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위와 ‘화평의 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24절 함께 읽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었기에 직접적으로 그들로 인해 받은 괴로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그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이방인이었기에 바울이 받은 고난은 그들을 위한 고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받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끊임없이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는 감옥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성령님의 위로하심과 격려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남은’은 ‘부족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 고백은 마치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지 못하고 남겨두셨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예수님의 고난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못 감당하신 구원의 남은 고난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기까지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더해 우리의 인간적인 어떤 공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불충분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를 능히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우리를 위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에 인간이 더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고난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받게 되는 고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받으신 고난과 똑같은 고난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결의를 보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는 우리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도들이 받는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과 동일하다는 것은, 고난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도 우리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받은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영광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8:17에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골로새서를 기록한 바울은 이 특권을 마음껏 누렸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는 골로새서도 그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채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든지, 갈라디아서 6:17에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흔적은 고난의 흔적이자 장차 그에게 주어질 영광의 징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특권을 기쁨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늘의 영광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의 보좌 우편에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5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자기의 뜻과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곧 소명에 의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는 이 소명을 붙들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한 일을 견뎌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함을 소명으로 극복할 때 죽은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면서, 더욱 큰 확신으로 주어진 모든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한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갓난아기는 날마다 부모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기를 사랑으로 돌 볼 수 있는 것은, 그 아기가 부모의 돌봄으로 건강하게 자라나 사회의 일원이 될 것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망과 확신이 아기로 인한 모든 괴로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헌신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괴로운 일을 당하고 무시당하고 천대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그들의 삶과 영혼이 구원받게 됨을 확신하기에 힘을 내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을 확신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6-27절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여기에서의 ‘만세’는 시간적인 영원함을 의미하고 ‘만대’는 오랫동안 계속된 수많은 세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영원 전부터 만대에 걸쳐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로 감춰졌던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성도들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복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은 조건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능력이나 재능이나 부유함이나 권세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감추인 비밀을 우리 성도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구원의 비밀을 깨닫고 믿은 성도들이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에게는 이것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딤후 4:2).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난도 달게 받았습니다. 심지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하기까지 했습니다(고전 9:16).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울이 가졌던 사명과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짐이나 굴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재창조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8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관심은 ‘각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중에 '누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철저히 각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자신의 믿음으로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각 개인의 믿음만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각 개인의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많은 부모와 자녀 사이라도 부모가 자녀의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숙한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어떠한 대리인도 세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종교들과 구별되는 우리가 소유한 믿음만의 특징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다른 사람의 은덕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 종교들은 죽은 자의 원한을 대신 갚아주면 그가 저승으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종교들은 자신의 신앙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어야 구원받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목사님이 있는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환경은 좋은 신앙을 가질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과 각 개인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누구도 나의 신앙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가 하나님께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고백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누구의 힘으로 입니까?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고, 근심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으로, 때로는 우리의 생각으로, 때로는 우리의 양심으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를 위해 말씀과 기도,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기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한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구원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이를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함을 알아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위와 ‘화평의 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24절 함께 읽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었기에 직접적으로 그들로 인해 받은 괴로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그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이방인이었기에 바울이 받은 고난은 그들을 위한 고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받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끊임없이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는 감옥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성령님의 위로하심과 격려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남은’은 ‘부족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 고백은 마치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지 못하고 남겨두셨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예수님의 고난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못 감당하신 구원의 남은 고난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기까지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더해 우리의 인간적인 어떤 공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불충분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를 능히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우리를 위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에 인간이 더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고난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받게 되는 고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받으신 고난과 똑같은 고난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결의를 보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는 우리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도들이 받는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과 동일하다는 것은, 고난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도 우리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받은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영광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8:17에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골로새서를 기록한 바울은 이 특권을 마음껏 누렸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는 골로새서도 그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채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든지, 갈라디아서 6:17에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흔적은 고난의 흔적이자 장차 그에게 주어질 영광의 징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특권을 기쁨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늘의 영광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의 보좌 우편에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25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자기의 뜻과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곧 소명에 의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는 이 소명을 붙들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한 일을 견뎌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함을 소명으로 극복할 때 죽은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면서, 더욱 큰 확신으로 주어진 모든 고난과 괴로움과 억울한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갓난아기는 날마다 부모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기를 사랑으로 돌 볼 수 있는 것은, 그 아기가 부모의 돌봄으로 건강하게 자라나 사회의 일원이 될 것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망과 확신이 아기로 인한 모든 괴로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헌신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괴로운 일을 당하고 무시당하고 천대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그들의 삶과 영혼이 구원받게 됨을 확신하기에 힘을 내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을 확신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6-27절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여기에서의 ‘만세’는 시간적인 영원함을 의미하고 ‘만대’는 오랫동안 계속된 수많은 세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영원 전부터 만대에 걸쳐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로 감춰졌던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성도들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복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은 조건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능력이나 재능이나 부유함이나 권세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감추인 비밀을 우리 성도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구원의 비밀을 깨닫고 믿은 성도들이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에게는 이것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딤후 4:2).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난도 달게 받았습니다. 심지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하기까지 했습니다(고전 9:16).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울이 가졌던 사명과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짐이나 굴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재창조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8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관심은 ‘각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중에 '누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철저히 각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자신의 믿음으로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각 개인의 믿음만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각 개인의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많은 부모와 자녀 사이라도 부모가 자녀의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숙한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어떠한 대리인도 세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종교들과 구별되는 우리가 소유한 믿음만의 특징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다른 사람의 은덕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 종교들은 죽은 자의 원한을 대신 갚아주면 그가 저승으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종교들은 자신의 신앙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어야 구원받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목사님이 있는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환경은 좋은 신앙을 가질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과 각 개인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누구도 나의 신앙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가 하나님께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고백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누구의 힘으로 입니까?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고, 근심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으로, 때로는 우리의 생각으로, 때로는 우리의 양심으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를 위해 말씀과 기도,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기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한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구원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이를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함을 알아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