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신분과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위와 ‘화평의 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8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먼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는 표현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성도도 아닌 예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사나 장로나 성도의 생각과 뜻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뜻을 따라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숙지해야 하고, 그 말씀을 깨닫고 지키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힘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사역의 결정은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의미가 있기에, 무엇보다도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최초로 살아나신 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 이전에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음을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왕상 17:17-24), 엘리사가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과(왕하 4:18-37) 엘리사의 뼈가 닿자 살아난 이름 모를 남자(왕하 13:20-21) 등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이들보다 후이므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단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그러한 의미의 부활은 아닙니다. 본문에서의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가 후에 다시 죽는 부활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부활’,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 중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타고난 수명이 차자 다시 죽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중에 아직도 살아계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벗지 못할 ‘영원한 죽음의 굴레’를 쓰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믿는 모든 자에게 죄의 굴레를 벗겨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으로 영원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의 참된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부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에도 계속해서 부활할 사람들이 있을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20에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으뜸’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부활 소망을 품고 세상의 정욕과 탐욕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서 증거될 수 있도록 온전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부활의 소망을 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여기에서의 ‘충만 πλήρωμα’은 항아리에 따라진 물이 흘러넘치듯이 부족함이 전혀 없는 풍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에는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금욕’을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며,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는 듣기에는 그럴싸한 이단들의 주장이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한 거짓 주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예수님 한 분으로 족하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은 지금 이 시대에도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0절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창조 당시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21절의 말씀처럼, 함께 읽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인간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망과 온갖 질병과 범죄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의 담이 너무 높아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이 세상을 고통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죄하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롬 3:25).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어떤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믿음을 다지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 있어 예수님 외에 어떤 것을 더하는 자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 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22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이유에 대하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은 성도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조건이 됩니다. 다시 말해,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은 우리가 노력하여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신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23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서기 위해 가져야 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먼저, ‘믿음’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믿음,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믿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의 담을 허무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믿음,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굳건하게 소유하는 것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서기 위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소망이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주어질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반드시 이 소망을 굳건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 소망이 흔들리면 고난과 박해를 극복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하게 하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레의 두 바퀴 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믿음 안에 거하되,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아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골로새서를 기록한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믿음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든든히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의 정욕과 탐욕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 있어 예수님 외에 어떤 것을 더하는 자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내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신분과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위와 ‘화평의 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8절 함께 읽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먼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는 표현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성도도 아닌 예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사나 장로나 성도의 생각과 뜻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뜻을 따라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숙지해야 하고, 그 말씀을 깨닫고 지키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힘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사역의 결정은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의미가 있기에, 무엇보다도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최초로 살아나신 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 이전에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음을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왕상 17:17-24), 엘리사가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과(왕하 4:18-37) 엘리사의 뼈가 닿자 살아난 이름 모를 남자(왕하 13:20-21) 등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이들보다 후이므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단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그러한 의미의 부활은 아닙니다. 본문에서의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가 후에 다시 죽는 부활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부활’,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 중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타고난 수명이 차자 다시 죽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중에 아직도 살아계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벗지 못할 ‘영원한 죽음의 굴레’를 쓰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믿는 모든 자에게 죄의 굴레를 벗겨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으로 영원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의 참된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부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에도 계속해서 부활할 사람들이 있을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20에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으뜸’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부활 소망을 품고 세상의 정욕과 탐욕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서 증거될 수 있도록 온전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부활의 소망을 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9절 함께 읽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여기에서의 ‘충만 πλήρωμα’은 항아리에 따라진 물이 흘러넘치듯이 부족함이 전혀 없는 풍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에는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금욕’을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며,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는 듣기에는 그럴싸한 이단들의 주장이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한 거짓 주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예수님 한 분으로 족하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은 지금 이 시대에도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0절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창조 당시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21절의 말씀처럼, 함께 읽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인간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망과 온갖 질병과 범죄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의 담이 너무 높아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이 세상을 고통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죄하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롬 3:25).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어떤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믿음을 다지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 있어 예수님 외에 어떤 것을 더하는 자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 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이어지는 22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이유에 대하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은 성도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조건이 됩니다. 다시 말해,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은 우리가 노력하여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신 ‘거룩함, 흠 없음, 책망할 것 없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23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서기 위해 가져야 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먼저, ‘믿음’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믿음,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믿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의 담을 허무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믿음,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굳건하게 소유하는 것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서기 위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소망이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주어질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반드시 이 소망을 굳건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 소망이 흔들리면 고난과 박해를 극복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하게 하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레의 두 바퀴 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믿음 안에 거하되,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아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골로새서를 기록한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믿음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든든히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의 정욕과 탐욕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 있어 예수님 외에 어떤 것을 더하는 자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내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