피해보려는 욕심으로 비롯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평소에 주님 뜻대로 산다면 재앙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고 있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러한 무서운 재앙들이 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죄에서 떠나 믿음으로 살면 요한계시록의 기록목적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9절에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대규모의 세계전쟁이나 급속히 진행되는 환경오염 등으로 바다가 대규모로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파괴되는 것이 다름 아닌 바다라는 점과 그 정도가 앞의 땅과 마찬가지로 ‘삼분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바다는 자정능력이 있어 자체 정화작용을 하는데, 바다는 다 연결되어 있어 오염의 정도가 삼분의 일이 넘을 경우 그 자정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회복이 불가능해져 죽은 바다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지구 환경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바다나 강의 삼분의 일이 오염되고 파괴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 뒤에 이은 16장 이하의 대접 재앙을 통해 지구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거대한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몰할 것이 이처럼 너무나 분명한데도 지금처럼 계속 땅의 것만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곧 침몰할 배를 떠나 새로운 구조선으로 옮겨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은 침몰해 가는 이 땅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생명선이며, 잠시 후면 열릴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하늘의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내일을 보장받고 그곳에서 참된 생명과 행복을 누리려면 당연히 그곳을 바라보며 그곳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어차피 죽을 육신을 위하기보다는 장차 얻게 될 신령한 몸을 위해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이 땅이 장차 침몰할 배라면 이곳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마땅히 새로운 하늘의 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고전 15:49)
그리하여 이 짧은 삶을 사는 동안 하늘의 것을 찾고 하늘의 것을 구함으로써 현재에도 참된 영적행복을 누리고 이후에도 하늘의 구원과 축복을 영원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11절에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쑥’은 대체적으로 ‘애통과 비애, 멸망’ 등을 상징합니다(렘 9:15; 애 3:19).
더구나 그것이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이는 분명 문자 그대로의 큰 별이 아니라 강이나 물을 오염시키는 그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나팔 재앙은 강물이나 샘물, 지하수 등이 극심하게 오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사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원인에 대해 ‘하늘에서 큰 별과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신학자들은 핵폭탄으로 인한 재해나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환경파괴로 해석합니다.
12절에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24:29의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런데 사실 중요한 점은 그 결과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양은 모든 생명과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달과 별은 빛으로 밤을 밝혀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타격을 받아 삼분의 일이 세력을 잃게 되면 결국 이 땅은 에너지와 빛의 원천이 차단되어 어둡고 암울한 곳이 될 것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1-2도만 달라져도 온 지구가 몸살을 앓는데 삼분의 일이 사라지면 상상조차 힘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구나 앞의 말씀들처럼 바다와 강, 샘물이 오염되고 파괴되면 이 땅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더라고 거듭 말씀하실 정도로 생명과 활기가 넘치던 이 땅은 결국 죽음이 지배하는 어두운 지옥처럼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에서 속히 떠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3절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은 세 나팔의 재앙을 예고하며 독수리가 등장한 것은 독수리가 주로 주검이 있는 곳에 모이는 불길한 새로서(마 24:28) 구약에서도 주로 재앙이나 심판과 관련하여 언급된 새이기 때문입니다(신 28:49, 렘 48:40, 호 8:1, 합 1:8).
그러므로 독수리가 공중을 날며 '세 번'이나 화를 예고했다는 것은 앞으로 세 번의 재앙이 더 남았음을 시사하는 것 외에 이후의 남은 세 나팔 재앙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두려울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독수리의 예고를 중심으로 이전의 일곱 인 재앙과 이후의 나팔 재앙들을 연결시켜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곧 재앙이 진행될수록 심판의 강도는 점점 크고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께서 일곱 인을 떼실 때에는 재앙의 규모가 땅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계 6:8).
그런데 나팔 재앙이 시작되면서는 규모가 삼분의 일로 확대되었고 이후 무시무시한 사탄의 활동과 함께 대접 재앙에 이르러 그 범위는 땅 전체로 완전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재앙들이 세상의 구원을 낳기 위한 진통이라고 한다면 자녀를 낳기 위한 산모의 출산의 고통처럼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빈도와 강도가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재앙들을 접하면서 더욱 깨어 믿음을 굳게 하고 새롭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갈수록 강해지는 재앙의 고난을 견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현실을 보면 누가복음 18:8의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염려처럼, 날이 갈수록 오히려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약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요한계시록의 이러한 말씀들을 읽으며 약해지고 나태해진 우리의 신앙을 다 시 한번 새롭게 함으로써 떨어진 첫 믿음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계 2:5).
그리하여 한겨울의 소나무처럼 항상 푸르고 건강한 믿음으로 이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함으로써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은 많은 비유와 사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성도들의 간절한 신앙의 소망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의 학문과 사상과 성품, 자라온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저자의 이러한 환경들에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신자들에 대하여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자세로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 인의 재앙이 끝나면서 시작된 일곱 나팔의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7절에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고 말씀하는데, ‘우박과 불’에 대한 묘사는 요엘 2:30 말씀과 출애굽 당시 애굽왕 바로가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거역하자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내렸던 일곱 번째 재앙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9:23-24입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특히 여기서 ‘우박’은 하늘에서 내리는 얼음 덩어리를 지칭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만 등장하고(계 11:19, 16:21),
구약성경에는 출9:23, 사28:2,17,30:30, 욥28:2-23, 단12:1 등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우리가 방금 읽은 출애굽기 말씀에는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고 말씀하며 그 피해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오늘 본문의 우박과 불덩이는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큰 피해를 입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6:8에 청황색 말과 그 탄자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인’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땅의 재앙의 범위가 ‘사분의 일’에서 ‘삼분의 일’로 늘어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 삼분의 일’만이 타버렸다는 것은 분명 ‘땅 사분의 일’이 황폐화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이 ‘제한된 심판’으로 선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멸망당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부분적인 심판을 계속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함을 이유로 이 땅을 단 한 번에 남김없이 모조리 불태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권리를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삼분의 일 만을 재앙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나머지 삼분의 이는 남겨두신 것에서 우리는 여전히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피 섞인 우박과 불’의 재앙을 많은 신학자들은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이나 기타 이상 기후로 인한 사막화 현상, 아니면 가공할 핵무기를 사용한 전쟁 등으로 땅이 황폐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이 의도하는 것은 그러한 재앙이 정확하게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죄중에 사는 인생의 결과가 이러한 심판을 불러오니 너희는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무서운 심판을 경고함으로써 그들도 죄에서 떠나 예수님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설령 이러한 재앙들이 무엇인지 안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알려고 하는 자들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어쩌면 요령껏 재앙을 피해보려는 욕심으로 비롯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평소에 주님 뜻대로 산다면 재앙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고 있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러한 무서운 재앙들이 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죄에서 떠나 믿음으로 살면 요한계시록의 기록목적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9절에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대규모의 세계전쟁이나 급속히 진행되는 환경오염 등으로 바다가 대규모로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파괴되는 것이 다름 아닌 바다라는 점과 그 정도가 앞의 땅과 마찬가지로 ‘삼분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바다는 자정능력이 있어 자체 정화작용을 하는데, 바다는 다 연결되어 있어 오염의 정도가 삼분의 일이 넘을 경우 그 자정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회복이 불가능해져 죽은 바다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지구 환경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바다나 강의 삼분의 일이 오염되고 파괴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 뒤에 이은 16장 이하의 대접 재앙을 통해 지구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거대한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침몰할 것이 이처럼 너무나 분명한데도 지금처럼 계속 땅의 것만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곧 침몰할 배를 떠나 새로운 구조선으로 옮겨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은 침몰해 가는 이 땅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생명선이며, 잠시 후면 열릴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하늘의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내일을 보장받고 그곳에서 참된 생명과 행복을 누리려면 당연히 그곳을 바라보며 그곳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어차피 죽을 육신을 위하기보다는 장차 얻게 될 신령한 몸을 위해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이 땅이 장차 침몰할 배라면 이곳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마땅히 새로운 하늘의 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고전 15:49)
그리하여 이 짧은 삶을 사는 동안 하늘의 것을 찾고 하늘의 것을 구함으로써 현재에도 참된 영적행복을 누리고 이후에도 하늘의 구원과 축복을 영원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11절에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쑥’은 대체적으로 ‘애통과 비애, 멸망’ 등을 상징합니다(렘 9:15; 애 3:19).
더구나 그것이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이는 분명 문자 그대로의 큰 별이 아니라 강이나 물을 오염시키는 그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나팔 재앙은 강물이나 샘물, 지하수 등이 극심하게 오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사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원인에 대해 ‘하늘에서 큰 별과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신학자들은 핵폭탄으로 인한 재해나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환경파괴로 해석합니다.
12절에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24:29의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런데 사실 중요한 점은 그 결과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양은 모든 생명과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달과 별은 빛으로 밤을 밝혀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타격을 받아 삼분의 일이 세력을 잃게 되면 결국 이 땅은 에너지와 빛의 원천이 차단되어 어둡고 암울한 곳이 될 것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1-2도만 달라져도 온 지구가 몸살을 앓는데 삼분의 일이 사라지면 상상조차 힘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구나 앞의 말씀들처럼 바다와 강, 샘물이 오염되고 파괴되면 이 땅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더라고 거듭 말씀하실 정도로 생명과 활기가 넘치던 이 땅은 결국 죽음이 지배하는 어두운 지옥처럼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에서 속히 떠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3절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은 세 나팔의 재앙을 예고하며 독수리가 등장한 것은 독수리가 주로 주검이 있는 곳에 모이는 불길한 새로서(마 24:28) 구약에서도 주로 재앙이나 심판과 관련하여 언급된 새이기 때문입니다(신 28:49, 렘 48:40, 호 8:1, 합 1:8).
그러므로 독수리가 공중을 날며 '세 번'이나 화를 예고했다는 것은 앞으로 세 번의 재앙이 더 남았음을 시사하는 것 외에 이후의 남은 세 나팔 재앙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두려울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독수리의 예고를 중심으로 이전의 일곱 인 재앙과 이후의 나팔 재앙들을 연결시켜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곧 재앙이 진행될수록 심판의 강도는 점점 크고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께서 일곱 인을 떼실 때에는 재앙의 규모가 땅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계 6:8).
그런데 나팔 재앙이 시작되면서는 규모가 삼분의 일로 확대되었고 이후 무시무시한 사탄의 활동과 함께 대접 재앙에 이르러 그 범위는 땅 전체로 완전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재앙들이 세상의 구원을 낳기 위한 진통이라고 한다면 자녀를 낳기 위한 산모의 출산의 고통처럼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빈도와 강도가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재앙들을 접하면서 더욱 깨어 믿음을 굳게 하고 새롭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갈수록 강해지는 재앙의 고난을 견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현실을 보면 누가복음 18:8의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염려처럼, 날이 갈수록 오히려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약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요한계시록의 이러한 말씀들을 읽으며 약해지고 나태해진 우리의 신앙을 다 시 한번 새롭게 함으로써 떨어진 첫 믿음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계 2:5).
그리하여 한겨울의 소나무처럼 항상 푸르고 건강한 믿음으로 이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함으로써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