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4.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살전 2:1-5)

우인택 목사
2026-01-28
조회수 371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우리가 이미 상고한 1장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좋은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1장에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그 시선을 바꾸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에게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에 대한 것으로 그 시선을 바꾸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한 사람이 ‘어떤 복음을 어떻게 전했는지’에 따라서 그 교회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도들의 신앙이 무조건 성숙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교회가 되고 좋은 소문이 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바르게 전해졌고, 복음을 전해 받은 성도들이 복음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교회는 참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 “성도들은 복음을 바르게 듣고, 온전히 붙들고 살아가는가?”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성도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1절을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여기에서 ‘헛되다 κενός’라는 말은 결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겉모양은 그럴싸한데 ‘속이 비어 있다’, ‘실체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실체가 없는 겉모양뿐인 것이 아니었음을 너희가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나니”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데살로니가 사역은 외적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로 쫓겨났습니다. 교회가 안정되기도 전에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상고하는 사도행전 17장에 의하면, 불과 몇 주의 사역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기에도 교회가 자리 잡고 성장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열매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씀합니다. “헛되지 않았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시간과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얼마만큼 순종했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몇 명이 모였느냐?” “얼마나 오래 했느냐?” “얼마나 화려했느냐?” 이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했는가?” 바울이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자,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켰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역에 소문이 날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더딜 수 있습니다. 결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다면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선 1장에서부터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말로만 아니라’ ‘성령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입니다. 곧 복음 사역의 핵심은 사람의 설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말 잘하는 설교자로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복음이 살아 역사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회상하며 자기의 수고와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했다.” “내가 능력이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래서 그 사역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남습니다. 사람의 열심은 시간이 지나면 식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월이 지나도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때로 지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이렇게 해도 달라지는 게 있나…”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단 한 번도 헛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친히 아느니라” 

  여러분, 복음 사역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변화된 성도 한 사람이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도들의 삶 자체가 증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것도 이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주장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복음은 설명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살아낸 흔적으로 증명됩니다. 

  “너희가 친히 아느니라.” 바울의 이 고백처럼 여러분의 믿음이 누군가에게 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을 보니 복음이 진짜더라.” “동탄영락교회를 보니 예수님이 살아 계시더라.” 이 고백이 있는 신앙은 헛되지 않은 신앙입니다. 

  여러분, 진짜 복음은 흔적을 남깁니다. 회개의 흔적, 삶의 방향이 바뀐 흔적, 주인이 바뀐 흔적을 남깁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흔적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기에서 ‘고난 πάσχω’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의미하고, ‘능욕 ὕβρις’은 공개적인 모욕, 수치, 인격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오기 직전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과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당시 바울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남아 있었고 상처도 아물지 않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쯤 되면 하던 사역을 멈춥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고백합니다. ‘당하였으나…’ 고난은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라 정상적인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표지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고난과 능욕을 당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고난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초대교회도 고난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자리에는 항상 고난과 능욕이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능욕을 당하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여기에서 ‘힘입다 παρρησιάζομαι’라는 단어의 뜻은 ‘두려움 없이 말하다’ ‘위축되지 않고 드러내다’ ‘권세 있는 자유로 말하다’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담대함의 근원은 바울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용기를 냈다.” “내가 마음을 굳게 잡았다.”라고 하며 자신의 의지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담대함은 결심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훈련으로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을 때 주어집니다.

  고난과 능욕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이 진짜 의지하는 대상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쫓겨나고도 멈추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로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기에서 ‘싸움 ἀγών’이라는 단어는 ‘생명을 건 싸움’에서 사용되던 말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전쟁터 한복판에서 복음을 전했다”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이 가진 담대함은 고난이나 두려움이 없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할 때 담대함이 나타납니다. 빌립보의 매질이 데살로니가의 전도를 막지 못했습니다. 감옥의 쇠사슬이 복음을 전하던 바울의 입을 닫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과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 고난과 능욕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여기에서의 ‘간사함’은 ‘미혹, 거짓된 교리, 진리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합니다. ‘부정’은 ‘도덕적 타락, 음란, 불순한 욕망’을 뜻합니다. ‘속임수’는 ‘미끼를 숨기는 것, 의도적인 기만’을 뜻합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복음은 교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거짓에서 나오지 않았다.” 복음은 감정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사람을 속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종교인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하고,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종교를 사람을 속이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4절 함께 읽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 한 문장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기본적인 자세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는 사람의 박수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시선은 청중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께 둡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아첨’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입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첨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만, 영혼을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탐심의 탈’이란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속은 이익을 노리는 위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에는 아첨과 탐심의 탈이 없습니다. 오히려 회개를 요구하고, 삶의 방향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기에 때로 불편합니다. 더군다나 복음은 성공의 도구가 아닙니다. 복음은 번영의 공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람을 끌기 위한 미끼가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죄인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돈을 받고 팔 수 없고, 다른 무언가와 바꿀 수 없고, 귀에 듣기 좋은 말로 꾸밀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정직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전도자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서 있다는 마음 자세로 복음을 전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헛되지 않았고, 나의 안전을 위해 고난을 피하지 않았으며, 나의 유익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좋은 소문이 나는 성도들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처럼 복음을 붙들고 있습니까?” 복음은 우리의 안일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복음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헛되지 않은 복음, 값싼 은혜가 아닌 십자가의 복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 이 복음 위에 여러분의 신앙과 교회가 세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비추어 봅니다. 편안한 말만 듣고자 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고난 없는 복음, 회개 없는 은혜를 원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바울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헛되지 않은 복음, 능력 있는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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