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5. 복음은 오직 사랑으로만 전해집니다 (살전 2:6–12)

우인택 목사
2026-02-04
조회수 437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힘입니다. 권위, 지위, 직책, 말의 무게로 사람을 따르게 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섬김, 인내, 헌신으로 마음을 여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첫 번째 방식을 택합니다. 힘으로 누르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합니다. 복음은 힘과 권력으로 전해지지 않고 사랑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고 따뜻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 먼저, 6절 함께 읽습니다.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여기에서의 ‘또한’은 이 말씀이 5절과 이어지는 말씀임을 뜻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그리고 6절에서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느라”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복음은 내용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라, 동기까지 깨끗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성도에게 주는 가장 교묘한 시험은 겉과 속이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는데, 그 마음에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섬김을 말하는데, 그 마음속에는 비교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충성하는데, 그 마음속에는 보상 심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한’이라는 단어로, 복음 사역의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라며 이에 대한 적용 범위를 아주 넓게 잡습니다. 여기에서의 ‘영광 δόξα’은 사람이 인정해 주는 영광을 뜻합니다. “대단하다” “잘한다” “참 훌륭하다” 이런 평가가 바로 ‘사람의 영광’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편에게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맞지?” “나 인정해 줘.” “나 수고했지?” 또 하나는 내 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굴복시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도 나를 인정하게 만들겠다.” “비판하는 사람을 설득해서 내 가치를 증명하겠다.” 이 둘은 형태는 다르지만, 사실은 둘 다 ‘사람의 평가’라는 같은 뿌리에서 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을 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것을 구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아해 주는 사람의 칭찬에 힘을 얻고, 싫어하는 사람의 평가에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힘을 내어 달리고, 오해받으면 좌절하고 멈춰 섭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사람의 영광에 연연하게 되면 결국에는 복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바뀝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됩니다. 선택도 수시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분위기를 택합니다. 성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사람의 영광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단순히 ‘겸손하라’가 아닙니다. 복음을 붙들려면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면 복음이 흐려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내려놓아야만 우리의 시선이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져 복음이 선명하게 전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로부터의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사람들의 평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입니까? 여러분 모두 바울처럼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고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7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여기에서 ‘유순하다 ἤπιος’라는 말은 ‘권리를 내려놓고 부드러워진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사도였지만 사도처럼 군림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명령하지 않았고,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았고, 권위로 누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낮아졌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복음을 듣는 사람과 같은 시점에서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겸손하게 사람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언제나 겸손한 사람의 입에서 전해질 때 가장 선명하게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선 자리를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라고 비유합니다. 여기에서 ‘유모’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계산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을 나누어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알아주지 않아도 밤새 젖을 먹입니다. 아이가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어도 변함없이 품에 안아 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런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복음은 사랑입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멀리서도 전달되지만, 사랑은 가까이에 있어야 전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설교자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8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은 더 나아가 “우리가 열심히 가르쳤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과장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이러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혔고, 쫓겨났고, 결국 순교했습니다. 그의 삶 전체가 이 고백의 증거였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복음은 권위로 전해지지 않고 기술로 전달되지 않으며 말솜씨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랑으로만 전해집니다. 낮아짐으로, 어머니의 자리에서, 생명을 내어주는 헌신의 자리에서 전해집니다. 그래서 복음은 항상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랑 없이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함께 주고 싶었습니다.” 이 고백으로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여기에서의 ‘수고 κόπος’와 ‘애씀 μόχθος’은 ‘육체를 소모시키는 노동’, ‘탈진에 가까운 고단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복음이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지만, 그 은혜를 전하는 사람의 삶에는 값이 필요합니다. 복음은 공짜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로만 “사랑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삶의 무게로 사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전하면서 일했습니다. 그의 삶은 둘로 나뉘지 않았습니다. 강단 위의 바울과 일터의 바울이 달랐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복음의 내용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봅니다. 말은 의심해도 삶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뢰성은 말솜씨가 아니라 삶의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말하는 대로 살았고, 사는 대로 말했습니다. 복음과 삶 사이에 간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10절에 자신의 이러한 삶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증인이시다”라며 과감하게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곧 “언제든지 내 삶을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나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세 단어로 요약합니다.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옳게’ 사람 앞에서 바르게, ‘흠 없이’ 양심에 거리낌 없이. 

  그러나 이는 완벽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숨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고, 겉과 속이 나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능력은 말씀 그 자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지는 통로는 ‘삶의 진실함’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수고를 했고(11절), 어머니와 같은 희생을 했고(7-8절), 구원받은 자로서의 일관된 삶의 본을 보였습니다(9-10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보기에 복음이 그의 삶에서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12절).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복음은 말솜씨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직분으로도 설득되지도 않습니다. 복음은 삶으로만 증명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입술보다 복음으로 살아내는 하루가 더 큰 설교가 됩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을 본받아 살아 움직이는 복음으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힘이나 말솜씨로 사람을 움직이려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처럼 겸손으로 낮아져 섬기게 하시고, 어머니의 사랑으로 품게 하시며, 아버지의 책임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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