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러분, 가끔 학교 졸업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잊고 있던 이름들이 생각나고, 그 사람의 얼굴, 말투, 추억까지 새록새록 떠오르게 됩니다.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흔적이고, 관계이고, 때로는 한 시대의 고백이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얼핏 보면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이름들 하나하나에 바울의 사역, 고난, 동역, 회복, 실망, 기도 등 복음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이어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인데, 오늘 본문에는 모두 여섯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 데마’ 이들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오늘, 이 이름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에 속하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첫 번째 사람은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고난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역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아리스다고도 함께 갇혔습니다. 그는 유명한 설교자도, 성경 저자도 아니었지만, 바울은 그러한 그를 ‘복음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리스고다를 통해 ‘옆에 있는 은혜’에 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고난 중에 있을 때 아리스다고 같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아리스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을 함께하고,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고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의 곁을 함께 지켜주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셨던 것처럼, 그의 곁에서 은혜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오늘, 아리스다고를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 사람은 ‘마가’입니다.
마가는 한때 바울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인물입니다. 제1차 전도여행 도중에 낙오함으로써, 바나바와 갈등을 겪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가를 ‘동역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를 영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한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은혜’입니다. 마가는 회복의 상징입니다. 회복된 그는 더이상 바울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이 아니라, 듬직한 위로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복음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다시 손잡는 하나됨을 이루어지게 함을 교훈합니다. 복음은 서로의 약함을 돌아보며 위로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가를 묵상하며 “나는 과연, 과거 나를 실망하게 한 사람을 다시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회복을 기다려주는 믿음을 가졌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마가와 같이 실패에서 회복되고, 바울과 같이 다시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 사람은, 11절 함께 읽습니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유스도는 이름만 언급될 뿐, 성경 어디에서도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스도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 그리고 ‘나의 위로’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유스도와 같은 이름 없는 자의 충성과 보이지 않는 헌신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무명의 위로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되는 자, 나서지 않아도 충성된 자, 바로 그런 사람을 기억하시고 생명책이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이러한 유스도를 보면서 나는 과연 ‘이름 없이도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복음을 위해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유스도처럼 교회 안에 녹아진 소금과 같은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네 번째 사람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아마도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인물이기 때문에 에바브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길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에서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고향인 골로새로 돌아가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운 교회는 이방 땅에 세운 교회라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바울과 논의 하기 위해 로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라에 대하여 골로새 교회를 위해 ‘애써 기도’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애써 ἀγωνίζομαι’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며 싸우는 선수처럼, 영적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단순히 앉아서 중얼거리는 기도가 아니라, 온 힘과 마음과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 사랑에서 나오는 기도, 교회를 살리는 기도를 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는 골로새 교회만을 위한 중보자가 아니었습니다.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그는 지역의 벽을 넘어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기도는 공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든 것을 잇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강조한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라는 표현은 단회적인 기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중보자’로서의 삶을 살았음을 뜻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 교회에도 에바브라가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아니어도, 설교자가 아니어도, 기도로 교회를 움직이는 사람, 그 한 사람이 세상의 악한 풍조에서 교회를 지켜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 애써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는 단순한 반복이 아닌, 영적 싸움입니까? 교회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일이 기도라는 걸 믿습니까? 오늘, 나는 과연 에바브라와 같은 중보하는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다섯 번째 사람은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입니다.
누가는 바울 곁을 끝까지 지켰던 동역자이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지만, 복음의 현장으로 나아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행했습니다. 사도행전 중 ‘우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누가가 직접 바울과 함께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 디모데후서 4:11에서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증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누가는 끝까지 함께한 충직한 동역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글’로써 후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 전체 분량 중 가장 많은 책입니다. 그는 조용했지만, 그가 행한 일은 넓고 깊었습니다. 그는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조용히 혼자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기록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시대에도 거창한 말보다는 조용한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누가’가 필요합니다.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키고, 묵묵한 헌신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름은 사라져도, 복음을 남기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마지막 여섯 번째 사람은 ‘데마’입니다.
데마는 디모데후서 4:10에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난 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함께한 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지워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 ‘기회를 남겨주는 은혜’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때론 흔들리지만, 데마의 이름도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 있는 이름입니다.
데마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신실하게 복음에 붙들려 있는가, 아니면 흔들리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과연 연약한 자를 끝까지 품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하나하나는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1) 아리스다고는 고난 중 함께하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2) 마가는 실패에서 회복된 위로의 사람입니다.
3) 유스도는 이름 없이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4) 에바브라는 기도로 교회를 세우는 중보의 사람입니다.
5) 누가는 끝까지 복음을 기록한 신실한 사람입니다.
6) 데마는 아직도 은혜를 기다리는 연약한 사람입니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을 품은 이 편지의 마지막 인사처럼,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복음의 이야기에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회복되게 되는 멋진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숨겨진 곳에서도 충성하며 기도로 공동체를 세우는 신실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맡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 하나님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름 안에 담긴 복음의 이야기를 오늘 다시 듣습니다. 우리를 아리스다고처럼, 마가처럼, 에바브라처럼, 누가처럼 사용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데마 조차도 품으시는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나의 이름이 누군가의 기도 속에, 위로 속에, 복음의 기억 속에 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러분, 가끔 학교 졸업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잊고 있던 이름들이 생각나고, 그 사람의 얼굴, 말투, 추억까지 새록새록 떠오르게 됩니다.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흔적이고, 관계이고, 때로는 한 시대의 고백이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얼핏 보면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이름들 하나하나에 바울의 사역, 고난, 동역, 회복, 실망, 기도 등 복음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이어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인데, 오늘 본문에는 모두 여섯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 데마’ 이들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오늘, 이 이름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에 속하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첫 번째 사람은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고난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역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아리스다고도 함께 갇혔습니다. 그는 유명한 설교자도, 성경 저자도 아니었지만, 바울은 그러한 그를 ‘복음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리스고다를 통해 ‘옆에 있는 은혜’에 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고난 중에 있을 때 아리스다고 같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아리스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을 함께하고,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고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의 곁을 함께 지켜주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셨던 것처럼, 그의 곁에서 은혜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오늘, 아리스다고를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 사람은 ‘마가’입니다.
마가는 한때 바울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인물입니다. 제1차 전도여행 도중에 낙오함으로써, 바나바와 갈등을 겪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가를 ‘동역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를 영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한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은혜’입니다. 마가는 회복의 상징입니다. 회복된 그는 더이상 바울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이 아니라, 듬직한 위로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복음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다시 손잡는 하나됨을 이루어지게 함을 교훈합니다. 복음은 서로의 약함을 돌아보며 위로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가를 묵상하며 “나는 과연, 과거 나를 실망하게 한 사람을 다시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회복을 기다려주는 믿음을 가졌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마가와 같이 실패에서 회복되고, 바울과 같이 다시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 사람은, 11절 함께 읽습니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유스도는 이름만 언급될 뿐, 성경 어디에서도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스도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 그리고 ‘나의 위로’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유스도와 같은 이름 없는 자의 충성과 보이지 않는 헌신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무명의 위로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되는 자, 나서지 않아도 충성된 자, 바로 그런 사람을 기억하시고 생명책이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이러한 유스도를 보면서 나는 과연 ‘이름 없이도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복음을 위해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유스도처럼 교회 안에 녹아진 소금과 같은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네 번째 사람은,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아마도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인물이기 때문에 에바브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길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에서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고향인 골로새로 돌아가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운 교회는 이방 땅에 세운 교회라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바울과 논의 하기 위해 로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라에 대하여 골로새 교회를 위해 ‘애써 기도’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애써 ἀγωνίζομαι’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며 싸우는 선수처럼, 영적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단순히 앉아서 중얼거리는 기도가 아니라, 온 힘과 마음과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 사랑에서 나오는 기도, 교회를 살리는 기도를 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는 골로새 교회만을 위한 중보자가 아니었습니다.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그는 지역의 벽을 넘어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기도는 공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든 것을 잇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강조한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라는 표현은 단회적인 기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중보자’로서의 삶을 살았음을 뜻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 교회에도 에바브라가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아니어도, 설교자가 아니어도, 기도로 교회를 움직이는 사람, 그 한 사람이 세상의 악한 풍조에서 교회를 지켜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 애써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는 단순한 반복이 아닌, 영적 싸움입니까? 교회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일이 기도라는 걸 믿습니까? 오늘, 나는 과연 에바브라와 같은 중보하는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다섯 번째 사람은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입니다.
누가는 바울 곁을 끝까지 지켰던 동역자이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지만, 복음의 현장으로 나아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행했습니다. 사도행전 중 ‘우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누가가 직접 바울과 함께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 디모데후서 4:11에서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증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누가는 끝까지 함께한 충직한 동역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글’로써 후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 전체 분량 중 가장 많은 책입니다. 그는 조용했지만, 그가 행한 일은 넓고 깊었습니다. 그는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조용히 혼자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기록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시대에도 거창한 말보다는 조용한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누가’가 필요합니다.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키고, 묵묵한 헌신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름은 사라져도, 복음을 남기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마지막 여섯 번째 사람은 ‘데마’입니다.
데마는 디모데후서 4:10에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난 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함께한 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지워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 ‘기회를 남겨주는 은혜’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때론 흔들리지만, 데마의 이름도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 있는 이름입니다.
데마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신실하게 복음에 붙들려 있는가, 아니면 흔들리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과연 연약한 자를 끝까지 품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하나하나는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1) 아리스다고는 고난 중 함께하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2) 마가는 실패에서 회복된 위로의 사람입니다.
3) 유스도는 이름 없이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4) 에바브라는 기도로 교회를 세우는 중보의 사람입니다.
5) 누가는 끝까지 복음을 기록한 신실한 사람입니다.
6) 데마는 아직도 은혜를 기다리는 연약한 사람입니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을 품은 이 편지의 마지막 인사처럼,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복음의 이야기에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회복되게 되는 멋진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숨겨진 곳에서도 충성하며 기도로 공동체를 세우는 신실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맡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 하나님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름 안에 담긴 복음의 이야기를 오늘 다시 듣습니다. 우리를 아리스다고처럼, 마가처럼, 에바브라처럼, 누가처럼 사용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데마 조차도 품으시는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나의 이름이 누군가의 기도 속에, 위로 속에, 복음의 기억 속에 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