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바울은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인사와 문안을 전합니다. 보통 이런 부분은 설교에서 건너뛰기도 하지만, 사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전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초대교회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복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맺어주신 관계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가 어떠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어떤 사명으로 부르셨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7-8절 함께 읽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어서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하여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냈습니다. ‘두기고’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하는 전달자’입니다. 두기고는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 역할을 넘어서서 바울의 마음, 바울의 기도, 바울의 고백을 대신 전하는 위로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를 소개할 때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그리고 8절에 ‘너희 마음을 위로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곳 외에도 두기고의 이름이 네 번 더 등장합니다(행 20:4, 엡 6:21, 딤후 4:12, 딤 3:12). 그런데 이 모든 곳을 살펴볼 때, 그 어디에도 그가 위대한 설교나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바울과 동행했고 그의 심부름을 충실히 수행했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에베소서에서도 두기고를 진실한 일꾼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에베소에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낱낱이 알리게 하고 바울의 이름으로 그들을 위로하게 했습니다(엡 6:21-22).
이처럼 두기고는 항상 바울 곁에서 함께했고, 누구보다 바울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두기고를 골로새에 보냄으로써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두기고는 성경에 기록될 만한 눈에 띄는 큰 권능을 행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이 큰 열매를 맺고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두기고와 같은 동역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대단한 은사나 능력이 없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큰 성과나 대단한 역사를 이루지 못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크고 위대한 일을 했는지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했는지를 보십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했다면, 그 일은 누가 한 것입니까? 우리가 한 것입니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우리가 평생 눈에 띄는 큰일을 하지 못하고 작은 교회를 지키며 살았다고 할 때,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분은 누구입니까? 능력이 부족한 우리입니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어진 사명이 크든 작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칭찬과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두기고를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기고’라는 이름의 뜻처럼 ‘위로하는 전달자’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바울이 끝인사를 하면서 많은 동역자 중에서 두 번째로 언급한 사람은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한, 쓸모있는’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처음부터 유익하고 쓸모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빌레몬서에 의하면 그는 ‘도망 노예’였습니다. 그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어떤 손해를 입히고 두려워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도망 노예는 잔혹한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의 도망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이름은 ‘유익한 자’라는 뜻이었지만, 실제 그의 삶은 ‘무익한 삶, 실패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바울을 만나고, 감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익한 그가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 1:10에서 오네시모를 소개하면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오네시모는 노예 출신에서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몬 1:12).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무익한 자에서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오네시모를 향해 빌레몬서 1:12에서 “그는 내 마음이라”라고 까지 고백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단순히 ‘개과천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오네시모를 통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도망자가 사도의 아들이 될 수 있고, 실패자가 신실한 동역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의 옆에 계속해서 두지 않고,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빌레몬이 마음먹기에 따라 오네시모가 큰 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말고, 형제로 영접하라”(몬 1:16) 바울은 복음을 영접한 오네시모에게는 과거를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는 복음을 영접한 사람답게 죄인을 자비로 대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배려로 세월이 흐르고, 이제 오네시모는 9절에 기록된 것처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도망 노예였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주인이 빌레몬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로부터 신실함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그를 “사랑받는 형제”라고 부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오네시모를 통해 무익함에서 유익함으로, 그리고 충성됨으로 변화되는 것이 복음이 한 사람의 삶 속에 일으키는 변화의 과정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주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변화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평생의 성숙과 헌신으로 이어졌음을 뒷받침합니다.
여러분,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단순히 노예가 회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역전된 이야기,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실상입니다. 과거의 그는 실패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새 출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도망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신실한 일꾼으로 서게 했습니다. 과거의 그는 무익한 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유익한 자로 바꾸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종이었지만, 복음은 그를 동역자로, 나아가 지도자로 서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기준’으로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으로 새롭게 된 ‘현재를 기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하므로.”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전혀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역자요, 한 사람은 도망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둘을 함께 보내면서, 동일한 용어로 그들을 소개했습니다. ‘신실한 형제, 사랑받는 자.’ 복음 안에서는 과거도, 사회적 지위도, 실수도, 공로도 관계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교리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내면서, 그들의 삶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가 되게 했습니다. 교회는 설교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설교로 전한 복음을, 사람이 증거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그러한 증거가 있습니까? 설교를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말할 뿐만아니라, 복음으로 살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살아있는 위로가 되도록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두기고를 통해 위로를, 오네시모를 통해 용서를, 그리고 두 사람을 통해 복음으로 하나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어져야 하며,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두기고가 되어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 용서를 입은 오네시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그런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골로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믿음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저희를 부르시고,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통해 복음의 능력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복음으로 변화되어, 두기고처럼 위로하고, 오네시모처럼 회복된 자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교회가 이 시대의 골로새 교회가 되어, 어떤 이도 외면하지 않고, 모든 잃어버린 양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바울은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인사와 문안을 전합니다. 보통 이런 부분은 설교에서 건너뛰기도 하지만, 사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전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초대교회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복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맺어주신 관계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가 어떠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어떤 사명으로 부르셨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7-8절 함께 읽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어서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하여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냈습니다. ‘두기고’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하는 전달자’입니다. 두기고는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 역할을 넘어서서 바울의 마음, 바울의 기도, 바울의 고백을 대신 전하는 위로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를 소개할 때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그리고 8절에 ‘너희 마음을 위로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곳 외에도 두기고의 이름이 네 번 더 등장합니다(행 20:4, 엡 6:21, 딤후 4:12, 딤 3:12). 그런데 이 모든 곳을 살펴볼 때, 그 어디에도 그가 위대한 설교나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바울과 동행했고 그의 심부름을 충실히 수행했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에베소서에서도 두기고를 진실한 일꾼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에베소에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낱낱이 알리게 하고 바울의 이름으로 그들을 위로하게 했습니다(엡 6:21-22).
이처럼 두기고는 항상 바울 곁에서 함께했고, 누구보다 바울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두기고를 골로새에 보냄으로써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두기고는 성경에 기록될 만한 눈에 띄는 큰 권능을 행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이 큰 열매를 맺고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두기고와 같은 동역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대단한 은사나 능력이 없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큰 성과나 대단한 역사를 이루지 못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크고 위대한 일을 했는지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했는지를 보십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했다면, 그 일은 누가 한 것입니까? 우리가 한 것입니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우리가 평생 눈에 띄는 큰일을 하지 못하고 작은 교회를 지키며 살았다고 할 때,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분은 누구입니까? 능력이 부족한 우리입니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어진 사명이 크든 작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칭찬과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두기고를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기고’라는 이름의 뜻처럼 ‘위로하는 전달자’로서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9절 함께 읽습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바울이 끝인사를 하면서 많은 동역자 중에서 두 번째로 언급한 사람은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한, 쓸모있는’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처음부터 유익하고 쓸모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빌레몬서에 의하면 그는 ‘도망 노예’였습니다. 그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어떤 손해를 입히고 두려워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도망 노예는 잔혹한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의 도망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이름은 ‘유익한 자’라는 뜻이었지만, 실제 그의 삶은 ‘무익한 삶, 실패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바울을 만나고, 감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익한 그가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 1:10에서 오네시모를 소개하면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오네시모는 노예 출신에서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몬 1:12).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무익한 자에서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오네시모를 향해 빌레몬서 1:12에서 “그는 내 마음이라”라고 까지 고백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단순히 ‘개과천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오네시모를 통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도망자가 사도의 아들이 될 수 있고, 실패자가 신실한 동역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의 옆에 계속해서 두지 않고,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빌레몬이 마음먹기에 따라 오네시모가 큰 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말고, 형제로 영접하라”(몬 1:16) 바울은 복음을 영접한 오네시모에게는 과거를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는 복음을 영접한 사람답게 죄인을 자비로 대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배려로 세월이 흐르고, 이제 오네시모는 9절에 기록된 것처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도망 노예였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주인이 빌레몬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로부터 신실함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그를 “사랑받는 형제”라고 부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오네시모를 통해 무익함에서 유익함으로, 그리고 충성됨으로 변화되는 것이 복음이 한 사람의 삶 속에 일으키는 변화의 과정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주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변화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평생의 성숙과 헌신으로 이어졌음을 뒷받침합니다.
여러분,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단순히 노예가 회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역전된 이야기,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실상입니다. 과거의 그는 실패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새 출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도망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신실한 일꾼으로 서게 했습니다. 과거의 그는 무익한 자였지만, 복음은 그를 유익한 자로 바꾸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종이었지만, 복음은 그를 동역자로, 나아가 지도자로 서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기준’으로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으로 새롭게 된 ‘현재를 기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하므로.”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전혀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역자요, 한 사람은 도망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둘을 함께 보내면서, 동일한 용어로 그들을 소개했습니다. ‘신실한 형제, 사랑받는 자.’ 복음 안에서는 과거도, 사회적 지위도, 실수도, 공로도 관계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교리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내면서, 그들의 삶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가 되게 했습니다. 교회는 설교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설교로 전한 복음을, 사람이 증거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그러한 증거가 있습니까? 설교를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말할 뿐만아니라, 복음으로 살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살아있는 위로가 되도록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두기고를 통해 위로를, 오네시모를 통해 용서를, 그리고 두 사람을 통해 복음으로 하나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어져야 하며,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두기고가 되어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 용서를 입은 오네시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그런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골로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러한 믿음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저희를 부르시고,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통해 복음의 능력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복음으로 변화되어, 두기고처럼 위로하고, 오네시모처럼 회복된 자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교회가 이 시대의 골로새 교회가 되어, 어떤 이도 외면하지 않고, 모든 잃어버린 양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