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설교

9. 이단들의 풍조와 해악을 주의하라 (골 2:16-23)

우인택 목사
2025-09-17
조회수 242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성도라면 누구나 영적으로 더 깊어지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영적인 집회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또 엄격한 규율을 통해 거룩해지고자 노력합니다. 이와 같은 '더 나은 성도가 되려는 마음과 열정'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상고하는 골로새서는, 그 열심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난주에 상고한 것처럼, 당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겉보기에는 매우 경건하고 지혜로워 보였지만, 사실은 성도들을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속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 가르침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활개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바른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 16-17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 말씀은 앞부분인 8-15절의 가르침 결론 부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옛 율법과 법조문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러한 옛 율법과 법조문에 얽매이는 삶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거짓 교사들은  율법과 법조문으로 성도들을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러한 것으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율법의 구속력을 완전히 제거하셨으므로, 성도들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성도들을 율법을 지키는지 아닌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율법은 예수님이 오심을 나타내는 그림자이지 실체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기록되게 된 배경은 지난 시간에 상고한 것처럼 당시 초대교회에 만연하던 천사숭배, 유대 율법주의, 그리고 금욕주의의 거짓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이 거짓 교훈은 이제 막 믿음을 갖게 된 성도들에게 ‘외적인 종교의식을 잣대로’ 어떤 신앙이 더 바른 신앙인지를 서로 비교하게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바리새인들처럼 외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조했고, 천사숭배와 금욕주의를 마치 신앙의 척도인 것처럼 성도들에게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기준으로 신앙을 판단하게 되면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작용은 이러한 외적인 판단으로 성도들이 서로 신앙을 경쟁하고 등수를 매긴다는 데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척도로 삼기에 아무리 주의해도 우월한 신앙과 열등한 신앙으로 나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뽐내게 되는 교만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정죄했던 바리새인들도, 그들이 신앙의 우월주의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들은 율법을 다 지키는데 다른 사람들은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 종교적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까지도 형식주의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기에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식에 치중하게 되면 주종관계가 바뀌게 되어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자유를 제한하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8-19절 함께 읽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여기에서의 ‘꾸며낸 겸손’은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키고, ‘천사 숭배’는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의 헛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인간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직접 경배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한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본 환상을 과장하여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며 성도들도 그러한 환상 체험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며 자신들을 추종하도록 미혹했습니다.

이처럼 거짓 신앙인들은 신비한 현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환상 체험을 체험하지 않은 성도들의 신앙을 헛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깁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과 눈에 보이는 현세의 복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기가 체험한 조그마한 신비한 일을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과장하고 꾸밉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눈에 보이는 신비한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신비적인 체험을 했다”라고 자랑하는 것과 그 체험이 마치 최고의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거짓 신앙인들의 미혹임을 분명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신비한 현상 체험을 누가 더 많이 했는가, 은사가 누가 더 많은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8절과 20절에 기록된 것 같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곧 믿음이란 히브리서 11:1의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성숙할수록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19절 말씀처럼 거짓 교사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머리이신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권능을 공급받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입니다. 착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바르지 못한 거짓 신앙인들일수록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그것에 만족을 누리고, 그것을 자랑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근거해서 거짓 신앙인들을 구별하고 그들의 유혹이 있을 때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오늘, 자신의 신앙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점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율법을 따르는 것이 부당함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율법을 따르는 것이 부당한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세상의 초등학문과도 같은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더이상 유치한 세상 초등학문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귀한 하늘의 비밀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구약의 율법을 삶의 규범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유치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21절의 ( ) 부분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이 말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아니라, 당시의 금욕주의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던 3대 표어를 사도 바울이 부정적인 의미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고기와 술’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합니다. “곧 고기와 술은 먹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기본적인 욕구를 제한해야 만이 거룩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23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적 규칙이나 고행은 거룩해 보이는 모양은 갖추고 있지만, 우리의 죄된 본성을 다스리는 데는 아무런 힘이나 가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규칙으로 자기 몸을 학대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자기 의를 쌓으려는 ‘자의적 숭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정한 성화와 변화는 ‘하지 말라’는 율법 목록을 지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난 새 생명을 힘입어 살아갈 때 일어납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 죄를 이기려고 노력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하늘의 생명을 나타내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때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과 순종만이 우리를 선하고 거룩한 삶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외적인 종교의식을 잣대로’ 어떤 신앙이 더 바른 신앙인지를 규정하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키는 것이 참된 영성인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것만 하면, 저것만 지키면 더 깊은 영성에 이를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영성은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머리’이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 때 주어집니다. 율법의 조항이나 종교적 전통이라는 그림자를 붙들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신비한 체험이나 사람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말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만든 금욕적인 규례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적 성장의 모든 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시며,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이번 한 주간도 세상의 헛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님만을 굳게 붙들고 선하고 거룩한 삶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영성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깨닫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을 내세우며 스스로 의롭다 여기고, 다른 이들을 판단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머리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고, 세상의 지혜와 신비한 경험과 사람의 가르침에 더 마음을 빼앗겼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더이상 헛된 것들에 속지 않고, 오직 우리 구원의 전부요,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 한 분만을 굳게 붙드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거룩해지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죄와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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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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