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지난 본문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성도의 삶의 기본 원칙으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이 버려야 할 잘못된 옛 습성을 옷을 벗는 것에 비유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습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힘써 입어야 할 새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새 사람의 옷을 입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우리 성도들이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이라 Νεκρώσατε’는 말은 한 번에, 단호하게 끝내버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거나, 잠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생명을 끊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죽여야 합니까?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여기에서 땅에 있는 지체는 우리의 육신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의 옛 본성, 세상적인 욕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도로 거듭나 예수님을 본받아 살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세상의 박해나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땅에 있는 지체이고, 우리가 죽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죽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비로소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울의 교훈은 어떤 지식적인 이론을 응용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구체적으로 겪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충고하기를, 자신은 사도의 신분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 안에 있는 두 개의 법이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거듭난 자기의 속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나,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곧 육체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본성이 자신을 죄의 길로 끌어내린다고 탄식했습니다. 자기 안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온갖 정욕과 탐심과 같은 죄의 잔재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거듭난 새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죄악 속으로 계속해서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도들은 외적인 박해나 고난이나 문제들이 해결되면 예수님의 뜻대로 구원받은 자로서 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의 막연한 생각과 바램은 골로새 교회에도 틈탔던 거짓 가르침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을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에서 찾았습니다.
①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하고, 음식 규정을 지키고, 절기를 지켜야만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골 2:11, 16).
② 심지어 천사 같은 영적 존재를 숭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천사나 다른 영적 존재들을 통해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한다고 유혹했습니다(골 2:18).
③ 여기에 더해서 금욕주의로 몸을 괴롭게 해야 한다.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고행을 통해 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골 2:21, 23).
거짓 교사들의 이 모든 주장의 핵심은 외적인 요소들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과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과 인간의 종교적인 노력 같은 외적인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읽으면, 바울의 의도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제시한 가짜 영성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짜 영성이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외적인 규율을 통해 거룩해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그것은 속임수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진짜 영적인 싸움의 현장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의 잔재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할 때 진정한 성도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 외적인 문제에 집중하던 것을 돌이켜, 내적인 성결과 순종의 삶에 더욱 집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를 통해 날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하고 증언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6절 함께 읽습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재앙과 불행이 일어날 때마다 제기한 질문들과 오해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 때문에 재앙이 일어나고 불행한 일들이 닥칩니까?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인간의 악한 생각과 범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창 6장). 이 땅의 모든 재앙과 불행과 고통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의 범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질병과 고통, 불행과 죽음은 물론, 심지어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의 재해까지도 그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인간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그로 인해 땅도 저주받았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창 3:17).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재앙과 불행을 겪게 될 때,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재앙과 불행은 우리 인간들의 죄악된 삶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눅 13:1-5). 예를 들어, 집에 불이 났을 때 화재경보기가 울립니다. 그 소리는 매우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귀에 무척 거슬립니다. 하지만 만일, 집에 큰불이 났을 때 시끄럽다고 화재경보기를 울리지 않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재앙과 모든 불행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지시려는 화재경보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재앙과 불행을 볼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악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보다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선포되는 말씀 중에는 하나님의 진노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가슴 깊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영적 경보기인 하나님의 진노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8절에 기록된 것처럼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의 옛 본성, 세상적인 욕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과 탐심에서 비롯되는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함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것은 없는지 살피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것들을 벗어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9-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은 옛 사람과 그 행위의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거짓말’이라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죄악 중에 특별히 ‘거짓말’을 언급한 것은 거짓말이야말로 ‘옛 사람’, 곧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44에서 마귀를 가리켜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언어이며, 죄악된 세상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상 사람들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가 늘 대하게 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가족끼리, 혹은 사랑하는 연인끼리도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그립니다. 이는 거짓말이 죄악된 세상의 풍조이자 통용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좋은 의도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것이 밝혀지면 관계가 파괴되고 맙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구 사이에 거짓이 끼어들면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는 깨어지고 맙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이 서로에게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몸의 연결을 끊고 교회를 병들게 하는 독과 같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져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의 ‘벗어 버리고’와 10절의 ‘새 사람을 입었으니’라는 표현은 이미 완성된 사건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심지어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져 새 사람을 입기 위해 율법에 대한 부담감과 각종 종교적인 의무를 잔뜩 짊어지고 수고하고 힘씁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 우리 성도들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지식’은 ‘에피그노시스 ἐπίγνωσις’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관계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때, 그 지식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 성품과 삶의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그 결과로 옛 사람의 특징이었던 '거짓'은 힘을 잃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옛 사람의 더러운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 사람의 신분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고 사십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여 새 사람답게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옛 습관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옛 사람의 더러운 옷을 붙잡고 살아가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마음속에 찌꺼기같이 남아 있는 죄의 습성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고, 더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의의 자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세상의 모든 차별과 벽을 허물고, 사랑의 공동체로 굳건히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지난 본문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성도의 삶의 기본 원칙으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이 버려야 할 잘못된 옛 습성을 옷을 벗는 것에 비유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습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힘써 입어야 할 새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새 사람의 옷을 입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5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우리 성도들이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이라 Νεκρώσατε’는 말은 한 번에, 단호하게 끝내버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거나, 잠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생명을 끊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죽여야 합니까?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여기에서 땅에 있는 지체는 우리의 육신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의 옛 본성, 세상적인 욕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도로 거듭나 예수님을 본받아 살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세상의 박해나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땅에 있는 지체이고, 우리가 죽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죽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비로소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울의 교훈은 어떤 지식적인 이론을 응용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구체적으로 겪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충고하기를, 자신은 사도의 신분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 안에 있는 두 개의 법이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거듭난 자기의 속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나,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곧 육체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본성이 자신을 죄의 길로 끌어내린다고 탄식했습니다. 자기 안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온갖 정욕과 탐심과 같은 죄의 잔재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거듭난 새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죄악 속으로 계속해서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도들은 외적인 박해나 고난이나 문제들이 해결되면 예수님의 뜻대로 구원받은 자로서 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의 막연한 생각과 바램은 골로새 교회에도 틈탔던 거짓 가르침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을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에서 찾았습니다.
①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하고, 음식 규정을 지키고, 절기를 지켜야만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골 2:11, 16).
② 심지어 천사 같은 영적 존재를 숭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천사나 다른 영적 존재들을 통해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한다고 유혹했습니다(골 2:18).
③ 여기에 더해서 금욕주의로 몸을 괴롭게 해야 한다.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고행을 통해 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골 2:21, 23).
거짓 교사들의 이 모든 주장의 핵심은 외적인 요소들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과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과 인간의 종교적인 노력 같은 외적인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읽으면, 바울의 의도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제시한 가짜 영성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짜 영성이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외적인 규율을 통해 거룩해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그것은 속임수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진짜 영적인 싸움의 현장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의 잔재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할 때 진정한 성도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 외적인 문제에 집중하던 것을 돌이켜, 내적인 성결과 순종의 삶에 더욱 집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를 통해 날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하고 증언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6절 함께 읽습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재앙과 불행이 일어날 때마다 제기한 질문들과 오해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 때문에 재앙이 일어나고 불행한 일들이 닥칩니까?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인간의 악한 생각과 범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창 6장). 이 땅의 모든 재앙과 불행과 고통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의 범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질병과 고통, 불행과 죽음은 물론, 심지어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의 재해까지도 그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인간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그로 인해 땅도 저주받았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창 3:17).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재앙과 불행을 겪게 될 때,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재앙과 불행은 우리 인간들의 죄악된 삶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눅 13:1-5). 예를 들어, 집에 불이 났을 때 화재경보기가 울립니다. 그 소리는 매우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귀에 무척 거슬립니다. 하지만 만일, 집에 큰불이 났을 때 시끄럽다고 화재경보기를 울리지 않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재앙과 모든 불행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지시려는 화재경보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재앙과 불행을 볼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악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보다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선포되는 말씀 중에는 하나님의 진노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가슴 깊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영적 경보기인 하나님의 진노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8절에 기록된 것처럼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의 옛 본성, 세상적인 욕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과 탐심에서 비롯되는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함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것은 없는지 살피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것들을 벗어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9-1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은 옛 사람과 그 행위의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거짓말’이라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죄악 중에 특별히 ‘거짓말’을 언급한 것은 거짓말이야말로 ‘옛 사람’, 곧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44에서 마귀를 가리켜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언어이며, 죄악된 세상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상 사람들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가 늘 대하게 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가족끼리, 혹은 사랑하는 연인끼리도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그립니다. 이는 거짓말이 죄악된 세상의 풍조이자 통용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좋은 의도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것이 밝혀지면 관계가 파괴되고 맙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구 사이에 거짓이 끼어들면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는 깨어지고 맙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이 서로에게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몸의 연결을 끊고 교회를 병들게 하는 독과 같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져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의 ‘벗어 버리고’와 10절의 ‘새 사람을 입었으니’라는 표현은 이미 완성된 사건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심지어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져 새 사람을 입기 위해 율법에 대한 부담감과 각종 종교적인 의무를 잔뜩 짊어지고 수고하고 힘씁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 우리 성도들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지식’은 ‘에피그노시스 ἐπίγνωσις’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관계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때, 그 지식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 성품과 삶의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그 결과로 옛 사람의 특징이었던 '거짓'은 힘을 잃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옛 사람의 더러운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 사람의 신분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고 사십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여 새 사람답게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옛 습관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옛 사람의 더러운 옷을 붙잡고 살아가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마음속에 찌꺼기같이 남아 있는 죄의 습성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고, 더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의의 자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세상의 모든 차별과 벽을 허물고, 사랑의 공동체로 굳건히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