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11. 주의 강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 (살전 4:13–18)

우인택 목사
2026-03-25
조회수 366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우리는 지금 데살로니가전서를 처음부터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복음을 받고 삶이 변화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하여, 2장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목자로서의 바울의 마음에 대하여, 3장에서는 바울의 성도들을 향한 염려와 기도에 대하여, 지난주에는 4장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라는 것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부터 분위기가 다시 바뀝니다. 이번에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죽음과 소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이미 죽은 성도들은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이미 죽은 성도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문제 때문에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1. 먼저,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자는 자들’이란 이미 죽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의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끝난 것이 아닌가? 재림 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슬퍼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지식이 잘못된 감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지금 너희가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하는 것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슬픔은 세상 사람과의 슬픔과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의 슬픔은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에 대한 슬픔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슬픔은 소망이 있는 슬픔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만남을 위한 잠시의 이별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헤어짐이 슬프기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우리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었으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을 것이고,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은 슬피 울 것이나 당신은 미소를 띨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의 죽음과 관련한 적절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영원한 종말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을 앞둔 잠시동안의 기다림입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살 그날을 앞두고 잠시동안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므로 죽음 앞에서 담대히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의 소망의 근거는 어떤 감정이나 막연한 희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소망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곧, 감사의 예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추수의 첫 번째 단이 전체 추수의 수확에 대한 보증과 확신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과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대표의 원리’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21절에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우리의 육적인 대표가 되므로 우리가 그의 원죄를 물려받아 사망의 권세하에 들어가게 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대표가 되므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 우리 성도들에게 그대로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불확실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부활 역시 불확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대표의 원리에 따른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에게는 부활이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명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바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살아있는 우리보다 먼저 잠든 성도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종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 사이에는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염려와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재림의 때에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염려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함으로써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른 종말관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같이 명확하게 답할 수 있었던 근거는 죽음은 결코 성도들을 예수님으로부터 떼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8:38~39).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모든 것과의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결식’을 합니다. 영결식이란 죽은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낸다는 뜻으로 행하는 의식입니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며,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며,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가며, 모든 것을 무로 만들며, 모든 것을 끊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음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죽음의 힘도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음을 이기셨고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길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17절 함께 읽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휴거’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한때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던 사람들에 의해 매우 유행했던 말입니다. 휴거는 한자어로 이끌 휴(携), 들 거(擧),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때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배경으로 하여 새롭게 만든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요? 17절 끝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눈물도 없고, 이별도 없고, 아픔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영원히 거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이자 우리가 가진 소망의 마침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세상의 위로는 잠시뿐이지만, 부활의 소망은 우리 삶 전체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혹,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가운데 있는 지체가 있습니까? 미래가 불안해 떨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우리 다시 만날 것입니다.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라는 이 소망의 말로 서로를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 페이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땅의 짧은 즐거움이나 슬픔에 너무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곧 들려올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기대하며,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그날을 꿈꾸며 소망 중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부활의 메시지로 어루만져 주옵소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잠시 잠드는 것임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 오시는 날 다시 만날 그 영광의 재회를 꿈꾸며 일어서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또한, 이 땅의 것에만 연연하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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