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20. 일곱 인 심판 3 - 회개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계 6:12-17)

우인택 목사
2020-01-17
조회수 1868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날 여러 징조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여섯째 인을 떼자 17절에 ‘진노의 큰 날’이라는 표현처럼 이전까지의 재앙과는 다른 온 우주적인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각종 징조와 재앙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12절에 언급된 지진이 성경에서도 많이 일어난 실제 사건이라는 것에 근거하여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입장과,
실제로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는” 그러한 사건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하여 이를 일종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10에 ‘주의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우주 만물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리라고 예언했고,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는 만물이 새로워진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자 그대로의 해석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인류 마지막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주적인 격변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동안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무너지리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그 첫 번째 징조로 큰 지진이 있으리라 했는데 이는 땅의 흔들림과 갈라짐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땅은 안전하게 고정되어 부동산이라고 부르며 가장 귀한 재산의 하나로 여기고, 인간의 모든 삶의 기반이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땅이 흔들리고 갈라진다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해와 달이 변하고 별들이 떨어지는 우주적인 대격변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14절에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진다”는 말씀은 삶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짐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재앙과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모든 인류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는 결국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의 작은 범죄로 인해 그 원죄가 싹이 트고 자라나고 열매 맺어서 이처럼 엄청난 재앙과 비극을 몰고 오게 된 것입니다(롬 5:12).
또한 이 재앙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온 세상만물에게도 미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인간과 자연 뿐 아니라 하나님의 비극과 아픔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재앙으로 인해 가장 큰 아픔을 겪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범죄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엄청난 비극과 불행을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당장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도 눈앞에서만 그것을 감추면 아무 일 없으리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 성공하면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범죄 이후 이를 감추려고 나무 뒤에 숨었지만 그 범죄의 결과는 그들 부부를 넘어 자식들 사이의 살인으로 번졌고(창 4장), 이후 노아홍수로 발전했으며(창 6-7장), 마침내 우리가 보듯 온 인류의 재앙과 불행, 심지어 우주만물과 하나님에게까지 고통을 주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화와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 다윗 역시 작은 쾌락을 위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이를 감추려 했지만 오히려 자녀들 사이의 살인은 물론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무고한 온 나라 백성들까지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보며 어떠한 경우에도 작은 쾌락을 위해 말씀과 진리를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하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죄와 실수라도 저질렀다면 이를 감추려 하지 말고 즉시 하나님께 회개함으로써 실수가 더 큰 비극으로 자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선을 행하는데 힘씀으로써 본인은 물론 이웃과 하나님에게까지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주신 목적이 바로 죄의 무서운 결과를 보며 이러한 삶을 결단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재앙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굴과 바위틈에 숨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어지고, 삶의 기반을 모두 잃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자세히 보면 모두 일곱 부류로 되어 있습니다.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유인”
이처럼 일곱의 부류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산이나 굴로 도망했다는 것은, 당시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스스로의 의로 구원에 받을 만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9-10).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생각에 따른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구원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은 돈과 권력입니다.
돈과 권력만 있다면 이 땅에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도 생전의 영화를 누리기 위해 무덤을 아주 호화롭게 꾸밉니다.
또, 이러한 사람들에 반발하며 이와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사회학적으로 해석을 한다는 진보주의 진영의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든 인간을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어 부자나 지배자들은 지옥에 가지만 가난하고 지배받는 소위 민중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성경이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믿음 보다는 부와 권력 등의 사회적 기준을 더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부와 권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는 사도바울의 말씀처럼(갈 6:15)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오직 믿음만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부와 권력은 있으되 믿음 없는 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그것들이 없는 자들을 미화하지도 말고, 오직 믿음만을 지키고 전함으로써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6절과 17절에 이 땅의 믿지 않던 자들은 이 하나님의 심판 날에 산과 바위를 바라보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얼굴에서 자기들을 가려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당하는 재앙과 심판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재앙가운데에서 영문을 몰라 허둥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심판 때문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도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한 번쯤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자비를 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교회를 비판하고 정죄하던 사람들이 질병이나 재난 등으로 삶의 위기가 오면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 언급된 이들은 말 못하는 산과 바위더러 자기들을 가려달라고 요청할지언정 조금도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 입니까?
현재 이들의 마음은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는 일종의 회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마음은 마치 사탄의 화인을 맞아 완전히 정신과 마음이 마비된 자들처럼(딤전 4:2)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회개의 기회와 시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누차 언급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원하시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9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고 이 점은 앞의 넷째 인까지의 재앙이 완전한 재앙이 아니라 부분적 재앙임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분적 재앙을 통해 충분히 경고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회개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인간이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도 병의 치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병은 고칠 수 있을 때 고쳐야지 때를 놓쳐 완전히 악화되면 알고서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회개도 회개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기회를 놓치면 그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서 회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시지만 일단 그 기회를 상실한 자에게는 다시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차버린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영원한 멸망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의 불행한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나 자신의 삶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숨겨둔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악의 길을 고집함으로써 이처럼 회개 불능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겸손한 마음으로 반성해야 합니다(히 3:13).
그리하여 오늘 본문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보면서도 그 마음이 굳어져서 산과 바위틈으로 도망치는 자들처럼 구원을 보면서도 얻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조그만 죄라도 속히 회개함으로써 죄라는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인류 최후의 마지막 날에는 역사상 없었던 큰 재앙이 있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는 분명 한계가 있으며, 그 때가 오면 더 이상 회개할 수도 없고 오직 두려운 심판과 멸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날이 오기 전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분적인 재앙으로 경고하시고 불안하나마 평화의 기간을 통해 기회를 주실 때에 작은 죄라도 속히 회개하는 습관을 가짐으로써 다가 올 심판에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 크고 두려운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함으로써 한 영혼이라도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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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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